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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한 개혁, 자비심 없는 심판 도구(열왕기하 10:12~27)(20240713)

2024.07.13. | 생명의 삶 | 백상욱 목사

 

과격한 개혁, 자비심 없는 심판 도구

 

안녕하세요 

저는 광진구 자양동에 있는 오늘의 교회를 섬기는 목사 백상욱입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죠.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좋지 않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한 사람이 등장하지만 그가 지나치게 행동함으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을 하고 있는 내용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예후가 그런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열왕기하 10장 12절부터 27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먼저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과격한 개혁, 자비심 없는 심판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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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예후가 일어나서 사마리아로 가더니 도중에 목자가 양털 깎는 집에 이르러
13 예후가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나 묻되 너희는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우리는 아하시야의 형제라 이제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안하러 내려가노라 하는지라
14 이르되 사로잡으라 하매 곧 사로잡아 목자가 양털 깎는 집 웅덩이 곁에서 죽이니 사십이 명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15 예후가 거기에서 떠나가다가 자기를 맞이하러 오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만난지라 그의 안부를 묻고 그에게 이르되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 하니 여호나답이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이르되 그러면 나와 손을 잡자 손을 잡으니 예후가 끌어 병거에 올리며

16 이르되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하고 이에 자기 병거에 태우고
17 사마리아에 이르러 거기에 남아 있는 바 아합에게 속한 자들을 죽여 진멸하였으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이르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18 예후가 뭇 백성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으나 예후는 많이 섬기리라
19 그러므로 내가 이제 큰 제사를 바알에게 드리고자 하노니 바알의 모든 선지자와 모든 섬기는 자와 모든 제사장들을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불러 내게로 나아오게 하라 모든 오지 아니하는 자는 살려 두지 아니하리라 하니 이는 예후가 바알 섬기는 자를 멸하려 하여 계책을 씀이라
20 예후가 바알을 위하는 대회를 거룩히 열라 하매 드디어 공포되었더라

21 예후가 온 이스라엘에 사람을 두루 보냈더니 바알을 섬기는 모든 사람이 하나도 빠진 자가 없이 다 이르렀고 무리가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매 바알의 신당 이쪽부터 저쪽까지 가득하였더라
22 예후가 예복 맡은 자에게 이르되 예복을 내다가 바알을 섬기는 모든 자에게 주라 하매 그들에게로 예복을 가져온지라
23 예후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과 더불어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서 바알을 섬기는 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살펴보아 바알을 섬기는 자들만 여기 있게 하고 여호와의 종은 하나도 여기 너희 중에 있지 못하게 하라 하고
24 무리가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려고 들어간 때에 예후가 팔십 명을 밖에 두며 이르되 내가 너희 손에 넘겨 주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도망하게 하는 자는 자기의 생명으로 그 사람의 생명을 대신하리라 하니라
25 번제 드리기를 다하매 예후가 호위병과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들어가서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죽이라 하매 호위병과 지휘관들이 칼로 그들을 죽여 밖에 던지고

26 바알의 신당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신당에서 목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27 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신당을 헐어서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된 대로 예후는 거침없이 숙청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아합과 아합에 관련된 모든 집안의 사람들을 남김없이 제거하고 진멸시키고 있는 것이죠.

그러다가 예후은 다시 사마리아 성으로 내려가서 일군의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가 만난 사람들은 유다 왕의 가족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 왕의 가족들에 대해서도 예후는 조금도 아끼지 않고 그들도 한 칼에 진멸하고 마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13절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13 예후가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나 묻되 너희는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우리는 아하시야의 형제라 이제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안하러 내려가노라 하는지라
14 이르되 사로잡으라 하매 곧 사로잡아 목자가 양털 깎는 집 웅덩이 곁에서 죽이니 사십이 명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이 본문에 나오는 이 사람들은 유다 왕 아시아의 가족들이고 형제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태후라고 일컫는 이세벨의 가족과 그리고 아합의 가족들을 만나기 위하여 문안인사하러 지금 북쪽 이스라엘로 가고 있던 길이었습니다. 이들은 아합의 식구들이 아니라 유대 백성들이고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이었습니다.

물론 이들 가운데는 모계로 연결된 곳이 있어서 피가 섞여 있기는 하였겠지만 이들은 유다 사람들이었었습니다.

아합과 관련된 사람들을 모조리 숙청하던 예후는 아합이란 말만 듣기만 하여도 남김없이 거침없이 숙청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 왕의 식솔들과 왕족들을 한꺼번에 42명이나 한 자리에서 죽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후를 통해서 북이스라엘 아합 왕국의 패악한 것을 심판하기를 원하셨지만,

예후가 한 일은 지나치고 또 가혹했으며 끔찍했습니다.

