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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들의 권세, 죄 용서와 치유(마가복음 2:1~12)(20240104)

2024.01.04. | 생명의 삶  | 권오향 목사

 

하나님 아들의 권세, 죄 용서와 치유

 

 

안녕하세요.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권오양 목사입니다.

오늘도 마가복음 묵상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공생애 사역 중에서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죠?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 요한은 이것을 단순한 기적이 아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리는 싸인, 표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적을 보고도 예수님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고 의심하고 비난하는 자들이 있었죠.

그러기에 복음은 수용과 거절 두 가지 반응으로 나타납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고 받아들일 것인가? 아닌가? 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더하여지기를 바라면서 마가복음 2장 1에서 12절 말씀 함께 묵상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들의 권세, 죄 용서와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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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고 얼마 되지 않아서 사람들 사이에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퍼져 나갑니다.

예수님이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고, 특히 당시 불치병이라고 알려진 나병까지 고치셨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오셔서 한 집에서 가르치고 계셨을 때, 먼 이웃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는 한 중풍병자를 데리고 옵니다.

그 중풍병이 얼마나 심했던지 들것에 실려서 네 사람이 각각 한 모퉁이를 들고 와야만 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계신 곳에 얼마나 사람이 많았던지 도저히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는 상황이었기에 중풍병자의 친구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냅니다.

사다리를 놓고 지붕 위에 올라가서 예수님이 계신 곳을 가늠하고는 그곳에 지붕을 뚫어서 중풍병자를 줄로 매달아 예수님 앞에 내려놓은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기상천외한 일이었지만 어찌 보면 분위기 깨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 광경을 보시고 내 친구들에게 자신의 설교를 방해했다고 꾸짖기보다는 오히려 중풍병자 육체의 질병까지 고쳐주실 뿐만 아니라 그 영혼까지도 구원해 주십니다. 5절인데요.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잘 보십시오.

중풍병자가 고침을 받은 이유는 놀랍게도 친구들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고치신 것이죠.

그렇다면 친구들의 믿음이 어떤 믿음이길래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우리는 그들의 믿음을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이들의 믿음은 친구를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친구가 중풍으로 병든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고, 

그 친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려던 차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만사를 제쳐놓고 찾아온 것이었죠.

여러분 사랑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믿음을 낳습니다.

 

둘째는 협력하는 믿음입니다. 

당시에는 차도 없던 시절이라 웬만하면 다 걸어다녔어야 했을 텐데, 꼼짝도 못 하는 중풍병자 친구를 데리고 움직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이들은 일사불란하게 한마음이 되어서 움직입니다.

서로 간에 마음이 맞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죠.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말이 있듯이, 친구를 위해서 자신의 의견을 내려놓고 한마음이 되는 것이야말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입니다.

 

셋째는 난관을 뚫어내는 믿음이었죠.

예수님이 계신 곳까지 오긴 왔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있는 탓에 이들은 벽에 부딪히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궁리 끝에 지붕을 뚫고 달아 내리는 기발한 발상을 하게 되죠.

그리고 이는 단지 생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즉시 행동으로 옮깁니다.

아무리 높은 벽이라 할지라도 뚫어내는 믿음이 이들에게 있었죠.

 

자 여러분

우리는 이 중풍병자의 친구들의 믿음을 보고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점점 사랑이 메말라가는 세상에서 진심으로 이웃을 사랑하여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서로 힘을 합하면 어떤 난관이라도 뚫어낼 수 있는 믿음, 이러한 믿음이야말로 예수님이 주목하시는 믿음임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한 영혼을 돕기 위해 내가 적극 시행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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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치유하는 현장에는 이를 바라보고 있는 서기관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유대 사회의 리더층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죠.

그러나 이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붕을 뜯어내면서까지 친구를 데리고 오는 사람들을 보고는 감동은커녕 중풍병자가 낳은 것에 대한 기쁨도, 또 그리고 이 병을 고치신 예수님에 대한 감사도 없습니다.

병자의 영혼이나 육체의 질병에 관심조차 없는 자들이었죠.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가르칠지언정 말씀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이중인격자였으며, 

오히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향해서 내 죄가 사하여졌다라고 선언하시자 격분할 뿐이었습니다. 7절인데요.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는 있을지언정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차릴 수 없는 안목이 없는 영적으로 눈먼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말씀을 잘 안다고 해도 말씀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다 허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여러분 결국 믿음이란 

그 믿음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알고 믿는 것이지, 어떤 지적인 욕구나 종교적인 만족을 누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생각을 아시고는 8절에서 

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있는 생각까지도 간파하는 분이십니다.

시편 7편에서는 의로우신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신다는 말씀이 있는데, 그 이유는 그 마음이 변화를 받고 새로워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7: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예수님의 사역의 대상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뿐만 아니라 사회의 기득권층까지도 포함됩니다. 

이들도 동일하게 복음을 들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죠.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과 유대 지도자들 그룹 사이에서 계속해서 대치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상황이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이들을 향한 관심을 놓치지 않으려 하시는 이유는 

이들이 그 완악한 마음을 내려놓고 예수님께 돌이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향해서 내 병이 나았다라는 말씀을 하기 전에 '네 죄가 삶을 받았노라'라고 먼저 말씀하신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단순히 병을 고치기 위해서 오신 치료자가 아니라 

육체의 질병을 넘어서 영혼의 질병까지 치료하기 위해서 오신 영혼의 구세주이심을 알리기 위함이었죠.

이렇게 해서 중풍병자는 어느 순간부터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상, 들것을 내어 던지고

그 영혼에 자유함을 얻으며 당당히 집으로 돌아가는데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을 자유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영혼의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예수님께 나아가야 하고,

예수님만이 우리의 영혼을 건져주실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육체의 질병은 낳았다가도 다시 아플 수 있지만, 영혼의 질병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온전히 나음을 얻을 수 있음을 믿으면서 우리 영혼의 구세주이신 예수님께 나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용서하신다는 사실은 그분이 어떤 분임을 확증하나요?

 

사랑하는 주님 
날이 갈수록 사랑이 없는 세상에서 
주님을 사랑하기에 서로 사랑하게 하시고 
한마음이 되어서 어떤 난관이라도 뚫어낼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무라도 고칠 수 없는 육체의 질병과 
죽을 수밖에 없는 영혼을 구원해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우리 영혼의 구세주이신 주님으로 기뻐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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