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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목자가 베푸신 광야의 식탁(마가복음 6:30~44)(20240116)

2024.01.16. | 생명의 삶  | 도육환 목사

 

참된 목자가 베푸신 광야의 식탁

 

안녕하세요.

영종 온누리교회 도한 목사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님은 인자와 긍휼히 풍성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잘 알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우리 주님을 자상하고 따뜻한 분으로 느껴보신 적은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만나는 주님은 아버지의 큰 사랑보다는 어머니의 세심한 사랑을 느끼게 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지치고 피곤한 것도 아시고 마음의 굶주림과 외로움도 아시는 분이십니다.
이제 말씀을 통해 그 적으신 주님을 만나러 갈릴리 바닷가로 가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마가복음 6장 30절에서 44절 말씀입니다.

 

 

참된 목자가 베푸신 광야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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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31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32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33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들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
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35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39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40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42 다 배불리 먹고
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44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예수님께로부터 둘씩 짝지어 전도대로 파송된 12 제자들은 

가는 곳곳에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동안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사역을 곁에서 지켜보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주역이 되어야 했습니다.

아마 처음에는 걱정도 없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에 귀를 기울였고, 기적과 능력도 드러났습니다.

성공적으로 사역을 마무리한 제자들은 주님께 돌아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세세하게 보고하였습니다.

30절 31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30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31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제자들은 그들을 통해서도 놀라운 기사와 능력이 드러나는 것을 보며 피곤도 잊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소문은 더욱 널리 퍼졌고, 더 많은 무리가 예수님께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밀려드는 인파를 정리하고 사역하느라 식사할 겨를도 얻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지쳐 있음을 아셨고, 군중들과 분리시켜 따로 한적한 곳에서 쉬어야 함을 아셨습니다.

'...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늘 바쁘고 버거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이 말씀은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요.

달리던 일상을 잠시 멈추고 쉬는 시간을 가지라 하십니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적한 곳을 찾아 쉬고 회복하라는 따뜻한 말씀입니다.

 

지금 영상으로 묵상에 참여하고 있는 여러분 중에도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분들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어젯밤 늦게까지 밀린 일들을 처리하고 미처 피곤을 풀지 못한 채 다시 출근길에 나선 분들도 있겠지요.

지금 붐비는 지하철이나 버스 속에서 이 방송을 듣고 계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들로 인해 무거운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는 분들도 있겠지요.

그러나 여러분 아십니까? 

우리 주님은 힘겹게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잘 알고 계십니다.

때로 사직서를 내야 할까 고민하는 우리의 마음도 아시고, 물멍이든 불멍이든 머릿속을 비우고 싶어 하는 지친 마음도 아십니다.

그 주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게 와서 쉬라 하십니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비록 삶의 현장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수는 있겠지만,

우리 주님이 주시는 안식과 위로를 통해서 새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제자들이 쉴 수 있도록 한적한 곳을 찾아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이동하셨습니다.

밀려오는 일들로부터 분리시키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무리들이 육로를 이용하여 갈릴리 바다 건너편까지 먼저 달려와서 예수님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가로지르면 6km 정도의 거리였는데, 해변을 둘러 걸어가면 10km 정도의 거리였습니다.

육로로 뛰어간 사람들이 노를 저어 바다를 건너온 제자들 배보다 먼저 도착했던 겁니다.

우리 주님은 이렇게 절박한 마음으로 바다 건너편까지 달려온 무리들을 보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과 같았습니다.

물론 그들에게 목자 행세를 하는 율법학자들과 서기관들의 가르침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군중들은 여전히 목말랐고 갈급했던 겁니다.

오죽 목마르고 오죽 절박했으면 이렇게 먼 길을 달려 건너편까지 왔을까요? 

주님은 이 먼 길을 달려온 그들에게 많은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님은 우리의 갈급한 마음을 아십니다.

피곤하고 지쳐 있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살피십니다.

우리의 피난처 되시고 만세 반석 되신 주님께 나아갑시다.

