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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찬양으로 여는 봉헌식 축제(느헤미야 12:31~47)(20240927)

2024.09.27. | 생명의 삶 | 김상수 목사

 

감사와 찬양으로 여는 봉헌식 축제

 

안녕하세요 

대전 온누리 교회를 섬기고 있는 김상수 목사입니다.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벽 공사를 마무리하고 이제 미루어 온 성대한 봉헌식을 올려드리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이 일은 인간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감사와 기쁨의 봉원식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았고 삶의 예배로 이어지게 됩니다.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예배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온 백성들이 온전한 십일조를 다시 드리고 하나님 중심의 언약 공동체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오늘 나눌 말씀인 느헤미야 12장 31절에서 47절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와 찬양으로 여는 봉헌식 축제

 

느헤미야 12장 31절에서 47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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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이에 내가 유다의 방백들을 성벽 위에 오르게 하고 또 감사 찬송하는 자의 큰 무리를 둘로 나누어 성벽 위로 대오를 지어 가게 하였는데 한 무리는 오른쪽으로 분문을 향하여 가게 하니
32 그들의 뒤를 따르는 자는 호세야와 유다 지도자의 절반이요
33 또 아사랴와 에스라와 므술람과
34 유다와 베냐민과 스마야와 예레미야이며
35 또 제사장들의 자손 몇 사람이 나팔을 잡았으니 요나단의 아들 스마야의 손자 맛다냐의 증손 미가야의 현손 삭굴의 오대 손 아삽의 육대 손 스가랴와
36 그의 형제들인 스마야와 아사렐과 밀랄래와 길랄래와 마애와 느다넬과 유다와 하나니라 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악기를 잡았고 학사 에스라가 앞서서
37 샘문으로 전진하여 성벽으로 올라가는 곳에 이르러 다윗 성의 층계로 올라가서 다윗의 궁 윗 길에서 동쪽으로 향하여 수문에 이르렀고
38 감사 찬송하는 다른 무리는 왼쪽으로 행진하는데 내가 백성의 절반과 더불어 그 뒤를 따라 성벽 위로 가서 화덕 망대 윗 길로 성벽 넓은 곳에 이르고
39 에브라임 문 위로 옛문과 어문과 하나넬 망대와 함메아 망대를 지나 양문에 이르러 감옥 문에 멈추매
40 이에 감사 찬송하는 두 무리가 하나님의 전에 섰고 또 나와 민장의 절반도 함께 하였고
41 제사장 엘리아김과 마아세야와 미냐민과 미가야와 엘료에내와 스가랴와 하나냐는 다 나팔을 잡았고
42 또 마아세야와 스마야와 엘르아살과 웃시와 여호하난과 말기야와 엘람과 에셀이 함께 있으며 노래하는 자는 크게 찬송하였는데 그 감독은 예스라히야라
43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44 그 날에 사람을 세워 곳간을 맡기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돌릴 것 곧 율법에 정한 대로 거제물과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를 모든 성읍 밭에서 거두어 이 곳간에 쌓게 하였노니 이는 유다 사람이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기 때문이라
45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결례의 일을 힘썼으며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도 그러하여 모두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의 명령을 따라 행하였으니
46 옛적 다윗과 아삽의 때에는 노래하는 자의 지도자가 있어서 하나님께 찬송하는 노래와 감사하는 노래를 하였음이며
47 스룹바벨 때와 느헤미야 때에는 온 이스라엘이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날마다 쓸 몫을 주되 그들이 성별한 것을 레위 사람들에게 주고 레위 사람들은 그것을 또 성별하여 아론 자손에게 주었느니라

 

느헤미야가 바사의 수상궁에 있을 때 그는 유독 예루살렘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이방인들의 해방으로 성벽 공사가 중단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에 기도 중 믿음의 결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던 중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을 받아 총독의 자격으로 성벽 재건에 헌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이방 세력의 훼방과 공격에도 굴하지 않고 52일 만에 성벽 공사를 잘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에 생명을 바쳤던 이유가 과연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단순한 외적인 성벽 공사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거룩한 성전을 둘러싼 성벽 제거는 언약 백성을 세상과 구별하는 경계선이자 표지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벽이 모두 완성되었다는 것은 거룩한 성전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고 찬양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주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평안을 누리게 해 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벽 봉원식은 감격적이었고, 느헤미야 사역의 절정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성벽 재건을 통해 참된 부흥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거룩한 성벽 봉원식이 거행되는 날 유다 공동체는 성벽의 둘레를 걷는 예식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매우 영적인 의미와 상징성이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양쪽에서 두 무리로 거닐면서 성벽의 안전을 확인하고 밟는 땅마다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에스라가 속한 무리가 성벽의 오른쪽을 먼저 돌았습니다.

