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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고난을 선택하는 믿음(히브리서 11:17~31)(20230923)

2023.09.23. | 생명의 삶 | 도육환 목사

 

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고난을 선택하는 믿음

 

할렐루야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도한 목사입니다.

지난 한 주간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큐티 방송과 말씀 묵상으로 이 주말을 맞이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한 주간의 싸움에서 믿음으로 승리한 용사들입니다. 

요즘 묵상하고 있는 믿음의 선진들처럼,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여러 믿음의 조상들이 걸어간 신앙의 자취를 하나씩 묵상하며, 

우리가 따라가야 할 믿음의 도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믿음의 사람들이 이름을 남긴 명예의 전당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늘 묵상할 본문은 히브리서 11장 17절에서 31절 말씀입니다. 

 

 

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고난을 선택하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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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28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30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오늘도 역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삶을 묵상하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절정에 달한 사건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7절에서 19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멘.

 

어느 날,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았을 겁니다.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인신제사를 명하는 것 자체도 이해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약속하신 지 25년 만에 주신 귀하디 귀한 아들입니다. 

이 아들의 존재 여부는 약속이 성취되느냐 무산되느냐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창세기 22장에는 아브라함이 무덤덤하게 말씀에 순종하여 모리아 산을 향하는 것 같지만, 

아마 그 내면은 고통과 혼란으로 뒤엉켜 있었을 것에 틀림없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고 했거나, 아내 사라와 이 문제를 상의했다면, 결코 이 명령에 순종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그는 이른 아침 일찍 나귀의 안장을 지우고 이삭과 종을 데리고 사흘 길을 걸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큰 민족과 지금 명령하신 아들 제사, 그것은 결코 병행할 수 없는 큰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모든 상황을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그의 믿음에는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이라는 것과, 그분이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 

그리고 그 이루실 방법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에 대한 신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가 순종하기로 결정한 순간, 이 병행할 수 없는 모순은 아브라함의 손을 떠났고, 이제는 하나님께서 푸셔야 할 문제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독생자 이삭을 번제로 드릴지라도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실 것이다라는 그의 믿음이 전제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순종할 수 있었던 거죠. 

 

그리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향해 칼을 높이 들었을 때 이미 이삭은 죽은 목숨이 되었고,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하는 음성이 들렸을 때 이삭은 다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 그대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시험하셨고,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큰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께서 책임지셔야 할 일까지 내가 고민하고, 내가 주인인 것처럼 걱정할 때가 많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로 결정하면, 때로 약속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그때부터 그 일의 성취 여부는 하나님의 손에 넘어갑니다.

내가 문제를 풀어보려고 하니 믿음으로 못 맡기고 걱정과 혼란에 빠지는 겁니다. 

모리아 산 사흘길이 아브라함을 더욱 믿음으로 견고하게 세워주었듯이, 

그 하나님에 대해서 신뢰하는 믿음을 바로 세워 나갔듯이, 우리가 당하는 모든 상황들이 더욱 온전한 믿음으로 이끌게 되는 기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세 분의 믿음을 보십시오.

이삭은 장작꾼이 돌아가야 할 에서가 아닌 야곱을 축복함으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었습니다.

야곱 역시 죽기 전에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할 때 손을 어긋나게 안수함으로 므나스가 아닌 에브라임에게 오른손에 축복을 주었습니다. 

또한 요셉은 임종시의 자신의 뼈를 가난한 땅에 장사 지내라고 유언을 남김으로 장차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을 기업으로 얻도록 예언, 즉 명령을 내리게 된 겁니다. 

 

세 분 역시 당시 전통이나 현실을 보지 않았고,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의 일을 믿음으로 바라본 분들입니다. 

우리 역시 미래를 알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으로 걸어가고 있다면, 

우리의 모든 생각과 경험 너머에 계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됩니다.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가 됩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매 순간 믿음으로 보고, 믿음으로 판단하고, 믿음으로 실행에 옮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에 아브라함이 순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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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모세의 얽힌 믿음 이야기를 묵상해 보겠습니다. 

모세의 부모였던 아브라함과 요벳은 모세가 태어났을 때 히브리 아이들을 죽이라는 바로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고 석 달 동안 숨겨서 키웁니다. 

물론 부모의 사랑도 컸겠죠. 

그러나 그보다 장차 이루어지게 될 하나님의 뜻을 믿음으로 바라보았기에 위험을 무릅쓸 수 있었다. 

오늘 본문은 말씀하십니다. 

과연 갈대상자에 담긴 채 나일강에 띄워줬던 물에서 건져낸 아이 모세는 정확하게 바로의 공주에게 인도되었고, 그의 돌봄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24절에서 26절을 읽겠습니다.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는 장성하여, 공주의 아들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화와 권력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는 길을 선택합니다.

자신의 동족 히브리 노예들이 당하는 고난을 보고, 의분을 일으켜 애굽 사람을 죽이고, 광야로 도피하여 무명의 목동으로 40년을 삽니다.

모세는 땅의 왕궁에서 누릴 수 있는 영화보다 영원한 하늘나라의 상급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땅에서 얻는 것은 잠시 누리다 사라지는 죄악의 낙, 즐거움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애굽을 떠날 때도 믿음으로 결정했고, 

광야에서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간 것도 믿음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왕궁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보화와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수난을 더 큰 영광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물론 모세는 구세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난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함으로 장차 이룰 구원의 예표가 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유월절 그 밤에 히브리인들의 집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던 어린 양의 피는 

장차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오셔서,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건져내 주신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중요한 예표, 그림자가 된 것입니다.

 

이어지는 믿음의 행진을 보십시오. 

모세와 함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추격하던 애굽의 군대는 자신들도 홍해로 들어갔다가 다 수장되어 버렸습니다. 

믿음으로 걸어간 길을, 믿음 없는 자가 따르다가 얻은 재앙입니다.

40년, 광야를 통해 믿음의 시험이 계속되었고, 드디어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진입합니다. 

역시 철옹성 같은 여리고 성도 7일 동안 믿음으로 돌며 소리를 외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열리고는 맥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와중에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영접하고 이스라엘의 정복을 도와서 그녀와 온 가족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올린 명예로운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면 됩니다.

믿음으로 길도 열고, 믿음으로 저주도 물리치고, 믿음으로 우리 앞에 있는 장벽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믿음의 행진은 지금도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 믿음의 행렬에 함께 서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랐고, 볼 수 없는 것을 보았고,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매순간 무슨 일을 하든지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은 새로운 세계에 눈을 열어줄 것이며,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비전과 꿈을 갖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명예로운 믿음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고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의 즐거움'과 '그리스도인의 고난' 중에서 나는 무엇을 택하나요?

 

존귀하신 주님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땅에 살지만 하늘에 속한 자로 살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잠시 누릴 수 있는 죄악의 즐거움보다
상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영원한 기업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존귀하신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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