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4. | 생명의 삶 | 도육환 목사
할렐루야
하나님께 예배하는 복된 주일입니다.
국내와 해외에 계신 성도님들,
특히 선교 현장을 고군분투 지켜 나가시는 모든 선교사님들,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이 함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영종 온누리교회를 섬기는 도육한 목사입니다.
여러분은 절반의 성공이라는 말을 잘 아실 것입니다.
어떤 목표나 계획에 어느 정도 성취는 했지만 완수하지 못한 상태를 말하지요.
그러나 성공의 절반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동안의 수고와 노력은 인정해 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성공한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영적 삶의 절반의 성공이란 있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북이스라엘의 종교개혁의 사명을 가지고 특별한 열심을 냈지만
결국 온전한 개혁을 이루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한 예후에 대하여 묵상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묵상할 말씀은 열왕기하 10장 28절에서 36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불완전한 순종에 주어진 한시적 약속
28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29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30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내리라 하시니라 31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32 이 때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서 땅을 잘라 내기 시작하시매 하사엘이 이스라엘의 모든 영토에서 공격하되 33 요단 동쪽 길르앗 온 땅 곧 갓 사람과 르우벤 사람과 므낫세 사람의 땅 아르논 골짜기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길르앗과 바산까지 하였더라 34 예후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과 업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35 예후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36 예후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린 햇수는 스물여덟 해이더라 |
엘리아가 예언한 대로 예후는 우상숭배로 이스라엘을 더럽힌 아합의 집을 거침없이 멸망시켜 나갑니다.
아합의 아들 요람도 죽이고 이세벨도 죽였습니다.
아합 집안의 모든 사람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바울을 섬기는 제사장들을 불러 모아 한꺼번에 처단하고 우상들을 불사르고 바알신전을 파괴하며 그곳을 화장실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예후는 스스로 여호와를 향한 열심을 보라고 자랑할 정도였습니다.
분명 예후는 하나님의 공의를 집행하는 도구로 쓰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후의 개혁은 절반에 그쳤습니다. 28절 29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28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29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예후는 수많은 바울 우상과 신전을 넘어뜨렸지만 정작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던 우상의 거점은 제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던 여로보암은 자기 백성들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내려가게 되면 마음과 신앙의 중심이 남유다로 기울어질 것을 우려해서 단과 베델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그 앞에 백성들이 예배하게 한 것입니다.
예후는 수많은 우상들을 제거하고 우상 숭배자들을 죽이기도 했지만, 여로보암이 세웠던 단과 베델의 우상은 그대로 남겨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 열지파의 신앙 중심지였기 때문이지요.
예후 역시 여로보암의 길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결국 아합의 집안은 청소하였지만 정작 자기 안에 있는 욕심과 야망을 청소하지는 못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들을 무너뜨리긴 했지만, 자기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의 우상은 남겨둔 것입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마음의 일부만 내어드린 것입니다.
사명도 절반의 성공, 그리고 상급도 절반만 받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예후가 아합의 집을 심판하는 일에 앞장선 것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자손 사대에 걸쳐 이스라엘 왕위를 지킬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예후의 삶이 낙재 처리되지는 않았다는 뜻입니다.
한편 예후의 가장 큰 잘못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는 행동파입니다. 결단하고 실행하는 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습니다.
그의 강한 성품 때문에 용기 있게 아합의 집을 멸망시킬 수는 있었지요.
하나님께서도 나 보기에 정직한 일을 잘 행하였다고 칭찬하고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예후는 율법에 기록된 말씀 곧 하나님께서 우상을 얼마나 싫어하시는지를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자신의 정치적인 이익이 된다는 판단으로 단과 벧엘의 금송아지를 남겨두고 백성들이 여전히 우상숭배하게 한 겁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지만,
전심으로 섬기지 못한 채 절반의 신앙으로 살아갈 때가 적지 않습니다.
