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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러기 은혜를 구하는 겸손한 믿음(마가복음 7:24~37)(20240120)

2024.01.20. | 생명의 삶 | 도육환 목사

 

부스러기 은혜를 구하는 겸손한 믿음

 

샬롬

영종 온누리교회 도육한 목사입니다.

지난 한 주간에도 국내와 해외, 그리고 여러 선교지에서 말씀으로 살고 믿음으로 승리하신 모든 성도님들과 선교사님들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믿음 생활 중에 뜻하지 않는 시험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동일하게 시험이라 번역되어 있지만 문맥상 세 가지 다른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먼저 유혹 텐테이션도 시험이고, 시련 트라이어, 고난도 시험입니다. 단어 그대로 테스트, 그것도 역시 시험이죠. 

그 어떤 시험이든 쉬운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시험이든 통과하고 나면 더 깊은 믿음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믿음의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통과한 한 이방 여인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가복음 7장 24절에서 37절 말씀까지입니다.

 

 

부스러기 은혜를 구하는 겸손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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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2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36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예수님께서 갈릴리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신 이후에 지금의 레바논 땅에 위치한 두로와 시돈 지역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이방인의 땅으로 가신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랬다면 24절 말씀처럼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죠.

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십자가의 때가 가까워 오면서 주님은 군중이 아니라 제자들을 집중적으로 가르치시기를 원했습니다.

의도적으로 이방 지역으로 옮기신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이방 지역에서도 널리 퍼져 있었고, 제자들과 함께 찾아온 주님이 사람들에게서 숨겨질 수는 없었습니다.

그때 한 수로보니게 여인이 주님을 찾아옵니다. 

수로보니게는 수리아와 페니키아의 합성어입니다.

수리아 땅, 페네키아 지역의 영이라 그런 뜻이지요.

이 여인은 예수님을 찾아와 자신의 어린 딸이 더러운 귀신에 들려 고통받고 있으니 귀신을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어린 딸이 병들고 귀신 들린 상태라면 엄마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동안 대부분의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섬기고 있었던 바울과 아세라의 신전들도 찾아다녔을 것이고, 민간 신앙의 도움을 받으려고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다녔을 겁니다.

그러나 모든 시도가 다 허사였습니다. 

그러다가 전부터 들어 알고 있었던 예수님이 자신의 도시에 오셨다는 소식을 이 여인이 듣게 되었습니다.

나사렛 예수님이면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을 거라는 소망을 가지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답을 듣습니다. 27절을 보겠습니다.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수로보니게 여인이 그동안 소문으로 들어온 예수님은 사랑과 인자가 풍성하신 분이었습니다.

세례와 과부들의 친구요 이방인들에게도 차별 없이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라고 알고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개 취급하던 것과 다르지 않은 말씀을 하신 겁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지는 것은 옳지 않다.'

얼마나 당황스럽고 실망스러운 말이었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런 상황을 만나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성경에 기록된 과거의 사건을 묵상하고 있으니 이미 결과를 알고 있지만, 만약 우리가 이런 모욕을 당하고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는다면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분을 내며 그 자리를 박차고 떠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은 수로보니게 여인의 대답은 놀라울 정도로 지혜롭습니다. 28절이죠.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여인의 대답에는 상한 마음이나 원망, 분노가 전혀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그대로 받아서 말합니다. 

'개들도 주인의 아이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받아먹지 않습니까?'

이 여인의 간구 기도에는 간절함과 함께 겸손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저는 우상을 섬겨오던 이방 여인에 불과합니다. 자격 없는 것 압니다. 그래서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괜찮습니다.'
얼마나 지혜롭고 겸손한 기도입니까?

'주님 주시는 것이라면 부스러기 은혜라도 괜찮습니다.'

이 여인은 믿음의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통과했습니다.

실제 예수님께서 이방 여인을 차별한 것이 아니었죠.

사랑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이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테스트하신 것입니다.

그동안 여인이 이전에 바울과 아세라를 찾았듯이, 그렇게 하나님도 동일하게, 예수님도 동일하게 찾아올 분은 아니셨죠.

살아계신 하나님, 유일하신 주님의 은혜를 붙드는 절대적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과연 이 여인이 믿음의 테스트를 통과하자 그 즉시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 즉 딸을 괴롭히던 귀신이 나간 것입니다.