그 주님께로부터 세상이 알 수도 줄 수도 없는 하늘의 평안으로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에수님을 알지 못해 방황하는 이들에게 나는 어떤 마음을 품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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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자 주님께 말씀 듣기를 원했던 수많은 무리가 육로로 달려와 그곳에서 주님을 맞이합니다.

이들의 목마름과 갈급함을 보시고 주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에 취해 때가 저물어가는 줄도 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녁 식사 때가 되었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먹을 음식도 없었고, 빈 들에 모였으니 먹을 것을 구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제자들이 주님께 건의합니다. 저들을 흩어 여러 마을과 촌으로 보내 먹을 것을 구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37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쭈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주님은 각 사람들이 음식을 구하러 흩어지게 하지 말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십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무리를 먹일 만한 음식 양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신 말씀일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계산에 빠른 빌립이 필요한 예산을 말씀드립니다.

'주님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이려면 200 데나리온은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당시 일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 품싹에 해당됩니다.

200일 치 품싹이니 작은 돈은 아닙니다. 

설사 그 돈을 가지고 있다 하여도 당장 그 많은 빵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 주변 몇 개의 식당을 다 뒤져도 그렇게 많은 양을 구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에게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십니다.

우리가 가진 능력과 은사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분이 아니신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나누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누라고 하셨다면 주님께는 계획이 따로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기적은 계산 잘하고 이성적인 판단이 빠른 사람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제야 주의 능력도 볼 수 있죠.

 

주님은 묻습니다.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다른 복음서에 기록된 것처럼 어린아이가 가져온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졌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이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회의적인 말도 덧붙이죠.

제자들의 말에는 결코 오류가 없습니다. 

그것이 상식이고 판단이 옳은 것이지요. 이성적인 생각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제자들의 생각에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사람들을 50명, 100명씩 여러 그룹으로 나누어 잔디 위에 앉게 하십니다.

 

여러분 식탁에 모여 앉기는 했는데, 테이블 위에 음식이 하나도 없는 경우를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난감하고 민망한 상황이 연출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보리빵 다섯과 물고기 둘을 손에 드시고 하늘을 향해 감사 기도를 드리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신기하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었는데 떼어주고 또 떼어주고 줄어들지 않았던 겁니다.

나누어주면 어느새 내 강주리에는 새로운 빵과 생선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떼어줍니다. 또 떼어줍니다. 

결국 남자만 5천 명에 이르는 어림잡아 1만 명이 족히 넘는 큰 무리가 다 배불리 먹게 되었습니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기적이며 풍성한 은혜입니까?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으십니다.

 

이후에 주님은 부스러기조차 남기지 말고 다 거두라 하십니다. 42절에서 44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42 다 배불리 먹고
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44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12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5천 명이었더라.

아멘

 

이미 모든 사람들이 충분히 배불리 먹었습니다.

더는 못 먹겠다고 한 즈음에 남은 조각들을 거두기 시작했더니 남은 떡과 물고기가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다 배불리 먹었는데 오히려 처음보다 훨씬 더 많은 음식이 남았던 겁니다.

우리 중에도 보리떡 다섯 정도를 갖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나를 위한 식량이고 내 안전과 미래를 위해서 채워둔 것이라 할지라도 움켜잡고 있으면 그것은 아무런 기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리떡 같은 부끄러운 헌신이지만 나의 은사와 능력을 주님의 손에 올려놓기만 하면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다 배불리 먹고 열두 광주리에 남기는 은혜가 찾아옵니다.

 

나는 이 일을 감당할 능력을 갖지 못했고 부족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는 말씀에 순종해 보십시오.

주님의 손에 올려드리면 기적과 능력이 드러납니다.

여러분의 삶과 믿음이 기적의 통로, 은혜의 통로로 쓰임 받게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흘려보내는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내가 목자의 심정으로 영과 육의 필요를 채워줄 지체는 누구인가요?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우리의 삶에 안식과 평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가진 보리떡 다섯을 주님의 손에 올려드립니다.
부족하지만 부끄럽지만 
이를 통해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의 통로가 되게 하시고 
많은 이들을 배 불리고 열두 바구니에 남기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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