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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을 얻기 위한 선택, 제자가 되기 위한 포기(마가복음 10:17~31)(20240129)

2024.01.29. | 생명의 삶  | 김주환 목사

 

영생을 얻기 위한 선택, 제자가 되기 위한 포기

 

 

 

생명의 삶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허브 교회를 섬기고 있는 김주환 목사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함께 복된 하루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역설적 교훈은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것이에요.

성경을 보면 주님 앞에 나와 엎드린 사람들은 언제나 나아지고 좋아져서 떠나게 됩니다.

우리도 주님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어떤 문제를 갖고 나왔든 그분 발 앞에 엎드리기만 하면 분명히 나아지고 분명히 좋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앞에 나와 엎드렸는데도 좋아지지 않고 도리어 더 나빠진 상태로 돌아간 사람이 한 명이 있었는데요.

바로 우리가 잘 아는 부자 청년입니다. 

이 안타까운 것은 그는 사실 모든 면에서 굉장히 미래가 밝았던 사람이었어요.

그는 젊었죠.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었죠. 또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죠. 

그리고 젊은 나이에 높은 자리에 올라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동안 도덕적인 삶을 살았고 심지어 예수님께 직접 달려 나가서 그의 발 앞에 엎드릴 정도로 영적인 것에도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부자 청년은 여러모로 괜찮은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예수님도 그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는 더 나빠진 상태로 돌아가게 되었을까요? 

오늘 우리가 함께 보게 될 말씀은 마가복음 10장 17절에서 31절입니다.

 

영생을 얻기 위한 선택, 제자가 되기 위한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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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19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0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23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24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6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27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8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17절 말씀을 보면

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젊은 남성은 훌륭한 자질을 골고루 갖춘 사람이었지만 영적인 지식이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었던 거예요.

내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야 할 텐데, 뭔가를 충분히 하면 잘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던 거죠.

이 부자 청년의 생각은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갖고 있었던 생각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오늘도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기도 하죠.

심지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어쩌면 교회에서 가장 열심인 사람들에게 해당될지도 모르죠.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면 하나님 앞에서 더 의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헌신으로 우리의 부족함과 우리의 허물을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주일 성수나 헌금 생활이나 봉사와 선교 등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업적처럼 쌓으면서 자신이 확실히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는지 모릅니다.

 

왜 이런 사상이 여전히 지배적일까요? 

이것은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죄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죄를 그저 나쁜 행동, 잘못된 습관, 또 욕망을 쫓는 삶으로 보기 때문이죠.

죄는 결코 행동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죄는 행동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안 나타날 수도 있어요.

죄는 언제나 우리 안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반역,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죠.

인간이 하나님 없이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노력하고 더 의로워지려고 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요. 

착하게 살고 또 율법을 지키면 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19절과 20절 말씀입니다. 

19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0 그가 여쭈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십계명에 대해서 물어보신 거예요.

그런데 이 청년은 자신이 다 지켰다고 말합니다. 그는 율법도 피상적으로 이해했어요.

그는 자신의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던 거예요.

하지만 율법은 우리가 얼마나 더러운지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죠.

율법은 거울입니다. 거울은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지 못하죠.

거울은 우리에게 있는 더러운 것들을 보게 해주는 역할만 합니다.

율법의 목적은 다시 말해서 우리가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지를 보게 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 앞에 나아가 엎드리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거죠. 이 청년도 예수님 앞에 나와 엎드렸습니다. 

하지만 율법은 딱 거기까지만 우리를 도와줄 수 있어요.

율법은 결코 죄인을 깨끗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죠. 

오직 예수님만 우리를 깨끗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청년은 자신을 더러운 죄인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율법은 그냥 겉으로 행동으로만 지키면 되는 것이지 마음과 동기는 뭐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던 거예요.

물론 행동으로 보면 이 청년은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한 번도 살인한 적이 없죠. 간음한 적도 없죠. 도둑질도 안 했죠.

그러니까 죄인이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거예요.

 

그러자 예수님은 이 청년으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도록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21절과 22절입니다.

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그에게 부족한 한 가지는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았어요.

그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에게 있어서 진짜 하나님은 재물이었던 거예요.

그는 하나님보다 자신의 재물을 더 사랑했고 더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고 말씀하시자 그는 결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이 청년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은 물론 모든 제자들에게 다 적용되는 말씀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부자 청년에게 필요한 말씀을 주신 것이에요.

이 사람의 문제는 재물이 많았던 게 아니라 그 많은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죠.

 

예수님은 그에게 영생의 선물을 주시고자 하셨어요. 하지만 이 청년은 거절합니다. 

왜냐하면 영생보다 재물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죠.

 

부자 청년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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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은 예수님의 재물에 대한 가르침을 듣고 깜짝 놀랍니다.

왜냐하면 이 유대인들 에게는요. 부는 하나님의 축복의 상징이었거든요.

이 청년은 그만큼 하나님께 인정받았기 때문에 부자가 됐다고 모두가 생각했습니다.

근데 오늘날 여전히 많은 성도들이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요.

내가 예수 잘 믿으면 물질의 축복을 받는다.

내가 예수 잘 믿으면 형통함의 축복을 받는다.

 

하지만 이 청년의 많은 재물은 결코 축복이 아니었죠. 저주였습니다. 

 

오늘도 다르지 않습니다. 

재물은 여전히 부자를 가난하게 하고 가난한 자를 부하게 하는 힘을 자랑합니다.

재물은 최고의 종이지만 최악의 주인이 됩니다. 

내가 돈을 소유하는 것은 좋지만 돈이 나를 소유하는 순간 지옥이 되는 것이죠.

 

내가 과연 돈을 소유하고 있는지 아니면 돈이 나를 소유하고 있는지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돈을 소유한 사람은 자신에게 있는 재물에 대해서 늘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미 돈에 소유된 사람들은 감사하지 않습니다.

늘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더 많은 것을 원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요.

 

저는 여러분 모두가 다 재물을 소유하고 다스리는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재물에 늘 감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베드로의 반응을 보면 베드로에도 상당히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8절을 보면 

28 베드로가 여쭈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자신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걸 버렸다는 거예요.

지금 이런 자신에게 무엇이 주어질 것이냐라는 질문입니다.

 

여러분 여전히 신앙생활을 거래로 생각하는 거죠. 상업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은 현세뿐만 아니라 내세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들을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29절과 30절에서 약속하십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우리의 동기예요.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시죠.

나와 복음을 위해서, 보상을 위해서, 축복을 위해서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보상과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물질을 위해서 신앙생활하는 사람이 물질의 축복을 받는다면 그 물질은 결코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31절 말씀입니다.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일반 대중에게 이 부자 청년은 분명히 먼저였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제자들이야말로 나중이었죠.

하지만 하나님은 영원의 관점에서 우리를 보십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것이죠.

자신의 눈에 먼저인 사람은 하나님의 눈에는 나중이 되고, 자신의 눈에 나중된 사람은 하나님 눈에 먼저가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눈에 먼저가 되는 귀한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모든것을 버린 사람에게 주어진 약속은 무엇인가요?

 

사랑의 주님 
오늘 주신 말씀으로 또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제 안에는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는 우상들이 있음을 봅니다.
주님 앞에 나와 엎드리지만 말씀 앞에 결단하지만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죄와 우상을 버리기를 원합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제 자신의 눈에 나중 되게 하사 하나님 눈에 먼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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