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1. | 생명의 삶 | 박인용 목사
네 오늘도 복된 아침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말씀을 이어가는 우리 월드와이드교의 박인용 목사입니다.
말씀 지기로 호세아서 말씀을 하나하나 묵상해 보면서 하나님의 깊은 우리를 향한 애정을 우리는 느끼게 되지요.
그런 가운데서 요즘과 호세아가 살았던 8세기경에, 주전 8세기경의 그 세상과 지금의 세상과
인류는 더 깊은 탈락이 있어서 징계로 말미암아 회심은 있어도 인간의 본성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하는 걸 알 수 있어요.
우리 사도 요한이 경고한 것처럼 이생의 사랑, 또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 삼겹줄로 가지고 우리 많은 믿음의 신자들을 얼마나 올무를 놓고 그의 인생을 꼬아가고 있습니까?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믿음의 삼교줄을 한번 펼쳐봐야 합니다.
큐티하는 지체들끼리 함께 공유하고 기도하고 중보하고,
두 세 사람이 내 이름 하는 곳에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런 의미에서 말씀과 함께 기도로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라고요.
호세야서 9장 1절에서 9절을 함께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죄악을 심판하는 형벌의 날
호세야 9장 1절에서 9절 말씀입니다.
1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음행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 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하였느니라 2 타작 마당이나 술틀이 그들을 기르지 못할 것이며 새 포도주도 떨어질 것이요 3 그들은 여호와의 땅에 거주하지 못하며 에브라임은 애굽으로 다시 가고 앗수르에서 더러운 것을 먹을 것이니라 4 그들은 여호와께 포도주를 부어 드리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바도 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의 제물은 애곡하는 자의 떡과 같아서 그것을 먹는 자는 더러워지나니 그들의 떡은 자기의 먹기에만 소용될 뿐이라 여호와의 집에 드릴 것이 아님이니라 5 너희는 명절 날과 여호와의 절기의 날에 무엇을 하겠느냐 6 보라 그들이 멸망을 피하여 갈지라도 애굽은 그들을 모으고 놉은 그들을 장사하리니 그들의 은은 귀한 것이나 찔레가 덮을 것이요 그들의 장막 안에는 가시덩굴이 퍼지리라 7 형벌의 날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이 온 것을 이스라엘이 알지라 선지자가 어리석었고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쳤나니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니라 8 에브라임은 나의 하나님과 함께 한 파수꾼이며 선지자는 모든 길에 친 새 잡는 자의 그물과 같고 그의 하나님의 전에는 원한이 있도다 9 그들은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심히 부패한지라 여호와께서 그 악을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
여러분 가운데서 누구에게 포로 된 경험이 있는 분은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가까운 근대에서 일제에서 36년간 식민지 생활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대만 하고 차이점이 있다면 대만은 다소 문화통치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회유하는 작전을 써서 많은 부분에 대만 사람들은 아직도 별로 상처가 없다고 그래요.
우리는 무단통치를 했습니다.
강압을 하고 독립군을 철저하게 색출해서 죽이고 반항하면 우리는 철저하게 탄압으로 일관했습니다.
더군다나 교회들은 직접 일본 순사가 들어가서 일부는 신도 예배를 하게 하고, 2부는 성도들의 모임을 허락했어도 헌금은 대부분이 신도 예배 때 걷어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결국은 대한민국 전역에 200개나 넘는 신사를 세움으로 신사로 영혼을 탈취해 가려고 시도했죠.
이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노예가 된다는 것은 일부 거기에 완전히 빠져서 그들의 기득권을 누리는 자 외에는 노예는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닌 걸 알 수 있어요. 해방의 때에 그렇게 뛰쳐나온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3.1 운동 때 전국 시장이던 마을 리 촌 단위까지 뛰쳐나온 이유도 거기 있어요.
노예가 되길 원하십니까?
하나님과 함께 땅을 다스리며 살길 원하십니까?
하나님이 아담에게 준 명령은 "땅을 다스리라 땅을 정복하라"라는 명령이었어요.
하나님 그 영성을 회복하라는 겁니다.
그런 사랑을 안고 지금 호세아서를 통하여 권면하는 거 여러분 아시죠?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이 오늘 본문에 보니까 다시 이방의 포로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이방하고 싸우는 싸움은 무력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무대 무력도 아니고, 군사력도 군사력도 아니고, 훈련된 병사들 훈련, 비훈련된 병사 싸움도 아니에요.
철저하게 하나님이 싸워주시는 싸움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오늘 여기 말씀의 1절에 보시면
1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음행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 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하였느니라
하나님 떠나서 니가 지금 즐기고 있는 그 자리 그게 불행한 자리다 하는 거예요.
용서하고 들으십시오.
뭐 가끔 여러분이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전혀 공부를 안 하고 모르면 시험도 안 보고 밖에 나가서 복도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이 있죠. 즐겁지만은 냉정하게 시험 결과는 참혹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내가 지금 준비된 나의 결과와 나의 성적이 지금 나올 텐데 그거 여러분 적당히 내가 얼굴 표정으로 즐겁다고 해서 내 성적이 좋아지는 건 아닙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서 얘기를 비유로 들어서 좀 죄송한 비유를 들었습니다마는
2 타작 마당이나 술틀이 그들을 기르지 못할 것이며 새 포도주도 떨어질 것이요
3 그들은 여호와의 땅에 거주하지 못하며 에브라임은 애굽으로 다시 가고 앗수르에서 더러운 것을 먹을 것이니라
순식간에 포로가 되면 너의 누림은 완전히 너에게 노예적 삶으로 전환될 수 있다 하는 걸 성경은 경고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우리가 세상의 노예가 된 삶이 이미 족한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상급의 기회는 의의 면류관이요, 충성의 면류관이요, 생명의 면류관이요.
