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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를 걸으신 권능, 풍성한 긍휼의 치유 이적(마가복음 6:45~56)(20240117)

2024.01.17. | 생명의 삶  | 도육환 목사

 

물 위를 걸으신 권능, 풍성한 긍휼의 치유 이적

 

할렐루야 

영종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도유한 목사입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삶이 나그네 길 혹은 항해 중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아실 겁니다.

우리는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고 아직 삶의 여정 중에 있습니다.

내일 그리고 미래에 무슨 일을 만났는지 알지 못한 채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지요.

때로 성공하고 형통한 길도 만나지만, 때로는 태산준령(泰山峻嶺)을 만나고 풍랑이는 바다를 항해해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이런 불확실한 여정 중에 우리가 의지하고 붙들 수 있는 주님이 우리 곁에 계신다는 건 얼마나 든든하고 감사한 일입니까?

오늘도 말씀 묵상을 통해 우리의 삶의 풍랑 속에서 주님을 직접 더 깊이 만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묵상할 말씀은 마가복음 6장 45절에서 5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물 위를 걸으신 권능, 풍성한 긍휼의 치유 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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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49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50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51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53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
54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신 줄을 알고
55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 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다는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째로 메고 나아오니

56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우리는 어제 오병이어 사건을 묵상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직후에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세다 들판에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 현장을 직접 보고 보리떡으로 배불리 먹었던 사람들의 충격은 결코 작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주님은 서둘러 제자들을 배에 태워 바다 건너편으로 보내십니다. 45절 46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4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보리떡 다섯과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열두 바구니를 남기자

사람들은 환호하기 시작했고, 예수님을 그들의 왕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동안 그들이 꿈꿔왔던 샬롬, 곧 아무런 위협이나 걱정 없이 배불리 먹으며 시편을  읊조릴 수 있게 할 메시아가 도래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기적의 현장에서 떡과 물고기를 나눠주던 제자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군중들은 환호하며 왕으로 삼고자 하는 이 예수님, 그 예수님의 최측근이 바로 자신들이 아닙니까?

주님 가까이에서 모시고 있는 제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자랑스럽고 선망의 대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베세다의 환호와 찬사를 좀 더 오래 누리고 싶었을 겁니다.

그런데 주님은 서둘러 제자들을 배에 태웠고 건너편으로 보내셨고, 사람들을 돌려보내셨습니다.

 

우리는 감동적인 집회나 콘서트가 마쳐도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는 그런 마음들을 갖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속히 그 상황을 흩어버리려고 하십니다. 거의 강제 해산하는 수준입니다. 

 

여기서 주님의 의도를 읽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은 육체의 필요가 채워진 것 때문에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을 원치 않으셨던 겁니다.

항상 실패했을 때보다 성공했을 때 더 조심해야 합니다.

섰다고 생각하거든 넘어질까 두려워하라 하십니다.

다윗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모든 것이 형통할 때 바세바시험에 넘어갔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추종자들을 모아 세속적인 권력을 갖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왕으로 삼고자 하는 팬덤의 무리를 흩으시고 당신은 한적한 산으로 기도하려 하러 올라가셨습니다.

광야 40일 금식 중에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천사들이 받아주면 사람들이 환호할 것이라는 사탄의 유혹도 이겨내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같은 유혹에 자주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의 박수를 즐기고 칭찬에 목말라 하기도 합니다.

성공하고 목표를 이루면 마치 자신이 잘나고 열심히 수고했고, 능력이 많아서 이룬 성취처럼 과장되게 포장하려고 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참 메시아 되신 주님은 오히려 열광하는 군중들을 흩으셨고, 

당신은 하나님 앞에 독대하며 다시 십자가의 사명을 굳게 붙드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의 인기도, 칭찬도 오래 가지 않습니다.

유효기간이 놀랄 정도로 짧습니다. 거기 목을 매면 늘 실망하고 좌절하게 될 것입니다.

높은 위치에 오를수록 중심을 잘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떨어지지 않습니다.

박수, 갈채를 뒤로 하고 주님 앞에 조아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칭찬과 상급은 오직 주님께만 있습니다.


한편,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갔던 제자들은 풍랑을 만나 큰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48절을 보면 역풍을 만나 힘써 노를 저어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아마 해질 무렵 배를 탔는데 적어도 7시간 동안 풍랑 속에서 사투를 벌여온 것 같습니다.

밤 사경쯤이라 하였으니 우리 시간으로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일 것입니다.

