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0. | 생명의 삶 | 노치형 목사
때를 분별하는 지혜로 깨어 있는 충성된 삶
샬롬
오늘은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을 알려주시고 또 새롭게 살아가라고 주시는 설날이라고 생각됩니다.
귀한 설날,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신 하늘과 땅의 모든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는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노치영 목사입니다.
새해가 되면 또 이 설이 되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이미 그런 생각을 마치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시작하게 될 때 우리가 정말 계획한 것이 바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죠.
그럴 때 여러 가지 형태의 반응이 나오게 됩니다.
준비가 잘 안 되었을 경우나 생각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 우리는 불안하고 초조하게 됩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겪는 공통적인 현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조금 더 부정적으로 나가게 되면 낙심하고, 절망하고, 포기해야 되겠다는 생각 속에 빠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을 선택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한 적극적으로 이 상황들을 다시 고쳐나가고 또한 해결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깊이 생각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사실 우리의 삶에는 스트레스가 되는 것이죠.
그러한 모습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할까? 이 묵상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마가복음 13장 28절에서 37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함께 듣겠습니다.
때를 분별하는 지혜로 깨어 있는 충성된 삶
28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29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1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34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6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마지막 때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이 마지막 때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한 두 가지를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28절부터의 말씀입니다.
28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29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앞에 나타난 모든 징조들에 대해 생각할 때, 무화가 나무의 비유를 들면서 무화가 나무를 바라보는 그 일상 속에서 바라보는 그 모습 속에서 계절의 변화를 아는 것처럼 이러한 징조들이 나타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가 가까이 왔음을 기억하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까이 오셨다라는 것은 이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 오실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불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그런 불안함을 떨쳐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예수의 이름을 우리 중심에 새겨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거짓과 죄악과 죽음으로부터 자유케 되었다는 것이죠.
우리의 마음속이 오직 예수 이름으로 가득 차 있다면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그 말이 우리에게는 하나도 두렵지 않을 것이며,
그것은 우리의 나갔던 가족이 돌아올 때 그 돌아온다는 말이 당연한 것처럼 그렇게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다시 만날 수 있구나, 다시 모일 수 있구나라는 그 평안함 속에 우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종말의 때는 단순한 진노의 모습 때문에 두려워하라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이것은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하나님과 더 친밀해지라는 하나님의 사인으로 우리는 받아들이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비유의 말씀은 그저 단지 심판을 기다리는 그 자의 두려운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화과의 때가 다가오고 그리고 싹이 나고 잎이 연하여져서 자라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바로 열매가 맺을 때가 다가온다는 것이죠.
무화과 열매는 어떤 데 쓰입니까?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입니까? 아니요. 무화과 열매는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달콤한 맛에 우리는 빠져들게 되는 것이죠.
그 열매가 주는 기쁨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열매가 맺혀질 때 그것이 진노의 순간으로 고통의 순간으로 느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이 바로 우리에게 두려움의 날이 아니라.
우리가 좀 더 미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날이 아니라.
속히 오셨으면 좋겠다는 그러한 기쁨의 소식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 계속해서 말씀을 나눕니다. 30절 31절입니다.
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1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아멘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다 이루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은 꼭 이루신다는 것과 그리고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을 모든 세대가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꼭 이 세대라고 말해서 예수님의 세대가 이미 지난 지 언제인데 이 말씀을 우리가 보고 있는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아니라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루신 하나님의 그 뜻을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에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천지는 변하고 없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남아있는다라는 것이죠.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지는 유한한 것이다.
그래서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창조의 중심에 있는 그 말씀은 결코 없어질 수 없다라는 것이죠.
우리는 그 사실에 마음의 평강을 두고 믿음을 사용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오직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다시 돌아오시는 그 순간이 기쁨의 순간이 돼야 하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거짓 증인들을 따라가지도 말고, 세상의 헛된 미혹 그것에 넘어지지도 말고, 또 처처에 들려오는 여러 가지 난리와 전쟁의 소문에 눌리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원자이심을 확신하며 그날을 기쁘게 기다리라 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고백을 우리 무화과나무 열매에 비유해서 우리가 알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새로운 시작을 하며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지, 또 어떻게 새로운 생각을 이어갈지 여러 가지로 불안하고 초조할 때 우리는 먼저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쁘게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이 현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깨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모든 상황에 빠져 눌려 지내지 않고, 또 이 현실에 취해서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지 못하는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32절부터의 말씀입니다.
