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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이 아닌 죄인의 구주, 율법이 아닌 은혜의 복음(마가복음 2:13~22)(20240105)

2024.01.05. | 생명의 삶 | 권오향 목사

 

의인이 아닌 죄인의 구주, 율법이 아닌 은혜의 복음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 교회를 섬기는 권요향 목사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은 큰 무리들이 모여 있는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으로 시작됩니다.

바닷가는 갈릴리 호수 주변을 말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업을 위하여서 오고 가는 장터와 같은 곳이었죠.

예수님은 그곳이 회당이든 바닷가든, 산이든, 길이든 삶의 현장 어디에서나 가르치시기에 여념이 없으셨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과 이를 듣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아마도 사람들의 얼굴에는 평안과 자유와 기쁨이 스며들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예수님께서 주시는 큰 기쁨과 평안이 임하기를 바라면서요.

마가복음 2장 13~22절 말씀 묵상하시겠습니다.

 

 

의인이 아닌 죄인의 구주, 율법이 아닌 은혜의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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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5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20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21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가버나움에 있는 세관 앞을 지나가시다가 거기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는 자를 부르시는데요.

그의 이름은 알페오의 아들 레위였습니다. 

레위는 그 이름대로 경건한 레위 지파의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당시 유대인들이 지극히 혐오하는 세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재물에 유난히 욕심이 많은 현실주의자가 아니었나 싶지만, 그러나 아무리 재물을 모아도 그의 마음은 채워지지 않은 공허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시자 레위는 만사를 다 제쳐두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는데,

그동안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동족의 고혈을 짜는데 조금도 가책을 느끼지 않았던 자의 새로운 인생이라 할 수 있겠죠.

잠자던 영혼의 움트는 깨우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마테라는 이름을 지어주시는데,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선물이었고, 

레위는 마치 자신에게 선물처럼 다가오신 예수님께 감사해서 자신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잔치를 베풉니다.

 

그랬더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15절 보시는 것처럼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15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여러분 이처럼 한 사람의 짐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가족으로 이웃으로 열방으로 퍼지는 회심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1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테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실 때 또 다른 그룹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세리와 죄인들 같지 않았죠.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것을 보고는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라고 비난하고 정죄합니다.

 

그러나 당시 죄인이라고 칭하는 자들은 실제로 어떤 형사적인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아니었죠.

단지 유대인의 전통을 무시하거나 지키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이라 칭한 것은 바리새인들의 자기 기준에서 어긋난 자들에 대한 차별이었고, 완악함이었죠.

예수님은 이러한 자들을 향해서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17절인데요. 

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오.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예수님은 자신을 의사에 또 죄인을 병든 자에 비유하시면서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밝히시지만, 바리새인들은 절대로 자신들이 구원받아야 될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예수님께 나올 수 없으며, 죄인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레위와 같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께 나오는 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의 선물을 받을 수 있으며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죄인이죠.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죄의 삯인 죽음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로우신 분이 오셔서 건져주셔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죠.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의 잔치에 함께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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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당시 유대사회는 금식이 아주 보편화된 행위였습니다.

원래 성경이 말한 금식은 대속제일 한 번뿐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강화되어서 매주 두 번씩 월요일과 목요일로 정해져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니 평생을 매주 이틀씩 금식한다는 것은 보통 정성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금식하는 자들 안에 있는 판단과 정죄였죠.

18절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정기적으로 금식을 행하던 자들은 예수님께 나와 문제를 제기하는데요.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소위 믿음이 좋다고 하는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자기 기준의 발언'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있는 자들이 저지르기 쉬운 함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이 만들어 놓은 전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본질보다는 형식을, 사람보다는 제도를 중시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물론 전통은 존중되어야 하고, 본질은 고수하기 위한 형식도 필요하고, 제도도 있어야겠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서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질문에 세 가지 비유를 들어서 답변을 하시는데요.

혼인잔치 비유, 생배 조각과 낡은 옷 비유, 또 새 포도주와 낡은 가죽 부대 비유입니다.

비유는 듣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수단으로 예수님은 언제나 사람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비유를 사용하셔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 비유를 통해서 주시는 예수님의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첫째, 예수님은 자신을 신랑의 제자들을 손님에 비유하시면서 

혼인잔치에 참여한 자들이 신랑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처럼 

예수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니 금식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오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수난을 의미하는데요.

자연히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금식이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도 복음으로 인한 기쁨이 있고 복음 때문에 받아야 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기쁨과 고난은 공존하는 것이죠.

 

또 두 번째, 낡은 옷에 새 천 조각을 대고 기우면 새 천 조각이 낡은 옷을 잡아당겨서 찢어질 수밖에 없듯이 

율법과 복음이 양립할 수 없음을 알려줍니다.

여러분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할지언정 구원에 이르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의 죄를 대신 사하시기 위해서 십자가 지신 예수님으로 인한 구원이 주어졌음을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이 아닌 복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유대인들처럼 율법주의에 사로잡혀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열린 마음으로 예수님 앞에 서야 합니다.


또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넣는 어리석음을 비유하시면서 유대교의 낡은 율법주의는 생명의 복음으로 대체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22절에서 예수님은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으라고 말씀하시죠.

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복음으로 인한 새로운 시대에 새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주십니다.

 

여러분 이처럼 복음은 단순히 우리의 잘못된 행동을 개선한다거나 상한 마음을 치료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과 생각의 완전한 변화, 새로운 생활양식, 즉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나는 것이죠.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은혜의 복음 안에서 내가 자유롭게 수용할 일은 무엇인가요?

 

사랑하는 주님 
주님의 사랑으로 마태를 부르신 것처럼 우리를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안에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 백성답게 살게 하시고 성령 안에서 새 마음과 새 영이 부어지게 하옵소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어 즐거이 복음 전하는 자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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