제자들이 도치되어 있던 그 오병이어 기적의 달콤함이 이 풍랑 속에서 다 날아가 버리고 말았을 겁니다.

만일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 늘 기적과 능력, 좋은 일만 나타난다면 주님의 제자로 사는 것이 쉬울 겁니다.

사람들의 박수와 선호하는 눈빛을 즐기며 예수 믿을 수 있다면 좋은 일이겠죠.

그러나 제자의 길에는 풍랑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갈릴리의 돌풍은 예고하지 않습니다. 

어느날 원치 않는 문제에 직면하기도 하고, 고난의 바람에 표류하기도 할 것입니다.

제자의 길에는 영광도 있지만 고난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좁은 문, 좁은 길입니다. 

그 풍랑이 일어나는 어두운 밤에 내 믿음이 진짜인지, 내가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있는 것인지가 검증되게 될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때쯤 풍랑이는 파도 사이를 그들 앞으로 걸어오는 검은 물체가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유령이라고 소리쳤습니다.

49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그때 익숙한 음성이 들립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제자들은 파도와 싸우느라고 지치고 공포에 휩싸인 나머지 주님조차 알아보지 못했던 겁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주님의 능력은 잊어버린 채 마음이 둔하여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그 주님을 맞아들일 수가 없었던 겁니다.

베세대 들판의 성공이 아니라, 갈릴리 바다의 실패를 통해 그들의 신앙의 민낯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배에 오르시니 바람도 그치고 비로소 파도가 잔잔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산에 올라 밤늦은 시간까지 기도하던 주님은 제자들이 풍랑 속에서 고생하고 있는 것을 모르시고 계셨을까요? 

아닙니다.

주님은 이 모든 상황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곧바로 내려와 문제를 해결시켜주지 않으셨습니다.

 

더러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드디어 응답되고 돌풍처럼 닥친 고난에도 우리 주님이 바로 해결해 주시지 않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한 가지는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반드시 그 풍랑을 가로질러 우리에게 찾아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더디고 늦다고 느끼는 것이지, 우리 주님은 정확한 시간과 장소에서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삶의 배에 올라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그리고 그 고난의 바람이 거치고 시련의 풍랑이 멈출 때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굳게 붙들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자들은 물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무엇을 연상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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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풍랑이는 바다를 건너 배에서 내릴 지음 이미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도 예수님의 말씀과 치유를 사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55절 56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55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다는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째로 메고 나아오니
56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아멘

 

갈릴리 바다 건너편 게네사의 땅에 도착하니 사람들은 예수님을 금세 알아보았고, 이 소식은 여러 지방, 여러 곳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런저런 소식 열심히 퍼 나르는 사람은 과거에나 지금이나 늘 있는 것 같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게네사렛 온 지역을 쫓아다니며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전했고, 

이 소식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병자를 데리고 예수님께로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움직이기 힘든 환자는 가족, 친지들이 침상 채 짊어지고 왔고, 

예수님께서 지나가는 길에 시장이나 길에서 병자들이 옷자락이라도 만질 수 있게 되기를 그렇게 간청해 온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사람들은 다 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 아니겠습니까? 

질병으로 고통을 받던 사람들에게 복음은 치유받을 수 있다는 것이고,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은 곧 죄 용서받고 자유케 될 수 있다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마다 기적이 일어났고 능력을 맛보았습니다.

다 성함을 얻으리라. 

그런데 여기 한 가지 전제는 있었습니다.

'... 손을 대는 자는...'

주님의 옷자락을 손으로 만졌느냐 아니냐가 곧 주님과 연결되었느냐 아니냐를 결정했던 겁니다.

믿음으로 주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사람은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손으로 만지고 계십니까? 그분과 영적 연합을 이루고 있습니까?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으면 무엇을 구하든지 얻게 될 것이며, 주님의 구원이 곧 우리의 구원이 될 것입니다.

육체의 질병이든 삶의 고난을 만났든 

우리가 상황을 주목하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기적과 능력이 우리에게 흘러들어옵니다.

주님의 옷자락을 붙드시고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얻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한 사람의 치유를 위해 내가 기꺼이 감당할 수고는 무엇인가요?

 

존귀하신 하나님 
우리 삶에 돌풍처럼 만나는 모든 고난과 아픔을 아시고 우리의 작은 시름 소리에도 귀 기울여 주심에 감사합니다.
이제도 시련의 물을 밟고 우리를 찾아오시고 내니 안심하라 말씀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옷자락을 붙들고 믿음으로 동행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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