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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보다 멸시받는 만왕의 왕(마가복음 15:1~15)(20240218)

2024.02.18. | 생명의 삶  | 서정오 목사

 

살인자보다 멸시받는 만왕의 왕

 

샬롬

주님 안에서 평안하셨죠?

진세골 온누리 교회에서 영성수련회를 운영하고 있는 심혜원 원장, 서정우 목사입니다.

고난 받으신 예수님을 묵상하는 고난 주일 첫 주일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엉뚱한 이유로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아보거나 아니면 억울하게 고발을 당하신 적은 없으셨습니까?

그때 어떻게 대처하셨습니까? 

사람 위해 오신 예수님, 죄와 흠도 없으셨던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 법정에서 고초를 당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피고석에 앉아 계시던 예수님은 당당하셨고, 심판석에 앉아 있던 빌라도는 어찌할 줄 몰라 안절부절못합니다.

오늘의 말씀 마가복음 15장 1절부터 15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살인자보다 멸시받는 만왕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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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2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3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4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5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6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7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8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9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0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11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12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3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2절부터 4절까지 제가 읽겠습니다. 

2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3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4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5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마가복음 14장 64절에 보면 공해에서 예수님이 사형에 해당된다고 한 그 죄목은 사실상 신성모독죄였습니다.

제가 한번 읽어보죠.

마가복음 14:64
그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총독에게 고발하는 죄목에는 신성 모독죄가 없습니다.

대신이 분명치도 않았던 여러 가지 죄목들로 빌라도를 겁박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23장 2절에서 우리는 짐작할 따름입니다.

누가복음 23:2
2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봄에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예수님이 백성들을 선동하고 미혹했다는 거죠.
첫째가요.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기를 금하며 세금 바치지 말라고 했다는 겁니다.

자칭 왕 그리스도라고 하더이다.

 

세 가지 죄목을 드러내놓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백성들을 선동했다는 거,

둘째는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지 말라고 했다는 거, 

그리고 자기가 친이 왕이니까 로마 정권의 반역을 꾀했다는 것 

사실 이 세 가지가 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었던 것이지요.

 

제사장들 대제사장들은 로마 정부가 또 특별히 총독이 식민주의 사회에서 종교 문제를 가지고 하는 것에 별로 관여를 하지 않았었습니다.

총독은 식민지 사회에서 종교 문제를 가지고 사람을 사형 언도를 내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었던 것을 잘 알고 있었던 대제사장들은 그래서 죄목을 로마 정부에 대한 반역죄로 정치범으로 바꿔 넣었던 것이죠.

한마디로 말해서 대제사장들은 예수를 죽일 수만 있다면 무슨 방법이 있는지 죄목이 어떻든지 상관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예수님께서는 마치 그들의 음모에 그냥 빠져들어가는 것처럼 빌라도의 질문에 내가 정말 유대인의 왕이냐 하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 한마디 하시고는 그 후로는 아예 침묵을 하고 마십니다.

 

이제 묻습니다. 첫 질문을 했던 거요.

여러분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엉뚱한 누명을 쓰고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아본 적이 있으셨던가요?

또는 억울하게 고발당해본 적은 있으셨나요?

그때 어떻게 대처하셨습니까?

살다가 보면 우리도 예수님만큼은 아니지만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해명도 하고 변명도 하고 법적인 대처도 하고 그러지만 경험을 통해 보니까 그래서 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교회 안에서는 점점 더 복잡해져 가는 것이 더 많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차라리 지목하자.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에 맞게 드리자는 거죠.

사도 바울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힘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믿는 형제와 자매들끼리 싸우고 다투는 것보다는 공의의 하나님의 손에 맡겨 드리고 살아가는 것이 지혜롭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수많은 고발에 침묵하신 예수님 모습에서 내가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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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7절 이하며 절도 읽어봅니다. 

7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8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9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0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러라
11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12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3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 빌라도가 이르되 어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사실 살인자는 예수님이 아니라 바라바였습니다. 그리고 밀란 선동자는 예수님이 아니라 또한 바라바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들은 그런 바라바는 놓아주고, 죄 없으신 예수님은 무리를 충동질해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합니다.
13절에 다시 소리 지르되 14절에 더욱 소리지르되 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군중들의 함성 소리에 그만 겁을 먹고 빌라도 총독은 바라반을 놓아주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고 맙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정적을 없애려고 했던 간악한 대제사장들.

 

그런 충동질에 속아서 무엇도 모르고 자신들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던 군중들.

그런 군중들의 강압에 못 이겨서 죄 있는 자는 방면하고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케 했던 그 비겁한 총독.
빌라도. 

그런 농간들 속에서 죄인이면서도 오히려 예수님 때문에 다시 살아나게 됐던 바라바라고 하는 살인자.

아무리 이 인물들을 생각해 봐도 모두 다 죽어 마땅한 죄인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을 묵상하다가 보면 이 사람들 속에 사실은 우리들의 모습들이 면면히 드러나고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사장들처럼 나는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남들 따라 소리 높이던 군중들 속에 한 사람처럼

나는 사람들이 바로 가지 않는 데에도 불구하고 한춘이엄 들면서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불법이 자행되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리고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중들의 협박에 밀려서 포기했던 비겁한 총독 바로 나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무죄한 예수님 대신에 다시 살아났던 바라바 사실은 나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주일 이날 깊이 생각하는 것은 내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었던가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회개해 봅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제가 대제사장이고, 제가 바라바이고, 제가 비겁한 총독이었고, 제가 바로 군중 속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2024년 사순절 첫 주일을 맞으면서 

오늘 하루 온종일 동안 

주님 십자가를 묵상하며 

주님 곁에서 그를 조롱했던 많은 무리들, 깊이 묵상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거룩하게 헌신하는 오늘 하루 보내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왕이신 예수님이 극악한 살인자보다 멸시받으시 이유는 무엇인가요?

 

억울한 재판 앞에서도 당당하셨던 우리 주 예수님을 찬송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죄물로 삼으려 하거나 남들의 충동질에 놀아나서 죄짓지 않도록 
진실을 알면서도 비겁하게 악의 편들지 않게, 
그리고 은혜로 받은 생명에 늘 감사하면서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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