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3. | 생명의 삶 | 김상수 목사
안녕하세요
대전 온누리 교회를 섬기고 있는 김상수 목사입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성벽은 세상과 구별된 모습을 보여주며 이스라엘의 영적인 정체성을 보여주는 경계가 되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느헤미야는 이러한 성벽의 의미를 잘 알았기에 모든 백성들과 힘을 합하여 그 사역을 이루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포로 이전 예루살렘에서 드려지던 예배의 영광을 회복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느헤미야는 본격적으로 예배 회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역자들인 제사장 레위 사람, 성문지기 느디님 사람이 누구인지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인 느헤미야 11장 10절에서 21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배를 섬기며 성전을 관리하는 사람들
10 제사장 중에는 요야립의 아들 여다야와 야긴이며 11 또 하나님의 전을 맡은 자 스라야이니 그는 힐기야의 아들이요 므술람의 손자요 사독의 증손이요 므라욧의 현손이요 아히둡의 오대 손이며 12 또 전에서 일하는 그들의 형제니 모두 팔백이십이 명이요 또 아다야이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블라야의 손자요 암시의 증손이요 스가랴의 현손이요 바스훌의 오대 손이요 말기야의 육대 손이며 13 또 그 형제의 족장된 자이니 모두 이백사십이 명이요 또 아맛새이니 그는 아사렐의 아들이요 아흐새의 손자요 므실레못의 증손이요 임멜의 현손이며 14 또 그들의 형제의 큰 용사들이니 모두 백이십팔 명이라 하그돌림의 아들 삽디엘이 그들의 감독이 되었느니라 15 레위 사람 중에는 스마야이니 그는 핫숩의 아들이요 아스리감의 손자요 하사뱌의 증손이요 분니의 현손이며 16 또 레위 사람의 족장 삽브대와 요사밧이니 그들은 하나님의 전 바깥 일을 맡았고 17 또 아삽의 증손 삽디의 손자 미가의 아들 맛다냐이니 그는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자가 되었고 형제 중에 박부갸가 버금이 되었으며 또 여두둔의 증손 갈랄의 손자 삼무아의 아들 압다니 18 거룩한 성에 레위 사람은 모두 이백팔십사 명이었느니라 19 성 문지기는 악굽과 달몬과 그 형제이니 모두 백칠십이 명이며 20 그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유다 모든 성읍에 흩어져 각각 자기 기업에 살았고 21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주하니 시하와 기스바가 그들의 책임자가 되었느니라 |
성벽 재건 이후 예루살렘에 남게 된 사람들이 정해지자 느헤미야는 구체적으로 제사장, 가문의 명단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8장과 10장까지 에스라엘 율법 낭독으로 백성 안에 언약 갱신이 이루어지자 이스라엘의 영적인 정체성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세상에 심으신 이유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자 예배의 개혁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 이후 공동체의 영적인 정체성과 성전 제사의 회복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원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성전 회복을 책임질 제사장 레위인들이 누구인지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11 또 하나님의 전을 맡은 자 스라야이니 그는 힐기야의 아들이요 므술람의 손자요 사독의 증손이요 므라욧의 현손이요 아히둡의 오대 손이며
하나님의 전을 맡은 자란 아론의 직계 후손인 대제사장을 가리킵니다.
느헤미야가 스라야 족보를 5대조까지 기록하고 있는 것은 이들이 역대상 6장에 나오는 마지막 대제사장 여호사닥 이후에 태어난 후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과 가문의 족보를 강조하는 까닭은 이들이 영적인 순결성과 믿음의 정통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론의 후손만 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율법을 준수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제사장 가문으로 유아립 인멜, 바스홀 가문이 소개되는데, 하림 가문만 제외하고 이들이 모두 예루살렘에 남게 되었음을 말해줍니다.
제사장 가문의 일부를 큰 용사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성전의 예배만이 아니라 성전을 수비하는 일도 직접 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루살렘의 제사장은 하나님의 전에서 예배를 책임지던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자녀로서 이 세상에서 어떤 예배자로 살아가고 있나요?
로마서 12장 1절에서 2절은 구원 이후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예배자로 살아가야 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영적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내가 속한 곳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제사장의 명단에 이어 느헤미야는 이제 예루살렘에 남은 레위인들과 봉사자들의 명단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남기로 결정한 레위인들 가운데서도 지도자 격인 스마야와 족장인 사프데와 요사밭이 먼저 솔선수범하여 예루살렘에 남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성경에서 레위인이란 제사장을 도와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를 의미하는데, 그들은 하나님께 드려진 십일조와 헌물도 관리했습니다. 아삽의 후손들은 예루살렘 안에서 성전 음악을 담당했습니다.
보통 하나님의 말씀에 곡조를 붙인 것이 찬양이 되기에 17절에 감사하는 말씀이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을 의미합니다.
17 또 아삽의 증손 삽디의 손자 미가의 아들 맛다냐이니 그는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자가 되었고 형제 중에 박부갸가 버금이 되었으며 또 여두둔의 증손 갈랄의 손자 삼무아의 아들 압다니
기도할 때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들이 예루살렘 성전의 찬양 인도자가 되었음을 가리킵니다.
성경은 여두둔의 후손 압다도 그의 선조를 따라 성전 음악을 담당했다고 증언합니다.
성문직이란 예루살렘 성 수비대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제사장, 레위인들을 도와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아굽과 달몽과 그의 형제 172명은 성전 관리를 담당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레웨인과 여러 봉사자들의 헌신으로 인해 예루살렘의 예배가 회복되고 성전 관리도 새롭게 정비되어 가자 예루살렘은 어떤 곳으로 변해가고 있나요?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으로 아름답게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성전 안에서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성전 밖에서는 문지기와 느디님 사람들에 헌신하게 되자 잃어버린 예배의 영광이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게 되고 예배의 회복과 부흥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마음껏 예배의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려고 선택한 예루살렘이 거룩한 도성의 이름을 회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려고 했던 것은 예배의 회복과 부흥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과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예배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예배가 무너져 있다면 모든 것이 무너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나머지 모든 것들은 저절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예배의 우선순위를 두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예루살렘 성이 불타고 성벽이 무너진 것처럼
우리가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소홀하지 않았는지 돌이켜보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가정 안에 무너진 예배가 회복되게 하시고
나의 일상생활에서 예배의 부흥이 일어나게 하시고
가는 곳마다 참된 예배자의 삶을 회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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