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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의 입맞춤, 도망가는 제자들(마가복음 14:43~52)(20240215)

2024.02.15. | 생명의 삶  | 조호영 목사

 

배반의 입맞춤, 도망가는 제자들

 

안녕하세요. 

온누리 교회 조호영 목사입니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고통의 시간들을 경험합니다. 

큰 고통 중에 하나는 바로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는 경험일 것입니다.

사랑했던 배우자의 배신, 오랜 시간을 함께 자라왔던 친구의 배신, 믿었던 형제의 배신, 사업 파트너의 배신 

정말 사랑했고 믿고 의지했고 신뢰했던 사람으로부터 받은 배신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못합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내가 북한의 김정은이는 용서해도 나를 배신한 내 남편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상처의 아픔을 아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가장 가깝게 품고 사랑하며 양육했던 자신의 제자로부터 당하는 배신을 이미 먼저 경험하신 우리 예수님 

그래서 그분은 우리의 아픔을 더 이해하시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심에 감사합니다.

오늘 가롯유다가 예수님에게 배신의 입맞춤을 하며 스승을 팔아넘기고, 

다른 제자들은 스승을 버리고 다 도망가버리는 그 개세만의 동산 그 현장으로 함께 가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마가복음 14장 43절에서 52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배반의 입맞춤, 도망가는 제자들

 

배반의 입맞춤, 도망가는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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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4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 가라 하였는지라
45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46 그들이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47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48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49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51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유다에게 그렇게 돌이킬 기회를 주었건만, 결국 가롯유다는 은 30개의 스승 예수를 팔아넘깁니다.

정말 기가 막힌 것은 그 당시 은 30개의 값어치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죠.

주석가들은 가롯유다가 예수를 팔아넘긴 가격이 500에서 1500 데나리온 정도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보통 그 당시 노예의 가격이 그 정도였고, 성인이 한 달 월급에 지나지 않는 아주 낮은 가격이라고 합니다.

기억하십니까? 그 베다니 여인이 자기 옥합을 깨뜨린 그 나드 양의 가격이 성인 1년 치 월급 값어치였는데, 

그것에 비하면 가롯유다는 겨우 한 달치 월급의 가격으로 예수를 팔아넘기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 여인이 그 옥합을 깨뜨릴 때 옆에서 그렇게 아까워하며 비난을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봅니다.

어찌 되었건 지금 가롯 유다는 군인들을 동원하여서 예수를 잡기 위해 밤에 찾아옵니다.

43절에서 45절입니다. 

43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4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 가라 하였는지라
45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유다는 예수를 체포할 때 그 암호로 입맞춤을 하며 존경의 말로 '랍비여' 라고 부릅니다.

그 부드러운 인사 뒤에 비수를 숨기고 있는 그의 모습은 인간의 교활함과 악함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고하신 대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며 체포되십니다.

부패한 죄는 겉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속은 썩어 있는 회칠한 무덤과 같이 간교하고 사악합니다.

그 예수님은 그 입맞춤을 간교한 입맞춤을 피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시며 능력의 주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바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죄 없으신 아들 예수님을 대신 십자가에 죽이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결단이었죠.

구원의 언약이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이 땅에 죽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이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금 그 언약이 이루어지고 있는 그 현장입니다.

 

이 언약이 이루어지는 과정 가운데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베드로입니다. 47절 보겠습니다. 

47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48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49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베드로는 위기의 순간에 칼을 빼어 그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쳐 떨어뜨립니다.

이 모습이 어찌 보면 멋있고 용기 있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가는 그 과정에 전혀 상관없는 불필요한 용기요 불필요한 반응입니다.

세상이 사용하는 무기는 칼이요, 총이요 검미요 뭉치요 이런 폭력적인 것들입니다.

그래서 가롯 유다의 무리들은 손에 그 무기를 들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무기는 그들과 다릅니다. 

예수님의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고 믿는 것이오.

바로 49절 말씀처럼 말씀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 그것이 무기입니다.

 

성도들의 무기는 기도입니다. 말씀의 순종의 무기입니다.

지금 여기 베드로는 세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그 동일한 무기, 그 동일한 감정을 가지고 세상의 방법대로 그들과 맞대응을 하고 있는 것이죠.

세상이 법대로 하니 우리도 법대로 하자. 

이해는 이 눈에는 눈으로 대응하며 싸우려고 하는 그런 모습들이 요즘 우리 성도들의 모습 안에는 없는지요.