열심도 있고 충성스럽기도 한데,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엉뚱한 일로 시간과 삶을 낭비할 수도 있지.
그래서 속도보다 중요한 것이 방향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내 열심과 내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섬겨야 합니다.
봉사하고 충성하는 것이나 이 모든 것들이 개인의 욕심과 필요를 채우는 수단이 되는 것이 아닌지를 늘 점검해야 합니다.
혹 저와 여러분에게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여로보암의 죄가 무엇인지,
혹 그것이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마음속에 여전히 주인 행세하는 금송아지를 무너뜨리고 제거할 믿음의 결단과 용기를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그 누구보다 우리 자신이 신앙개혁의 대상임을 알고 온전한 믿음의 걸음으로 한 걸음씩 주님께 나아가는 신실한 제자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학기 말이 되면 학생들은 학교에서 성적표가 나오고, 직장인들은 때때로 업무에 대한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아합의 집을 심판하는 일에 앞장섰던 예후의 평점은 얼마나 될까요? 31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31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예후는 아합의 집안을 멸망시키는 일에는 성공적으로 수행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에는 전심으로 행하지 않았다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린 예후의 평점은 이 한 줄에 요약돼 있습니다.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는 했는,데 전심을 드리지 않았고 마음의 반쪽만 걸쳐놓은 것입니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곧 단과 벧엘에 세운 금송아지로 인해 백성들이 죄짓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예후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자 하나님은 이방인의 막대기로 이스라엘을 치셨습니다.
아람의 하사엘이 공격해 들어온 것입니다. 32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32 이 때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서 땅을 잘라 내기 시작하시매 하사엘이 이스라엘의 모든 영토에서 공격하되
'이때에'라는 단어에 주목해 보십시오.
어느 때를 말할까요?
예후가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다스리고 있던 때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영적으로 보면 예후가 죄에서 돌이키지 않고 있을 때를 가리킵니다.
외견적으로는 아람 아람 왕 하사엘이 쳐들어온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인 원인은 다른 데에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서 땅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하십니다.
누가 주도하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곧 징계였습니다.
이방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예후와 이스라엘의 죄를 징계하신 것입니다.
하사엘은 이스라엘 모든 영토에 침략해 들어왔습니다.
동쪽 길으앗에서부터 르흐벤 무나스의 모든 땅까지 적들의 손에 온 전투가 적에게 유린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결과입니다.
죄의 첫 대면은 언제나 매력적이고 달콤해 보이지만 그 결국은 비참함과 황폐함으로 끝납니다.
예후가 사마리아에서 북이스라엘을 통치한 기간은 28년이라 합니다.
적지 않는 기간 왕 위에 있었지만, 국력은 쇠퇴했고 백성들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오래 사는가?
내가 그 자리에 얼마나 오랫동안 직위를 지켰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으며 어떤 영향력이 흘러갔는가? 하는 것일 겁니다.
그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내 삶을 어떻게 평가하시는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후의 삶을 보면서 우리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늘 충실해야겠다는 우리 자신을 다시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혹 형식적인 신앙, 습관적인 믿음 생활에 머물러 있지는 않는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말씀도 읽고, 예배 자리도 앉았는데 마음은 딴 데 가 있지는 않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 지식, 깨닫게 된 하나님의 말씀만큼 살아가고 있는가?
물론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습니까마는
오늘도 묵상 중에 다시 우리의 내면의 생활을 돌아보고 예배자로 우리 자신을 다시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음에 담은 말씀 삶으로 살아내는 제자가 되어 가십시다.
진리의 길에 섰으니 땅의 우상들을 제거하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갑시다.
여러분의 결단에 성령께서 도우시고 힘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존귀하신 주님
오늘도 우리의 예배에 기름을 부어주시고
깨달은 말씀 따라 우리 안의 우상들을 버리고 말씀에 순종하며 진리를 굳게 붙드는 복된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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