그는 느헤미야보다 13년 먼저 도착해 성벽 재건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에스라를 소외시키지 않았고 그의 공헌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가 이끄는 무리가 왼쪽을 돌면서 예루살렘 성전 넓은 곳에서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역사적인 예배 현장을 보면 먼저 감사와 찬송을 하는 무리가 앞섰고, 그 뒤에 지도자들과 제사장이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제사장 몇 명은 나팔을 잡았습니다. 35절과 41절을 보십시오.

35 또 제사장들의 자손 몇 사람이 나팔을 잡았으니 요나단의 아들 스마야의 손자 맛다냐의 증손 미가야의 현손 삭굴의 오대 손 아삽의 육대 손 스가랴와
36 그의 형제들인 스마야와 아사렐과 밀랄래와 길랄래와 마애와 느다넬과 유다와 하나니라 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악기를 잡았고 학사 에스라가 앞서서
37 샘문으로 전진하여 성벽으로 올라가는 곳에 이르러 다윗 성의 층계로 올라가서 다윗의 궁 윗 길에서 동쪽으로 향하여 수문에 이르렀고
38 감사 찬송하는 다른 무리는 왼쪽으로 행진하는데 내가 백성의 절반과 더불어 그 뒤를 따라 성벽 위로 가서 화덕 망대 윗 길로 성벽 넓은 곳에 이르고
39 에브라임 문 위로 옛문과 어문과 하나넬 망대와 함메아 망대를 지나 양문에 이르러 감옥 문에 멈추매
40 이에 감사 찬송하는 두 무리가 하나님의 전에 섰고 또 나와 민장의 절반도 함께 하였고
41 제사장 엘리아김과 마아세야와 미냐민과 미가야와 엘료에내와 스가랴와 하나냐는 다 나팔을 잡았고

 

레위인은 다윗의 악기를 가지고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36절에 나오는 다윗의 악기란 재의에 쓰인 재금과 비파와 수음을 의미하였습니다.


36 그의 형제들인 스마야와 아사렐과 밀랄래와 길랄래와 마애와 느다넬과 유다와 하나니라 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악기를 잡았고 학사 에스라가 앞서서


이처럼 무리가 반으로 나뉘어 다른 방향으로 행진하다가 성전에서 만나는 봉헌식은 성벽이 완전히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음을 의미하고, 나파를 불렀던 것은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것을 상징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봉헌식을 통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깨어진 언약관계가 새롭게 회복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이제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저와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는 이러한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회복되는 예배입니까?

최근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면서 내가 가장 크게 은혜를 받았던 적은 언제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찬양하고 감사하며 내가 기쁨의 축제로 만들어 가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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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와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두 무리가 함께 성벽 둘레를 거닌 뒤 한자리에 모여 기도로 시작된 봉헌식은 말 그대로 축제와 기쁨의 현장이었습니다.

두 무리가 성벽을 돌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은 인간의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로부터 온 백성에게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배를 드리던 모든 백성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거룩한 예배를 위해서는 영적으로 민감한 지도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느헤미야가 오래전부터 기도하고 금식하며 기름 부음이 있는 예배를 갈망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다시 살릴 수 있는 것은 오직 거룩한 예배뿐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이러한 예배 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성벽 재건에 뛰어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느헤미야의 기도에 응답하셨고, 그는 행정가요 전략가로서 절망 속에 있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예배의 비전을 보여주었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예배 회복을 위해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을 한마음으로 모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이러한 감사의 예배가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예배가 되게 하기 위해서 백성들을 독려하였습니다.

백성들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며 예배를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격려했던 것입니다.

율법의 낭독과 말씀 선포를 통해 언약백성대로 살아갈 것을 촉구하면서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예배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생계비를 마련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강조하였습니다. 44절을 보십시오.

44 그 날에 사람을 세워 곳간을 맡기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돌릴 것 곧 율법에 정한 대로 거제물과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를 모든 성읍 밭에서 거두어 이 곳간에 쌓게 하였노니 이는 유다 사람이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기 때문이라


여기서 그 날이란 수룻바벨과 느헤미야가 유다의 총독이 되었을 때를 의미하며 그날에 먼저 백성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십일조와 재물을 바칠 수 있도록 격려하였고, 레위인도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에 최선을 다하면서 예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로써 온 백성이 하나가 되어 예루살렘에는 진정한 예배 공동체가 새롭게 세워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예배가 중단되는 일은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배를 준비하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그들의 생계를 공동체가 잘 도와주어야만 했습니다.

 

오늘 말씀에 비추어 성령 충만한 예배를 우리 자신이 드리기 위해 구체적으로 예배공동체를 도와야 할 일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다양한 은사와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거룩한 예배를 위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나의 은사와 섬김은 무엇이 있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활기 있고 기쁨이 넘치도록 내가 조력할 일은 무엇인가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예배의 소중함에 대해서 깨닫게 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나 자신도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거룩한 예배 공동체에 쓰임 받을 수 있는 인생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배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큰 기쁨이 됨을 날마다 깨달아 알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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