아예 집으로 가신 것도 안수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냥 말씀 한마디로 기적과 능력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믿음을 크게 칭찬하십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여자여 내 믿음이 크도다. 내 소원대로 되리라 그렇게 말씀하셨죠. 

마태복음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제자들의 믿음이 작았던 것을 꾸짖으셨던 주님이 이 여인에게는 큰 믿음을 칭찬하신 겁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믿음의 테스트는 있습니다. 

 

친구 나사로가 죽었다는 기별을 듣고도 곧바로 베다니로 가지 않으신 주님은 

때로 우리의 믿음을 세우기 위해 의도된 지체를 하십니다.

우리가 참으로 주님 한 분만을 의지하고 그 은혜를 구할 때까지 기다리시는 겁니다.

부스러기 은혜로도 감사할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이 준비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침묵처럼 보이는 시간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믿음을 점검하는 테스트의 시간입니다.

여러분의 겸손한 기도, 간절한 사모함이 주께 연락될 때까지 믿음으로 인내하며 승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주님 앞에 겸손한 믿음으로 끝까지 간구할 것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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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을 떠나 데가볼리 지역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 동편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지금의 골란 공원에 위치한 성경의 바산 지역이죠.

여전히 거기에도 주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중에 귀먹고 말 덧없는 한 사람을 데리고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치유를 구합니다. 이중에 장애를 가진 사람입니다. 

아마도 이 사람은 어려서부터 들리지 않았기에 말도 제대로 배울 수 없었고, 발음도 되지 않았을 겁니다.

들을 수가 없었으니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문도 들을 수가 없었을 겁니다.

이렇게 들을 수 없는 사람에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여러분 아십니까?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들 중에는 예수님의 복음을 들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기독교 콘텐스가 넘쳐나고 곳곳에 교회가 세워져 있고, 수많은 기독교 방송들이 24시간 전파를 쏘고 있는데도 여전히 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닫혀 있으면 길거리에 보이는 그 수많은 교회가 의미가 없는 겁니다.

보아도 보이지 못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런 분에게는 누군가가 먼저 본 사람, 먼저 들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바로 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그렇게 도와주어야 할 사람들이지요.

 

사람들은 그를 데려와 예수님께 안수해 주기를 구하였지만 예수님은 좀 독특한 방법으로 그를 치유하십니다.

33절 34절 말씀 읽겠습니다.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주님께서 그를 치유하실 때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먼저 그를 무리해서 따로 분리시켜 집중할 수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들리지 않던 양 귀에 손가락을 넣으셨습니다. 침을 바른 손가락을 그의 혀에 대십니다.

주님의 개인적이고 친밀한 만짐 토치가 있었던 것입니다.

장애를 가진 부분을 주님께서 터치하심으로 믿음을 불러일으키시기를 원했던 겁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보셨고 그의 아픔을 대신하여 탄식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시죠. 

"에바다"

'에바다'는 아람어인데 열리라 그런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모든 장애가 사라지고 회복이 임했습니다.

귀는 열리게 되어 듣게 되었고, 묶여 있던 혀가 풀려 말이 분명해지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말도,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도 듣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천국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귀가 된 것입니다.

이전에 그 입과 혀는 모양만 있었지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말하고 찬양하고 주를 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치유하신 이 사건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열린 입, 풀린 입, 어떻게 말하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요?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그가 경험한 기적들을 나누게 되었다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듣는 장애가 있지는 않습니까? 말씀은 제대로 들리십니까? 

혹 말하는 장애는 없습니까? 복음 전하는 일에 의논을 하고 묶여 있는 혀는 아닙니까? 

 

오늘 에바다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이 여러분에게도 들리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에게 다친 것들이 열려 자유케 되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지금도 우리 주변에 귀가 열려야 하고 입이 풀려야 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터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병든 사람을 데리고 주께 나아왔듯이 누군가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어와 주어야 합니다.

그들로 듣게 하고 노임을 받게 해야 할 역할, 그것이 먼저 믿든 저와 여러분이 해야 할 사명입니다.

생명을 살리고 치유하는 일에 쓰임 받는 복된 하나님의 사람들 

2024년 영혼을 구원하고 주께로 인도하는 일에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귀먹고 말 더듬는 자를 치유할 때 취하신 행동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존귀하신 하나님 
우리에게도 에바다 말씀하여 주셔서 
들리게 하시고 말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아직도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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