믿는 자들이라면 과연 하나님이시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하실까?

이 상황을 통하여 나에게 지금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신 것일까라고 먼저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내가 원하는 방법과 길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방법, 그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성도임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요한복음에서 보면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마셔야 한다라며 베드로를 나무 하십니다.

그리고 종의 그 귀를 고쳐주십니다. 끝까지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며 치유하시는 예수님 

베드로처럼 우리는 종종 주님을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주님의 일에 오히려 방해가 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성도는 자신의 생각,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데에 함께 순종함으로, 기도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동역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지금 베드로는 예수님의 동역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자신의 감정대로 막 행동하는 것이죠. 

결국 그는 점점 상황이 어려워지고 지금 예수님께서 그를 막으시고 하니, 어둠 속에서 두려워 다른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버립니다.

결국 예수님 말씀대로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순간입니다.

바로 내 식대로 하는 그 결과가 이것이라는 것이죠.

오늘 주님 저희에게 물으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가? 너의 식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할 때, 생각과 마음을 살피시는 주님은 뭐라고 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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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가 이끌고 온 무리들에게 순순히 체포당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50절입니다. 

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제자들은 다 도망가고 예수님은 홀로 남으셨습니다.

그들은 절대로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위험이 닥치자 자신들의 약속은 다 잊어버리고 순식간에 주님을 버리고 도망갑니다.

자기 목숨을 지키는 일에 급급했습니다. 

이렇듯 사람은 정말 연약한 존재입니다.

우리의 의지는 이렇게 나약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교만할 수 없습니다.

그런 즉 성경은 

고린도전서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순간순간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만 합니다.

매일매일 성령의 충만함으로 우리의 영을 재충전해야만 합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주 안에서는 할 수 있습니다'

라고 주를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나는 매 순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었습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다는 것을, 나의 삶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임을 고백하며 나아가야만 합니다.

 

여기 또 한 청년이 등장하지 51절 52절 마지막 절입니다.

51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한 청년이 맨몸에 그 겉옷 세마포를 두르고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잡히자 그 세마포를 버리고 줄행랑을 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이런 겉옷 세마포를 둘렀다는 것은 부자라는 것을 의미했다고 합니다.

많은 주석가들은 이 청년은 이 마가복음을 쓴 마가 요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마가의 다락방을 가진 그 마리아의 그 아들, 그 큰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으로 이 예수님과 제자들이 식탁을 같지 않았습니까?

그 아들이 그것이 끝나고 지금 게세만의 동산까지 따라온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는 또 바울의 1차 전도 여행 때 바나바와 같이 선교여행에 동참했다가 중간에 혼자 힘들어 돌아가 버려 바울을 많이 힘들게 했던 그 마가 요한입니다.

최후의 만찬 후에 그 예수님을 따라나섰다가 이 광경을 목격하고 겉옷까지 버리고 도망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청년의 새 마포처럼 예수님은 버려졌고 홀로 남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십자가의 길을 홀로 가셔야만 했습니다.

아무도 그 길을 대신 가줄 수도 없고 함께 갈 수도 없는 외로운 길입니다.

그 길을 예수님은 묵묵히 조용히 순종하며 그 고난의 길 비아돌로로사로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 뜻대로 십자가에 달리십니다.

다 이루었다 고백하시며 그 십자가를 지십니다. 

게세만의 동산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고백했던 기도처럼 

마가복ㅇ므 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끝까지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 바로 그 십자가를 지신 그 예수님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오늘 저와 여러분은 죄 사함의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이 겁장이 제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너무나 쉽게 예수님을 외롭게 버리고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는 우리의 모습은 없는지, 

나에게 닥친 십자가가 너무 무섭다고 어렵다고 두려워하면서 도망치는 제자들의 모습은 없는지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 도망치는 곳에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습니다.

십자가가 없다면 생명이 없습니다. 도망치는 그곳에는 부활이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도망칠 수 있는 가장 유일한 안전한 피난처는 예수님이 계신 십자가 위임을 기억하는 오늘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자 제자들은 어떻게 행동했나요?

 

하나님 
배신하는 유다의 모습을 보면서, 
도망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안에 있는 이런 연약한 믿음을 바라봅니다.
오늘도 주님 앞에 하나님, 저는 연약합니다. 고백하며 
다시금 주님께 두 손 들고 돌아오는 은혜가 저희들에게 있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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