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율법 낭독과 회개 기도, 온전한 경배의 자리(느헤미야 9:1~8)(20240916)

2024.09.16. | 생명의 삶 | 임채영 목사

율법 낭독과 회개 기도, 온전한 경배의 자리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아현동에 있는 서부교회를 섬기고 있는 임채영 목사입니다.

 

제주도 서귀포에 가면 보목 포구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서 매년 1년에 한 번씩 자리돔 축제가 열린대요.

이 자리돔 길이가 한 10cm 정도밖에 안 되는 검은색의 볼품없는 생선인데요.

이것이 유명한 이유는요. 

다른 물고기들처럼 멀리 헤엄쳐 다니는 회유성 물고기가 아니라,

자기가 태어난 장소를 벗어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만 살아가는

그래서 이름이 자리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게 행복이 아닐까요?

 

오늘부터 추석 명절이 시작됩니다. 

그동안 떠나 있었던 여러분의 자리로 돌아가는 이번 추석이 되면 어떨까요?

부모의 자리, 자녀의 자리, 가족의 자리, 이 빈자리가 채워지는 행복한 추석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 말씀으로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할 말씀은 느헤미야 9장 1절부터 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율법 낭독과 회개 기도, 온전한 경배의 자리

 

더보기
1 그 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2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3 이 날에 낮 사분의 일은 그 제자리에 서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4 레위 사람 예수아와 바니와 갓미엘과 스바냐와 분니와 세레뱌와 바니와 그나니는 단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고
5 또 레위 사람 예수아와 갓미엘과 바니와 하삽느야와 세레뱌와 호디야와 스바냐와 브다히야는 이르기를 너희 무리는 마땅히 일어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어다 주여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하올 것은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이다

6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7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8 그의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그와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의 씨에게 주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셨사오매 주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

 

느헤미야 8장에서는 말씀을 사모하는 열심, 즉 말씀을 통한 부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9장에 들어와서는 부흥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됩니다.

8장의 마지막 말씀 기억하시나요? 18절이에요.

느헤미야 8:18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요.

에스라가 낭독하는 말씀을 통해 초막절을 알게 된 거예요.

그리고 여호수아 이래로 제대로 지켜본 적이 없었던 초막절을 제대로 지킵니다.

그렇게 초막절 7일 기간이 끝나고 마지막 성회를 열어 초막절에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그리고 그 후 이틀이 지났습니다. 1절 보세요. 1절 상반절이죠.

1 그 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그 달 290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그때가 언제라고요? 그 달 스무 나은 날입니다. 

성경에서 날짜를 이야기할 때는 의미가 있죠.

그럼 이날이 무슨 날일까요? 혹시 어떤 절기일까요?

그런데 아무 날도 아닙니다. 아무 절기도 아닙니다.

정말 아무 날도 아무 절기도 않은데 이스라엘 백성이 다 모였어요.

이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 앞에 모이는 데 꼭 이유가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절기일 때만 모이는 거 아니잖아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면 꼭 무슨 기념일이나 절기가 되어야지만 신앙생활하는 거 아니잖아요.

평범한 일상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게 될 때 그것이 우리의 진짜 신앙생활 아닐까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여기서 중요한 말은 기뻐하는 것, 기도하는 것, 감사하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요.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 이것입니다.

그렇게 300년을 살았던 사람이 에녹이고 그런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었으며,

그 삶이 오늘 우리의 삶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이들이 모여서 무엇을 했을까요? 1절 하반절과 2절을 보십시오.

1 그 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2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굵은 배를 입고 티끌을 덮어썼어요.

이것은 극심한 슬픔의 표현입니다. 

무엇에 대한 슬픔이었을까요?

지난날 포로생활과 고단했던 삶에 대한 슬픔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는 더 포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조상들의 범죄함이 지금 자신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음에 대한 부끄러움의 표현이었을 겁니다.

이방인과 절교했습니다.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죄를 자복합니다.

자기의 죄뿐 아니라 조상들의 죄까지 자복하며 부르짖는 거예요.

여기에서 자복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자복

이 자복이라는 말이 뭘까요? 요한일서 1장 9절을 보시면 

요한일서 1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는 자복 자백. 그러면 우리가 우리 기억 속에서 잘못한 것을 끄집어내서 하나님 앞에 고하는 것 이렇게 생각하죠.