천국에서 기다리고 있는 면류관이 있는 이 삶을 바라보고, 모세처럼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할 만큼 거절과 선택을 잘하는 사람들을 위한 상이죠. 여호와의 땅에 행음의 결과 거할 수 없게 된 것을 성경은 지적하는 겁니다.
무슨 소린가 하면 여러분 보십시오. 6절에도
6 보라 그들이 멸망을 피하여 갈지라도 애굽은 그들을 모으고 놉은 그들을 장사하리니 그들의 은은 귀한 것이나 찔레가 덮을 것이요 그들의 장막 안에는 가시덩굴이 퍼지리라
이렇게 해서 여호와의 땅에 제대로 거할 수 없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왜 이런 일이 있었다고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 역할을 못했다는 겁니다. 우리는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요, 왕 같은 제사장" 여전히 이름은 유효한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베드로전서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신약에서 사도 베드로는 우리 구약의 제사장적 사명이 오늘 성도에게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어요.
여러분은 지금 그 역할을 감당하고 계십니까?
썩을 때 소금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어두울 때 빛의 역할을 감당하고 계시나요?
집을 지키는 개는 인기척이 있으면 짖어야 존재감이 있는데, 짓지 못하는 개, 벙어리 개 이런 표현이 그 개로서는 아주 치명적인 약점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어떤 역할을 줬습니까? 7절 보세요.
7 형벌의 날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이 온 것을 이스라엘이 알지라 선지자가 어리석었고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쳤나니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니라
오늘 이스라엘이 그 일을 몰랐다는 겁니다. 선지자가 우둔했다는 겁니다.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쳐서 결국 하나님의 성령 없는 똑같이 육으로 사는 인생이 되었다는 거예요.
갈라디아서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육에 속한 자의 삶, 성령에 속한 자의 삶, 그 결과는 생명이요 사망이지 않습니까?
오늘 그 하나님은 그걸 안타깝게 여기는 겁니다. 너희 구석구석에 펼쳐진 그래서 레위 지파는 제사장직 사명을 하기 위해서 한 곳에 하나님이 모아두지 않았어요.
그들은 지파에 땅을 주지 않고 전국에 흩어놓은 이유는 각각 지역에서 말씀을 반포하고 백성들을 위한 중보의 제사를 올려드리므로 이 백성이 썩는 걸 막으라는 겁니다.
그러나 그 제사장 어디 갔냐는 거예요. 오늘 그 선지자들 어디 갔냐는 거예요.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은 뭐 하는 거예요? 그 부름 앞에 우리가 여러분 다시 서야 될 시간이 온 겁니다.
그리고 오늘 그들이 어떻게 했다고요?
8 에브라임은 나의 하나님과 함께 한 파수꾼이며 선지자는 모든 길에 친 새 잡는 자의 그물과 같고 그의 하나님의 전에는 원한이 있도다
여러분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을 대표하는 표현입니다.
나의 하나님과 함께 한 파수꾼이며 선지자는 모든 길에 친새 잡는 그물과 같고 같은데 그의 하나님의 전에는 원한이 있다.
하나님의 전은 뭐가 있어야 됩니까? 아름다운 분양의 향이 올라가야 돼요.
하나님이 흠향할 예배의 향이요 감사의 향이요. 우리 인생의 성전에는 뭐가 있어야 할까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시온의 대로가 열려서 하나님이 이 땅에 복을 줄 통로로 열릴 때 존재감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여기 기부아처럼 기부하 검인들은 이방인 아닙니까? 우상숭배가 그들의 전공 아닙니까?
9 그들은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심히 부패한지라 여호와께서 그 악을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죄악의 심판이 형벌의 날로 그들에게 다가옴을 경고하고 있는 겁니다.
이 모든 것 속에는 하나님이 주신 정복의 자유를 다스림으로 열매를 내지 않고,
오히려 이방의 포로가 되는 길을 스스로 자초했다는 거예요.
죄의 포로가 되고 어둠의 포로가 되는 길을 자초했다는 겁니다.
우리는 어떤 형태도 포로로 살 수 없는 주님의 백성이고 주님의 자녀입니다.
다시 하나님께서 새롭게 회복할 신라곤의 권세처럼 땅을 다스리고 땅을 정복할 자유자가 되셔야 합니다.
오늘 그 꿈을 안고 말씀과 함께 우리는 이 말씀이 주시는 반전의 메시지를 붙들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다시 범죄하고 다시 포로가 되고
하나님 이 마지막 남은 인생의 개수를 하면서 이제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는 걸 알고
이제는 다시 범죄가 아니라 다시 순종하고 다시 복종하고 다시 예비함으로
이제는 주님과 함께 유유한 에녹 같은 동행하는 자의 삶,
엘리아와 같이 하나님이 죽음을 보지 않고도 데려올 만큼 기뻐하는 자
다 되는 그런 복된 삶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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