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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 새끼를 타신 겸손과 평화의 왕(마가복음 11:1~10)(20240201)

2024.02.01. | 생명의 삶 | 김주환 목사

 

나귀 새끼를 타신 겸손과 평화의 왕

 

생명의 삶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허브 교회를 섬기는 김주환 목사입니다.

2월 첫째 날을 맞이해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새 힘과 또 새 능력을 부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유월절 기간에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에게는 최고의 날이었죠. 최고의 축제였습니다. 

하지만 로마인들에게는 악몽이었어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이 불타는 애국심을 갖고 예루살렘에 모여드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 기간에는 예루살렘 인구가 무려 3배나 늘어났죠.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이 폭동의 위험에 대비해 로마는 병사들을 평소보다 10배 많은 병사들을 배치했습니다.

바로 이런 긴장감 도는 상황 속에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거예요.

이 마가복음 1장에서 10장까지의 내용은 주로 예수님의 사역을 다루고 있었다면, 이 11장부터는 예수님의 희생, 고난, 죽음을 집중적으로 다루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왕 되심을 보여주실 것이에요.

그리고 그것 때문에 종교 정치 지도자들은 대놓고 예수님을 적대시하며 죽이려고 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보게 될 말씀은 마가복음 11장 1절에서 10절입니다.

 

나귀 새끼를 타신 겸손과 평화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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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1장은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이 걸으신 길은 먼저 베다니를 통과한 후에 벳바게에 이르는 길이었습니다.

이 베바에는 예루살렘에서 불과 3km 떨어진 곳이었는데요.

이 지점의 이 해발 고도는 약 800미터였어요. 

그러니까 거기에 있으면 예루살렘 도시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환상적인 전망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한 번도 하지 않은 행동을 하시게 됩니다.

그동안 제자들에게 반복적으로 하지 말라고 경고하셨던 바로 그런 행동을 하시는 거예요.

이제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향한 지지와 애정을 공공연히 드러내도록 허락하세요.

1절 후반부를 보게 되면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두 제자를 베바개로 보내서 예루살렘 입성을 위해 필요한 나귀 새끼 한 마리를 가져오도록 합니다.

왜 마왕의 왕이 나귀 새끼를 빌려야 하셨을까요? 

왜 창조주가 뭔가 없어서 얻어쓰셔야 했던 것일까요?

예수님은 왜 남의 구유, 남의 배, 남의 나귀, 남의 다락방뿐만 아니라 심지어 남의 무덤까지 빌려 쓰셨어야 했을까요?

왜냐면 그는 부한 자로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셨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스스로 낮아지심으로 우리와 함께 동역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너무나 놀라운 은혜인 것 같아요. 

하나님은 이런 선택을 내리실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 우리의 협력 없이는 혼자 일하시지 않는 자리까지 내려오셨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우리의 가정, 우리 교회, 우리의 일터와 공동체 가운데 일하시는 분입니다.

 

왜 굳이 우리와 함께 일하실까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다스릴 준비를 하기 위해서죠.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죠. 

왜 굳이 기도해야 하나요?

왜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됩니까? 

아니 그냥 믿으면 되지 왜 굳이 교회에 가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배해야 되죠?

왜 성도들과 같이 교제를 해야 되죠?

왜 소그룹 생활을 해야 되죠?

나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 믿을 수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통치하실 때 언제나 우리와 함께 우리의 참여를 통해 일하시는 분이에요.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필요하세요.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을 필요로 하십니다. 

우리의 순종과 협력이 필요하십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안다면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는 놀라운 변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할 때 우리는 놀라운 축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3절 후반부를 보게 되면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이게 변함없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드리면, 우리의 시간이든 우리의 물질이든 정성이든 재능이든 기회이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더 큰 것으로 갚아주시는 분입니다.

 

나귀 새끼가 끌어온 이야기에서 예수님의 영적 권위가 어떻게 드러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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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7절에서 1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신 것은 구약 성경 스가랴 9장 9절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서였죠.

스가랴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이로써 예수님은 두 가지 목적을 이루십니다. 

첫 번째,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과 메시아 되심을 선포하시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종교, 정치 지도자들에게 전면적으로 도전을 합니다.

이제 예수님의 체포와 고문과 십자가 처형은 시간문제죠.

예루살렘에 모여든 이 애국심에 불타던 유대인들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하면서

"호산나" 하고 반복적으로 외칩니다.

"호산나"는 지금 구원하소서라는 뜻이에요.

물론 이들은 영혼 구원이라든지 혹은 죄로부터의 구원을 갈망하면서 외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정치적인 구원, 군사적인 구원, 물질적인 구원을 갈망하면서 외쳤던 것이죠.

 

오늘 우리는 어떤 구원을 갈망하고 있나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길 위에 펼쳐놓았습니다.

이런 행동은 왕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의미였죠.

또 그들은 손에 이 종려가지를 들었는데, 이는 전쟁과 승리를 상징했었죠.

이들은 이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열렬히 환영한 똑같은 사람들이 

일주일 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다는 그런 얘기를 여러분들도 들어봤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과 좀 다르죠. 

왜냐하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환호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갈릴리에서 온 사람들이었고, 

일주일 뒤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 사람들은 대다수가 유대와 예루살렘에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갈릴리 유대인들은 예수님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출신이었기 때문에 이 로마의 이 개선장군은 말을 타고 입성했고, 

그 뒤에 과시용으로 이제 포로들이 뒤따랐는데요.

예수님은 어떻게 입성하시냐면 겸손하시기 때문에 

그냥 나귀도 아니라 나귀 새끼를 타시고 12 제자들과 함께 초라하게 입성하십니다.

이 땅의 관점으로 보면 좀 우습죠. 너무나 초라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힘과 전쟁의 나라가 아닌 사랑과 평화의 나라의 왕으로 오신 것이죠.

우리 모두 사랑과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 앞에

다시 한번 우리의 충성의 겉옷을 벗어 펼쳐서 주님을 맞이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평화의 왕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존경을 어떻게 표현하나요?

 

사랑과 평화의 왕으로 오신 주님 
오늘도 나의 겉옷을 펼쳐 주님을 나의 왕으로 맞이합니다.
언제나 부족한 저의 협력과 순종을 통해 일하시는 주님 
주가 쓰시겠다 하실 때에 주님 쓰시기에 편한 겸손한 낙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내 삶에 왕관을 내어드리며 
평강의 왕이신 주님을 온전히 바라보며 따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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