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34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예수님께서는 그날과 그때는 오직 하늘 아버지만 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는 분이 유일하게 한 분밖에 없다는 것에 대한 안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모르니 계속 불안해해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순간이 올 때 깨어 있으면 알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죠.
우리가 깨어 있으면 여러 가지를 알게 됩니다. 이런 상황 저런 상황들이 다가올 것이라는 것을 보게 되죠.
우리가 눈을 뜨고 자연을 바라보고 있을 때, 구름의 형태를 보고 구름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 비가 올 것을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또 저 앞쪽에서 비가 오고 있는 것을 볼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비를 피할 방법을 생각하든지 아니면 빗 속을 지나갈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대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죠.
깨어 있는 자는 그 모든 앞에 있는 일들에 대해서 그 변화에 대해서 또 그것이 우리에게 어려움이 되건 기쁨이 되건 간에 그것을 대비할 수 있는 준비를 할 시간이 주어진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들, 예수를 그리스도라 믿는 자들이 얻게 되는 복 중에 하나는 바로 깨어 있는 복입니다.
이 깨어 있게 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냥 마구 깨어 있으라고 하면 깨어 있지 못합니다.
어릴 적에 시험 공부를 해야 하고, 시험 기간에 내가 이 정도의 공부를 이만큼 해야 된다라는 목표가 정해졌을 때도 밤을 새우려고 마음을 먹으면 졸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 졸음을 이겨내기 위해서 미리 잠을 자두기도 하고 여러 가지 다른 방법을 가지고 동원해보지만 한 번 졸린 잠은 깨어나기가 어렵습니다.
그 잠을 자는 것 이것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공부하는 것보다 잠을 자는 게 저에겐 더 중요했기 때문에 저는 잠을 잤던 것이죠.
하지만 어느 날 제가 꼭 간호해야 할 사람을 간호해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명이 제 안에 있다라는 것을 확인하게 됐을 때, 저는 그 간호를 하기 위해서 졸음이 오고 또 피곤하지만 그것을 참아내야 했습니다.
깨어 있기 위해서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하고 그것을 시도하면서 되도록이면 내가 보살펴야 하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죠. 목표가 있으면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깨어 있으라 하시면서 그냥 무조건 깨어 있으라고 어떤 계명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다고 했습니다.
문지기는 문을 지켜야죠. 자기가 맡은 그 시간 안에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안다는 것입니다.
군대에 보초를 서는 야간 보초를 서는 군인들이 그 야간 보초를 서는 시간만큼은 깨어 있어서 지켜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 문제가 터지기 때문이죠.
개인에게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도 어렵게 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
사명을 맡은 자로서 깨어 있으라는 말을 기억하게 되길 바랍니다.
새로운 시작을 할 때 우리가 하는 일이 잘못되어 다시 시작해야 될 때, 우리는 내가 사명을 받은 존재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사명을 받은 존재라는 사실이 확신된다면 우리는 깨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본문의 마지막입니다. 36절부터의 말씀,
36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우리가 하나님이 다시 우리를 보러 오셨을 때 잠들어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마치시고 세족식을 하시고 그리고 다락방의 설교가 끝나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러 가셨죠. 그때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겟세마니의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그 땀이 핏방울을 흘려내듯이 고통스러운 기도를 하실 때 그 옆에 있던 제자들은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죠.
"한시라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마음의 원유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의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는 이 말은 예수님의 대사라는 사실이죠.
우리가 할 수 있는 변명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으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우리의 믿음의 삶이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그러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길,
그것이 이 새해에 우리 모두의 삶에 풍성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새로운 시작 속에 담대하게 하시는 하나님,
변하고 사라지는 천지만물과 피조물에 의지하던 모든 삶을 내려놓고
변치 않으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들고 깨어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쁨과 감동을 누리며 승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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