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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헌식을 위한 준비, 정결한 몸과 마음(느헤미야 12:22~30)(20240926)

2024.09.26. | 생명의 삶 | 김상수 목사

 

봉헌식을 위한 준비, 정결한 몸과 마음

 

안녕하세요 

대전 온누리 교회를 섬기고 있는 김상수 목사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나의 생각이나 세상적인 방법으로 드려서는 안 됩니다.

오직 율법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거룩하게 들려져야 합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벽 재건 이후 봉헌식을 준비하기 위해 다윗처럼 기름 부 음 있는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이제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언약백성으로 살기 위한 믿음의 결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 오늘 나눌 말씀인 느헤미야 12장 22절에서 30절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봉헌식을 위한 준비, 정결한 몸과 마음

 

느헤미야 12장 22절에서 30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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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엘리아십과 요야다와 요하난과 얏두아 때에 레위 사람의 족장이 모두 책에 기록되었고 바사 왕 다리오 때에 제사장도 책에 기록되었고
23 레위 자손의 족장들은 엘리아십의 아들 요하난 때까지 역대지략에 기록되었으며
24 레위 족속의 지도자들은 하사뱌와 세레뱌와 갓미엘의 아들 예수아라 그들은 그들의 형제의 맞은편에 있어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명령대로 순서를 따라 주를 찬양하며 감사하고
25 맛다냐와 박부갸와 오바댜와 므술람과 달몬과 악굽은 다 문지기로서 순서대로 문안의 곳간을 파수하였나니
26 이상의 모든 사람들은 요사닥의 손자 예수아의 아들 요야김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 때에 있었느니라
27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하게 되니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려 하매
28 이에 노래하는 자들이 예루살렘 사방 들과 느도바 사람의 마을에서 모여들고
29 또 벧길갈과 게바와 아스마웻(아스마웨ㅅ) 들에서 모여들었으니 이 노래하는 자들은 자기들을 위하여 예루살렘 사방에 마을들을 이루었음이라
30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하게 하고 또 백성과 성문과 성벽을 정결하게 하니라


오늘 말씀에는 레위인의 족장과 제사장 명단이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레위인 족장의 가문은 요하난 때까지의 명단이 다른 이스라엘의 역사책에도 기록되어 있을 만큼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구체적인 기록과 정확한 출처를 밝히는 이유는 레위인이 확실한 정통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과거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예배하지 않은 왕들이 자주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사울 왕, 아합왕, 여로보암 시대처럼 레위인과 제사장이 아닌 자들이 권력을 이용해 하나님을 잘못 예배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악행을 바로잡기 위해 성결과 정화의 방법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먼저 12장에 기록된 제사장과 레위인의 명단은 모두 느헤미야와 에스라 시대에 활동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26절을 보십시오. 

26 이상의 모든 사람들은 요사닥의 손자 예수아의 아들 요야김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 때에 있었느니라

 

그들은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언약 백성으로서 모두 다윗의 명령대로 다윗이 정한 순서에 따라서 예배하고자 합니다.

즉 인간적인 방법과 세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배를 드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의 역사처럼 두 번 다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포로존 죄와 우상숭배로 돌아가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신실한 언약백성으로 살아가고 싶은 그들의 열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예배의 모습은 레위기와 시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배의 중요한 요소는 나의 생각과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이 중요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죄와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것이 하나님께 나오는 예배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고, 종교적인 의식보다도 상한 심령으로 정직하게 나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먼저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백성들의 거룩한 예배를 돕는 자들로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사마리아 여인에게 참된 예배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참된 예배란 신령과 진리 안에서 드려지는 거룩함의 예배입니다.

우리는 구약의 제사장들처럼 세상을 거룩하고 정결하게 하기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말씀에 비추어 나는 교회 안에서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거룩한 예배자로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 자신을 거룩하게 할 뿐 아니라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빛 가운데로 인도하는 제사장적인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공동체 안에서 부르심과 은사를 인정하고 존중할 이들은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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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성벽 재건을 마무리한 유다 공동체는 거룩한 봉헌식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이 부분에서부터는 인칭의 변화가 '나'로 기록되어 느헤미야의 비망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와 같이 매우 중요한 내용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벽을 완공하고 하나님께 봉헌식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것은 모든 것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는 절대 주권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성벽과 성전을 부분적으로 봉원한 적은 있었습니다.

왕정 시대는 성전을 봉원하였지만 또한 부분적으로 봉원하는 예식은 있었지만, 포로생활 이후 귀환한 유다 공동체처럼 성전이 성전 안에서 뿐 아니라 예루살렘 성 밖에까지 확장되었음을 의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는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예배드리는 일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의 주님이 되신다라는 고백과도 같은 것입니다.

매일 매 순간 하나님과 동행하며 믿음으로 살기로 다짐한다는 의미로 보여집니다.

이처럼 일상생활까지 확장된 예배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들여질 봉헌식을 위해 느헤미야는 각 성에 흩어졌던 레위인들을 다시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예배의 전문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레위인은 구별된 자로서 성전 안의 예배 음악과 같은 중요한 부분을 맡은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감사와 기쁨의 예배를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사람들입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거룩한 예배를 위해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새롭게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내 생각과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결 의식을 행하고 거룩한 몸과 마음으로 봉헌식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의식이나 헌물과 십일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들이기에 힘썼던 것입니다.

이처럼 새 언약 공동체는 자신의 삶을 들이는 것에서 거룩해지고 싶었습니다.

성벽 봉헌식에 참여한 제사장과 레위인은 먼저 자신을 구별하고 백성들과 성문, 성벽까지도 거룩하게 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를 어떻게 매주일 매일 준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매일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께 어떠한 예배를 드리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나요?

교회 안에서만 거룩하게 예배하고 또 일상생활에서는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예배자들은 아닐까요?

 

이러한 이원론적 예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말씀 앞에 나 자신을 구별하여 산 재물로 드리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감사와 기쁨의 예배를 위해 꼭 함께해야 하는 이들은 누구인가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배하지 못했던 지난날의 죄를 회개합니다.
편리한 것과 나 중심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했던 나의 삶을 회개하기 원합니다.
이 시간 이후부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드리는 참된 예배자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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