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9. | 생명의 삶 | 권오향 목사
할렐루야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로 충만한 주일이 되시기 바랍니다.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권오양 목사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느헤미야를 통해서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이 어떻게 신앙 공동체를 이루며 나라를 세워갔는지를 보았습니다. 참으로 한 사람의 헌신과 결단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깨달으며, 리더십이란 지배력이 아닌 영향력임을 배우게 됩니다.
자 이제 느헤미야의 마지막 장을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도전을 기대하며 함께 묵상하시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느헤미야 13장 10에서 22절입니다.
영적 해이함을 일깨우고 다시 말씀 앞으로
느헤미야 13장 10절에서 22절 말씀입니다.
10 내가 또 알아본즉 레위 사람들이 받을 몫을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자기 밭으로 도망하였기로 11 내가 모든 민장들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제자리에 세웠더니 12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13 내가 제사장 셀레먀와 서기관 사독과 레위 사람 브다야를 창고지기로 삼고 맛다냐의 손자 삭굴의 아들 하난을 버금으로 삼았나니 이는 그들이 충직한 자로 인정됨이라 그 직분은 형제들에게 분배하는 일이었느니라 14 내 하나님이여 이 일로 말미암아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내가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 15 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음식물을 팔기로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16 또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살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예루살렘에서도 유다 자손에게 팔기로 17 내가 유다의 모든 귀인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18 너희 조상들이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을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더욱 심하게 임하도록 하는도다 하고 19 안식일 전 예루살렘 성문이 어두워갈 때에 내가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열지 말라 하고 나를 따르는 종자 몇을 성문마다 세워 안식일에는 아무 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20 장사꾼들과 각양 물건 파는 자들이 한두 번 예루살렘 성 밖에서 자므로 21 내가 그들에게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 밑에서 자느냐 다시 이같이 하면 내가 잡으리라 하였더니 그후부터는 안식일에 그들이 다시 오지 아니하였느니라 22 내가 또 레위 사람들에게 몸을 정결하게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내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시옵고 주의 크신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
느헤미야의 개혁은 계속됩니다.
성전에 기거하던 이방인 도비와 그의 물건을 다 내어 쫓은 느헤미야는 레위인들이 어떠한 형편에 처해 있는지를 면밀히 조사합니다.
그런데 너무나 어이없는 사실은 성전에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해야 될 레위인들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었습니다. 10절에서 "각각 자기 밭으로 도망하였기로"에서 사용된 "도망하다"라는 동사는 사람이 위기를 만났을 때 신속히 숨거나 피하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즉, 백성들이 내는 십일조로 생활을 해야만 했던 레위인들에게 생활비가 공급되지 않자 생계를 위하여서 하는 수 없이 떠나버린 것이죠.
느헤미야가 성전 재건을 다 마치고 난 1년간 예루살렘을 떠난 사이에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갱신하였던 백성들의 신앙이 해이해진 탓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느헤미야는 먼저는 이를 관장하는 민장들을 데려다가 꾸짖으며 묻습니다. 11절인데요.
11 내가 모든 민장들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제자리에 세웠더니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
레위인들이 떠났다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소홀해졌다는 것이고, 이스라엘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느헤미야는 서둘러서 레위인들을 복직시키고 유다 백성들은 다시 11조를 들이게 되었으며, 믿을 만한 사람들이 세워져서 성전의 예배가 다시 원활히 돌아가게 됩니다.
이처럼 느헤미야의 개혁은 말뿐이 아닌 매우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개혁이었고, 무너진 성벽의 제건만이 아닌 예배의 회복, 즉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의 회복이었습니다.
요즘 들어서 신학교에 지원하는 신학생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어서 신학교가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듣곤 하는데요. 이유인즉슨 먹고사는 일이 너무 힘겨워서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포기한다는 것이죠.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자신의 생계에 매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뒤로 하는 불신앙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종을 지지하고 후원하는 성도들의 부족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주신 소명을 포기하지 않도록 기도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돕는 손길들이 아낌없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자신을 맡기는 신앙과 더불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기꺼이 드리는 신앙 또한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 파생되는 것은 예배의 부재입니다.
하나님 앞에 함께 모여 예배하는 공동체 예배가 무너지면 우리의 삶에 예배도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명심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서 씨를 심는 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십일조 생활을 재정비한 후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14절인데요.
14 내 하나님이여 이 일로 말미암아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내가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
자신이 행한 일들이 무산되지 아니하고 지속적으로 잘 유지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11주 생활과 함께 놓쳐버린 것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에미야는 많은 사람들이 안식일에 물건을 사고 팔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것과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두로 사람들이 온갖 종류의 상품을 가져다 파는 것을 목도하게 됩니다.
너무나 놀란 느헤미야는 당장 유다의 귀족들을 불러다가 꾸짖는데요. 17절 18절입니다.
17 내가 유다의 모든 귀인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18 너희 조상들이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을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더욱 심하게 임하도록 하는도다 하고
여러분 안식일은 매주 하루를 따로 구별함으로써 모든 시간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믿으며 자신의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안식일 준수는 그들의 신앙고백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러니 경제적인 이유로 안식일을 어기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는 것이오,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부족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느헤미야는 옛적 조상들의 죄악을 폭로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게 된 것은 결국 조상들의 불신앙 때문이었음을 상기시키면서 신속히 후속 조치를 취합니다.
안식일 전에 예루살렘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끝날 때에는 문을 열지 못하게 하고 성문 안으로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물건을 실은 상인들이 예루살렘 성 밖에서 밤을 지새우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가만두지 않겠노라고 얼음장을 놓고는 레위 사람들에게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성문을 지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이처럼 느헤미야는 행동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잘못된 것을 보고 고민하거나 걱정하는 것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일어나서 목소리를 내면서 사람들을 독려하고 잘못된 것을 수정하고 다시금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거룩함으로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은 세상과 구별되어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기 위하여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지, 우리 자신의 유익이나 행복만을 위하여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식대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이를 벗어난다면 목소리를 내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하고 전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겠죠. 22절을 보십시오. 느헤미야가 또다시 기도합니다.
22 내가 또 레위 사람들에게 몸을 정결하게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내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시옵고 주의 크신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세상을 향해 가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서 다시 하나님께 돌이키게 하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영적인 개혁은 하나님의 일이지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 기도의 끈을 놓치지 아니하고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저희에게도 느헤미야의 헌신과 용기와 기도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최우선으로 삼으며, 세상을 거스릴 수 있는 마음의 결단과 용기를 주시고
이를 위하여서 기도의 무릎을 세우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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