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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로 준비하는 전도와 긍휼 사역(마가복음 1:35~45)(20240103)

2024.01.03. | 생명의 삶 | 권오향 목사

 

기도로 준비하느 전도와 긍휼 사역

 

 

안녕하세요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권오양 목사입니다.

오늘도 말씀 묵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올해 하나님 앞에 무엇을 결단하셨나요? 

아마도 많은 분들이 새해가 되면 

올해에는 좀 더 기도하겠습니다.

반드시 성경 읽도록 하겠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전도하겠습니다.

여러 가지 많은 결심을 해보지만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해도 원하는 만큼 되지 않는 게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을 의지할 때 성령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오늘의 말씀 마가복음 1장 35~45절 묵상하시겠습니다.

 

기도로 준비하는 전도와 긍휼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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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40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42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43 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
44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예수님은 가버나움의 많은 사역으로 인해서 몹시 곤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치지 않았던 것이 기도였습니다.

35절입니다. 

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기도는 예수님의 하루의 루틴이었습니다.

아무리 바쁘고 피곤하다 할지라도 기도를 쉬지 않으셨으며,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었고 하나님과의 대화였습니다.

기도함으로 그 영혼이 숨 쉴 수 있었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지속적인 만남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마다 하나님을 향해서 부르는 호칭은 '아바'였습니다.

이는 아빠라는 뜻의 히브리어로 신기하게도 우리나라 말과 흡사합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자신을 사랑하는 아빠를 부르며 달려가 안기듯이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친근한 관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는 예수님의 사역의 동력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역에 앞서 늘 기도하셨죠.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광야에서 홀로 기도하셨고, 

제자들을 택하기에 앞서서 밤새워 기도하셨으며, 

제자들을 강하게 훈련하고자 밤바다에 보내놓고는 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하루 종일 가버나움 동이를 다니시면서 가르치시고,

병을 고치신 후 지친 그다음 날 새벽에도 한적한 곳에 나아가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지, 자신의 능력이나 열정이 있지 않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사역을 하다가 번아웃되는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기름 부으심을 놓쳤기 때문일 수 있기에 

우리는 언제나 기도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고, 기도를 통해서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또한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기도한다는 것은 오늘 내게 주어진 하루를 하나님께 온전히 의탁하겠다는 뜻이오, 

내 의지대로 살지 않겠다는 믿음의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이죠.

해도 되고 아니면 말고가 아니고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마음이 분주하면 기도할 수 없습니다.

일이 많은 것과 마음이 분주한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마음은 고요할 수 있고, 아무 하는 일이 없어도 마음은 분주할 수 있습니다.

유진 필러스 목사님은 '분주함은 마귀 그 자체다'라는 말을 남기셨고요.

빌하이벨스 목사님은 '바쁘니까 기도합니다'라는 저서를 남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기 위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6절에서는  '너는 기도할 때 내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내 아버지께 기도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예수님은 일부러 한적한 곳으로 기도하러 가셨던 것이죠.

여러분 여러분의 골방은 어디입니까? 

기도하기 위해 찾고 싶은 한적한 곳은 어디입니까? 

그러나 이는 비단 장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죠?

분주한 마음을 차단하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나가는 것 그 자체가 골방이요 한적한 곳입니다.

 

세상의 소리를 차단하고 하나님 앞에 앉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들려오는 세밀한 음성을 들을 수 있고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시간이 될 수 있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한적한 곳에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하루 일과를 무엇으로 시작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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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7절은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셨을 때의 장면입니다.

제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와서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노라고 전하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제자들의 요청을 냉정하게 거절하십니다.

평상시에 예수님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죠.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38절입니다.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예수님의 관심은 언제나 복음이 미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의 한 걸음 한 걸음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발걸음이었고,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사셨고, 이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만이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오, 인간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오, 세상을 변화시키는 최상의 길임을 믿으셨습니다.

그랬기에 제자들을 향해서도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하신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한 마리 양을 잃은 목자가 그 양을 찾기 위해 찾을 때까지 찾아 나서는 것처럼 우리도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죠. 

 

40절부터는 예수님이 찾으신 잃어버린 한 영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40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오늘날에는 나병의 치료법이 개발되어서 인류를 위협하는 심각한 질병에서 제외되었지만,

예수님 시대만 해도 나병은 오늘날의 암이나 에이즈와 같은 병이었습니다.

특히 성경에서는 나병을 특별하게 취급을 하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나병이 전염성이 있어서 철저히 분리되지 않으면 위험한 병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니 예수님을 찾아온 나병 환자의 삶은 어떠했겠습니까? 

두 말할 것도 없이 그 마음 가운데는 죄책감과 수치심과 외로움과 소외감 등등 희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삶이었을 겁니다.

그러니 이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온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겠죠.

자신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다가 발각되는 순간 

예수님을 만나지도 못할 뿐더러 돌에 맞아 죽게 될 게 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내걸고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었죠.

그리고 그는 예수님께 나와 간절히 간구합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얼마나 처절한 외침입니까? 

이 외침을 듣는 순간 41절 

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여기서 불쌍히 여기셨다는 것은 마치 창자가 끊어지는 것과도 같은 아픔을 말하는 것으로 나병 환자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긍휼의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마가는 왜 이 나병 환자의 사건을 기록한 것일까요? 

오늘날에는 이미 나병은 사라지고 없지만 나병 환자와 같은 자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병으로 인해서 손가락이 잘려나가고 얼굴이 문드러져도 그 고통을 느낄 수 없듯이, 

자신의 죄로 인해 자신의 영혼이 죽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지 못하는 영적인 나병 환자가 많기 때문이죠.

그러나 '주님 제가 죽게 되었습니다. 살려주십시오'라고 구할 때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구세주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인 나병 환자가 나일 수 있음을 인정하십니까? 

예수님께 엎드려 간구할 때 나음을 얻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깨끗해지기를 원한 나병환자의 간구에 예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나요?

 

사랑하는 주님 
우리의 영혼의 새벽을 깨우며 주 앞에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얼굴에 빛을 비춰주시고 치유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긍휼의 마음이 우리에게도 부어지게 하시고, 연약한 자들을 돕고 사랑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사랑 많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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