2024.12.28. | 생명의 삶 | 이성조 목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보석과 같이 빛난 존재임을 알고 계신가요?
안녕하세요. 상동교회를 섬기는 이성조 목사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보석같이 아름다운 존재로 만들어 줄까요?
바벨론의 권세가 아닌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서 우리가 이 땅에서 당하는 환란과 고난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과 환경이 크고 작은 환란 가운데 있지만 그 속에서 우리 모두가 장차 올 새 예루살렘에서 아름다운 보석으로 빛나게 될 것을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은 요한계시록 21장 9절에서 2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어린양의 아내인 영광스러운 새 예루살렘
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14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15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 자를 가졌더라 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17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
요한계시록은 두 도시, 두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음녀 바벨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악의 총집합소를 상징하는 반면,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어린양의 신부이자 아내를 상징합니다.
음녀 바벨론의 최후는 비참하지만, 어린양 아내의 마지막은 영광스럽습니다.
이 새 예루살렘을 어린 양의어린양의 아내이자 신부라고 말하는 것은 큰 환란 가운데서 오직 어린양의 공로를 의지하여 믿음으로 승리한 성도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린 양의 보혈의 능력으로 완성되는 교회는 신부로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또 아내로서 어린양과 친밀함을 누릴 것입니다.
12 지파와 12 사도가 새 예루살렘의 문이며 도시의 기초가 된다는 것은 새 예루살렘이 가지고 있는 그 완벽한 공동체적 특징을 보여줍니다.
새 예루살렘은 크고 높은 성곽과 12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요. 단순히 물리적으로 성이 크다는 것보다는
거룩한 성도들이 영원히 거하는 곳이 얼마나 아름다우며 완벽한 곳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아무리 유명한 건축가가 완벽한 설계도로 웅장한 건축물을 지었다 하더라도
그곳에 불완전한 죄인들이 함께 살아가는 한 그곳은 결코 완벽한 장소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과 14장에 나오는 구원받은 거룩한 성도의 숫자 14만 4천 명은
12지파의 12과 12, 사도의 12, 그리고 완전함과 충만함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숫자.
천을 곱한 충만하고 완전한 성도의 무리를 의미합니다.
큰 환란에서 나오지만, 그래서 더욱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는 온전한 신부들이 이 예수님의 은혜로 들어오는 곳이 바로 이 새 예루살렘입니다.
16절에 보면 새 예루살렘은 길이와 너비, 높이가 동일한 정육면체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각 변의 길이는 1만 2천 스타디온입니다.
스타디온은 로마식 거리 측정 기준으로 1 스타디온이 약 192미터라고 합니다.
1만 2천 스타디오는 천이라는 충만한 수에 12이라는 완전한 수를 곱한 수입니다.
열둘은 전통적으로 교회를 상징하는 숫자이기에 이 역시도 완전한 교회의 그 충만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17절에도 성곽의 측량값이 144 규빗이라고 합니다.
17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144라는 숫자 역시 구약의 지파 숫자 열둘과 신약의 사도의 숫자 열둘을 곱하면 만들어지는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이 모든 새 예루살렘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공의에 의해서 세워질 온전하고 완전한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그려줍니다.
새 예루살렘은 온갖 아름다운 보석으로 지어져 있습니다.
본문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 그것을 12 보석으로 만들어진 성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그 아름다움과 영광을 다 표현할 수 없기에 가장 귀한 보석들을 들어서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에 있는 보석들 중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보석은 무엇일까요?
바로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빨아서 보석같이 희게 된 주님의 신부들입니다.
보석이라도요. 다 같은 색과 모양으로 빛나는 보석이 아니라 다양한 빛깔들과 다양한 모양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12 보석이 됩니다.
이 땅에 다양한 환란과 고난을 겪으면서도, 오직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고 그렇게 살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이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12 재료들이 되어 가장 아름답고 완전한 새 예루살렘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의 본질은 이 땅의 보석으로 치장된 영광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 바벨론의 영광은 일시적인 영광으로 결국 비참한 심판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의 영광은 찬란하며 영원히 이어집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고난의 과정을 통해서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빚어진 아름다운 보석과 같은 삶임을 기억하면서, 그 아름다운 삶으로 이 땅에서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제 눈이 바벨론의 화려함을 보느라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비록 지금 저의 삶이 고난과 환란 가운데 있더라도
그 과정에서 어린 양의 보혈의 피의 능력으로
주님 앞에 아름다운 보석과 같은 존재가 되어서
새 예루살렘에서 주님과 함께 찬란한 영광을 누릴 것을 확신합니다.
어린양이신 주님을 따라 오늘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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