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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약한 신앙을 지키는 결혼 원칙(느헤미야 13:23~31)(20240930)

2024.09.30. | 생명의 삶 | 권오향 목사

 

연약한 신앙을 지키는 결혼 원칙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새롭게 해 주기를 원합니다.

안녕하세요. 우리 교회 권오향 목사입니다.

 

느헤미야의 개혁은 삶의 전반 전반 구석구석에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표면적인 개혁이 아닌 내면적인 개혁이었죠. 

우리는 종종 불의한 사회를 바라보며 개혁이 필요하다고 외치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 요구되는 개혁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개혁은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나의 삶에 일어나야 할 개혁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기를 원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 함께 보시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느헤미야 13장 23~31절 말씀입니다.

 

 

연약한 신앙을 지키는 결혼 원칙

 

느헤미야 13장 23절에서 31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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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그 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맞아 아내로 삼았는데
24 그들의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25 내가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그들 중 몇 사람을 때리고 그들의 머리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그들의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하고
26 또 이르기를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는 많은 나라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그를 범죄하게 하였나니
27 너희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이 모든 큰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
28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내가 쫓아내어 나를 떠나게 하였느니라
29 내 하나님이여 그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어겼사오니 그들을 기억하옵소서
30 내가 이와 같이 그들에게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그들을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자기의 일을 맡게 하고
31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십일조 생활과 안식일 제도를 재정비시킨 느헤미야가 마지막으로 감행한 것은 당시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여졌던 이방 여인과의 통혼이었습니다. 23, 24절인데요.

23 그 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맞아 아내로 삼았는데
24 그들의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아스돗, 암몬, 모압은 모두 이스라엘 근처에 사는 이방 민족이었습니다.

암몬과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이었지만 이스라엘 회중에서 제외된 민족이었고, 

아스돗은 이스라엘의 서쪽 해안에 사는 블레셋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그 인근에 살고 있던 북이스라엘의 남성들이 아스돗의 여인들과 결혼하여서 아내가 속한 거주지에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요다 말은 전혀 하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어머니 민족의 말만 겨우 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났던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언어란 문화를 형성하는 기반이요, 자신의 정체성을 심어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다 말을 전혀 하지 못한다는 것은 유다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간혹 해외로 이민 간 부모들이 그 나라의 언어를 배워야 빨리 적응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녀들에게 모국어는 가르치지 않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로 인하여서 아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을 약속의 땅으로 주시고 예루살렘에 성전을 두시며 하나님만 예배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백성 되기를 원하셨고, 가난한 족속과는 섞이지도 말고 구별되어서 거룩히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으로 섞이게 되니, 그 자손들은 이스라엘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만 것이었습니다.

 

이에 느헤미야는 이방 여인과 통혼한 자들을 꾸짖으며 바로 세우고자 합니다. 25 26절입니다.

25 내가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그들 중 몇 사람을 때리고 그들의 머리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그들의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하고
26 또 이르기를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는 많은 나라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그를 범죄하게 하였나니

 

느헤미야는 솔로몬을 예로 들면서 그들을 나무라고 했습니다.

그토록 번성하던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지게 된 것은 솔로몬의 우상숭배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 때문이 아니었냐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자 하는 외교 정책의 일환으로 정략 결혼을 꾸미게 되고, 많은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맞은 탓에 나라 전체가 우상으로 물들고 나중에는 솔로몬마저 타락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과 구별되어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것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죠.

나도 모르게 젖어 있는 세상 문화와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고, 

"아 이런 건 다들 하는 거니까"라고 가볍게 생각하기보다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거룩한 몸부림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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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 여인과의 결혼은 당시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었던 엘리아십 가문에도 행하여졌습니다.

엘리아십의 증손자가 호른 사람 살 말라의 딸과 결혼을 한 것이지, 그런데 어이없게도 산발란이란 자는 암문사란 도비와 함께 성벽 재건을 극심히 반대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레위기 21장에 따르면 대제사장은 반드시 자신의 동족의 처녀와만 결혼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으니, 이는 그 가문에도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럼에도 이를 개념치 않고 어긴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한 처사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엘리아십은 느헤미야와 함께 성전의 문을 건축하고 그 문을 거룩하게 하고, 성벽을 쌓고 함께 봉헌을 하던 자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꽤나 믿음이 있고 덕망 있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 속셈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달랐던 것이죠.

자신의 사리 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원수와의 결혼도 허용하는 마치 우리나라 일제 강점기의 매국노와도 같은 자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이를 알게 된 느헤미야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요?

느헤미야는 통탄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눈물로 호소하며 기도합니다. 29절입니다. 

29 내 하나님이여 그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어겼사오니 그들을 기억하옵소서

 

하나님에 의해 성별된 제사장의 범죄는 일반인의 범죄보다 훨씬 무겁게 다루어져야 했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을 대신하여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이며, 하나님을 대변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죠.

그런 차원에서 오늘날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의 삶, 코람데오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나타내는 자들이기 때문이죠.

이제 느헤미야의 기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30절, 31절인데요.

30 내가 이와 같이 그들에게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그들을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자기의 일을 맡게 하고
31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느헤미야의 개혁은 단회적이 아닌 지속적인 것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으로 만족하지 않았으며, 그 후에도 계속하여 이스라엘의 영적 재건을 위해서 힘을 다하도록 수고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무너진 이스라엘의 영적인 회복을 위해서 사람들을 일깨우고 경책하고 바로 세우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그렇지만 느헤미야는 주저하거나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기도하지 않고 행한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이스라엘의 재건이라는 엄청난 일들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겨주신 일들을 하다 보면 때로는 지칠 때도 있고, 거대한 벽처럼 느껴져 손을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길 힘도 주시고 감당할 수 있는 지혜도 주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기도하는 자를 통해서 일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새 역사를 써 내려가실 것입니다.

 

나와 공동체가 하나님 말씀 앞으로 돌이키는 개혁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구별하여 불러주심에 감사합니다.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 세속 문화 속에서 동화되거나 동조하지 아니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안에 진정한 개혁이 일어날 수 있도록 먼저 기도하게 하시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언제나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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