예후는 사마리아에 남아 있던 아합의 자손들과 그리고 그의 신하들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유다 왕국의 왕족들도 선멸시 키고 죽이는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힘을 가지고 있을 때 조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열정을 가지고 있을 때 열정이 한계를 넘어서지 않도록 자신을 통제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불이 조절기에서 조절되지 않는다면 그 불은 초가삼간관을 다 태우는 위험천만한 불이 됩니다.
그러나 불이 조절기를 통해 잘 조절되고 통제된다면 음식을 만들고 물을 끓이고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열정과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이 있다고 할 때, 그것이 성령에 의하여 올바른 인격에 의해서 적절하게 통제돼야 되지, 통제 되지도 않는 야망과 야욕은 위험천만할 뿐인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하면서 내 안에 있는 야망과 욕심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의 말씀을 오용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분별력 없는 열정에 휘둘린다면 우리는 마치 우리를 벗어난 야생 짐승처럼 위험천만한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오늘 예후는 이처럼 통제되지 않는 열정, 잘못된 열정으로 인하여 지나치게 잔인한 살율을 하는 모습을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안에는 열정의 거룩한 불꽃을 하나님의 은혜와 겸손의 통제 아래 두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을 이루는 과정에서 내가 신중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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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두 번째 단락은 15절부터 시작되는데 예후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레갑은 어떤 사람인지, 여호와의 아답은 어떤 사람인지, 성경에는 그에 관하여 별다른 언급이 없습니다만, 본문 15절을 보면 여호와는 나답과 예후는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이처럼 보입니다. 제가 1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5 예후가 거기에서 떠나가다가 자기를 맞이하러 오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만난지라 그의 안부를 묻고 그에게 이르되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 하니 여호나답이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이르되 그러면 나와 손을 잡자 손을 잡으니 예후가 끌어 병거에 올리며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은 예후를 만나기 위하여 예후를 향해 가고 있었고, 여호나답을 알아본 예후는 즉시 손을 내밀며 우리가 서로 마음이 통하냐고 확인해 보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이들은 어려서부터 친구이거나 매우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예후는 여호나답과 손잡고 강력한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계속되는 숙청의 일환으로 북이스라엘에 남아 있었던 바알의 제사상을 모조리 숙청하는 일을 이 여호나답과 함께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예후는 여호나답과 함께 계략을 꾸며서 자신이 아합보다 더욱더 바의 제사장을 섬기고 바알을 위하여 제사를 드리겠다고 하면서 아합이 세워놓았던 거대한 바알의 신전으로 바알의 제사장들을 모두 불러 모읍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제사장들이 입는 예복을 입히고 신전 안으로 다 불러 모은 후에 그 신전 안에 혹이라도 있는 여호와의 종들을 모두 나가게 하고 오직 바알의 제사장만 높이는 것처럼 그런 모양을 꾸밉니다.

그리고는 문을 폐쇄하고 병사들을 시켜서 그 안에 있는 바알의 제사장을 모두 숙청하도록 하였던 것이죠.

아합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바알의 신당, 그것은 바알의 재상과 바알의 무덤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바알을 위하여 제사를 드리고 바알에게 기도하고 바알을 섬기는 수없이 많은 제사장이 그곳에 있었지만,

바알은 그들을 도와주지 못했고, 자신의 집을 지키지도 못했으며, 자기 자신도 지킬 수 없었던, 그저 남의 목상이고 주상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이 우상의 실체입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큰 신전과 거대한 모습으로 자랑하고 있고, 마치 무언가를 할 것처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후가 바알의 신전과 바알의 세사상을 숙청하지 않고 다만 아합의 사람들만 죽였다면, 

사람 속에 깊이 뿌리 박고 있는 바울 숭배가 북이스라엘의 편만하여서 이스라엘의 악한 죄로부터 그들을 건져내지 못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후는 여호와 나답과 함께 남아 있는 바의 제사를 모두 죽임으로 그들의 패악함과 악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 집행했던 것입니다.

 

바알의 신전은 변소로 바뀌었다고 본문에 언급하고 있는데요. 26절과 2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26 바알의 신당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신당에서 목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27 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신당을 헐어서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가장 신성하고 또 복의 원천으로 여겨졌던 바알의 신당이 가장 더러운 오물들이 모이는 변소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이 땅에는 우상숭배하는 사람들과 우상의 세력이 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화려하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는 것 같지만, 마지막 때 하나님의 심판의 칼날 앞에 모두 무너지게 되고 더러운 오물들만 모여 있게 되는 불구덩이에 떨어질 것을 묘사하는 것만 같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사는 날에 눈에 보이는 우상을 좇을 것이 아니라, 경건한 마음과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만을 쫓아 살아가는 복된 나무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 안에, 그리고 이 시대에 철저히 제거해야 하는 바알은 무엇인가요?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권력을 주시고 물질을 주시고 영향력을 주실 때 
오만하지 않게 해 주시고 겸손하게 하여 주옵시며 
나 자신의 한계를 언제나 잘 인식하여 하나님과 사람을 잘 섬길 줄 아는 진실한 통로로 쓰임 받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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