그러다 보니까 혹시 내가 자백하지 않는 죄는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지 않나? 이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요. 자백이라는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이 자백은 그리스어 그러니까 헬라어로 호모 로게요라는 말인데 그 말의 뜻은요.

같은 말을 하다인 거예요. 즉 동의하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 자백이라고 하는 것은 시작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지적해 주실 때 그때 같은 말을 하는 것, 

즉 하나님의 말씀 앞에 아멘 하는 것이 자복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죄의 자백과 회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설 때 일어납니다.

오늘도 이 하나님 말씀 앞에 먼저 서십시오.

 

나는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시간을 얼마나 가지나요?

 

반응형
728x90

 

아무 날도 아무 절기도 아닌 내 온 이스라엘 백성이 한자리에 모여서 회개합니다.

회개 없는 백성은 망합니다. 

여러분 회개를 단순히 눈물 짜는 울보들의 행위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회개는 하나님 앞에 서는 겁니다. 

회개를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어긋난 모습을 발견하는 겁니다.

 

여러분 오늘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다들 거울 보고 오셨죠?

마치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정돈되지 못한 모양새를 매만지고 고치는 것 이것이 회개예요.

회개를 거창한 행사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평범한 일상이 되어야 됩니다.

마치 거울 보듯이 하나님 한 번 보고 나를 보는 겁니다.

여기에서 회개가 시작되고요. 그리고 부흥의 시작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3절 보세요.

3 이 날에 낮 사분의 일은 그 제자리에 서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무슨 말일까요?

유대인들은요. 

하루를 밤과 낮으로 구분하고 밤과 낮을 각각 4 등분씩 해서 모두 8등분 해서 하루를 표현했습니다.

그러니까 낮 4분의 1이라고 할 때는 오전 6시부터 오전 9시까지 3시간이에요.

이 시간 동안 율법책을 낭독했다. 또한 낮 4분의 1은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입니다.

낭독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 백성들이 죄를 자복하며 하나님께 경배해 올린 겁니다.

각각 3시간씩 말씀 듣고 죄를 자복하는 일에 저희들의 시간을 드린 거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듣고 깨달은 시간만큼 동일한 시간을 들여 자신들의 죄와 허물을 자복합니다.

그리고 이 회개의 결과가 4절부터 나옵니다.

4 레위 사람 예수아와 바니와 갓미엘과 스바냐와 분니와 세레뱌와 바니와 그나니는 단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고

 

레위인들이에요.

레위인들이 누구죠? 

하나님의 일, 특히 제사와 예배를 위해서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먼저 단에 올라가서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것이 그들의 일이었어요.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하는 일이 그들의 일이었는데 지금까지 못한 거예요.

아니 안 한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 말씀 앞에서 그들이 이 죄를 깨닫고 나서는 자기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단에 올라가서 그들이 해야 되는 기도를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5절에도 또 명단이 등장해요.

5 또 레위 사람 예수아와 갓미엘과 바니와 하삽느야와 세레뱌와 호디야와 스바냐와 브다히야는 이르기를 너희 무리는 마땅히 일어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어다 주여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하올 것은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이다

 

이들은 레위인 가운데서도 특별히 백성들 앞에서 찬양하고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인도하는 자들이에요.

요즘으로 말하면 찬양대나 찬양 인도자들. 그런데 그동안 이들이 그 일을 안 한 거예요.

그런데 말씀의 지적 앞에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자기의 자리로 돌아온 겁니다.

그래서 앞장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거예요.

자기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

 

여러분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는 혼돈 카오스 상태였어요.

이 말씀에서 벗어나면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죠.

말씀 안에서 책임과 역할을 잘 감당하는 삶을 살아야 보람과 기쁨이 있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도 이 말씀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통해 여러분의 자리를 확인하고 여러분들의 자리로 돌아오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조화로운 삶,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삶으로 변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 앞에 내가 간구할 소망은 무엇인가요?

 

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디 있는지를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자리에 있기를 원하면서도 어느 순간 그곳을 떠나 있는 저희들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거울 앞에 우리를 비추어주고 있어야 될 자리에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