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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영원히 살아 계신 예수님(누가복음 24:1~12)(20240331)

2024.03.31. |  생명의 삶 | 김형석 목사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영원히 살아 계신 예수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지구촌 교회를 섬기는 김형석 목사입니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후 이스라엘에서는 다양한 메시아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메시아 운동은 리더의 죽음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운동, 이 기독교는요. 오히려 온 세계로 뻗어나갔습니다.

역사적으로 그 어떤 운동도 이렇게 오랜 기간,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운동은 없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오늘 말씀은 누가복음 24장 1절부터 12절 말씀입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영원히 살아 계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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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 3일째 날 새벽 여인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무덤 문은 열려 있고 그 안에 있어야 할 예수님의 시신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인들이 근심하고 있을 때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나 

'어찌하여 살아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아주 분명하게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해 주신 것이죠.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동안 하신 말씀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처럼 예수님은 사망과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게 되는 놀라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절망의 순간에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기독교가 2천 년이란 긴 시간 동안 놀라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처럼 예수님의 그 이름 안에 부활의 생명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죽음 앞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삶을 살아가고 있죠. 뉴스만 들어보면 언제나 절망의 소식을 듣게 되죠.

최근 불어닥친 경제 한파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죽음과 같은 불안을 가져다줍니다.

우리 주변에는 너무 쉽게 죽음의 전조, 증상을 가진 질병, 실패, 여러 가지 것들을 경험한 사람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죽음과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 보기 위해 애를 쓰죠.

돈과 성공을 통해 희망찬 미래를 꿈꿔보기도 합니다.

건강한 음식이나 운동을 통해 활기찬 삶을 유지하려 하기도 합니다.

또는 취미생활이나 즐거운 모임에 참여하며 살아있음을 느끼려고도 해 보죠.

하지만 우리의 이런 노력을 비웃기라도 한 듯이 인생의 고난과 실패, 질병은 갑작스럽게 어느 때나 우리를 찾아오게 되죠.

그때서야 우리는 이 죽음이 멀지 않은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런 세상과 우리 인생들에게 부활이라는 아주 심플한 메시지로 생명의 메시지를 전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죽음의 영향력과 죽음과도 같은 시련 가운데 살아가고 계십니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부활의 주, 부활의 생명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부활을 통해 우리가 누릴 영원한 생명인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없이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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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처음 목격한 사람들은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녀들은 무덤 안에 천사들이 전한 부활의 소식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곧장 달려가 11 사도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그녀들의 말을 허탄한 말이라 믿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이것이 당연한 반응이죠. 

오늘날만큼이나 당시에도 부활은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죠.

당시 사람들에게 죽은 사람이 부활한다는 사실은 생각할 수도 없는, 아마 개념에도 없는 그런 일일 것입니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살아생전 제자들에게 수차례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귀담아듣는 사람이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점은 아무도 믿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들은 자신이 보고 들은 그대로를 전하였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회적으로 천대를 당했던 이 여인들이 어떻게 이렇게 담대하게 부활의 소식을 전할 수 있었을까요?

 

오늘 성경 8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다고 합니다.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성경은 그녀들의 이름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죠. 

귀신 들렸다가 예수님께 고침 받은 막달라 마리아, 예수님과 제자들을 늘 섬겼던 요한나 야곱의 모친 마리아, 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많은 여인들 모두 예수님께 큰 사랑을 받았던 이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소중히 간직했던 자들이었던 것이죠.

그랬기에 제자들조차 로마 군인들이 무서워서 다가가지 못했던 그 예수님의 무덤을 그들은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된 것이죠. 

그리고 천사들로부터 부활의 소식을 들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생전에 하신 그 말씀을 떠올리며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부활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면서도 그들은 달려가서 부활의 소식을 전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확신과 담대한 용기가 복음을 힘 있게 온 열방 가운데 전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말씀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냥 그 사랑을 지식적으로 안다 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고 체험하고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 움직여야만, 또 그 감격이 가득해야만 우리는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거부하고 그것을 미련한 것이라고 여기는 이 세상 속에서도 부활의 소식을 기쁨으로 전할 수 있는 것이죠.

오늘날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 바로 이런 삶이 아닐까요?

 

주님의 사랑과 말씀을 붙잡고 부활의 증인으로 사는 삶, 

부활의 소식에 대한 감격과 기쁨이 두려움보다 훨씬 커서 상황과 환경을 뛰어넘어 복음을 전하는 삶, 

이런 자들을 통해 온 열방의 굿 뉴스, 기쁜 소식이 전해지게 될 줄 믿습니다.

 

사도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한 이들은 누구였나요?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 아버지 
어둠의 권세, 사망의 권세 아래 살아가던 우리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통한 새로운 생명을 얻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부활의 소식을 기쁨으로 전했던 여인들의 모습처럼, 
우리도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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