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담대함과 인내로 신앙을 지키는 성도(히브리서 10:26~39)(20230920)

2023.09.20. | 생명의 삶 | 도육환 목사

 

담대함과 인내로 신앙을 지키는 성도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복된 하루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영종은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도육한 목사입니다.

마라톤 경기를 보거나, 혹 단축 마라톤에 뛰어보신 적 있습니까? 

숨 가쁘고 고통스럽지만 멈추지 않고 끝까지 완주해야 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라톤에 자주 비유되곤 하지요.

우리는 이미 트랙 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힘들더라도 완주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믿음의 경주를 계속해 나갈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의 경고를 통해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할 말씀은 히브리서 10장 26절에서 39절 말씀입니다. 

 

 

담대함과 인내로 신앙을 지키는 성도

 

더보기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32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33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부담이 될 만큼 매우 강력한 경고의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히브리서가 기록되던 초기 교회에 믿음 생활을 시작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신앙을 떠나 배교하게 된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대 배경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정통 유대교로부터 돌아오라는 회유와 협박이 있었을 것이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면서 자신들이 속한 지역사회에서 고립당하거나 배척당하는 일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사역했던 스리랑카에도 불교나 가톨릭 지역에서 신앙을 갖게 된 성도들이 여러모로 불이익을 당하고 소외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역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우물이나 농업이나 어업에서 배제시키고, 

심지어는 부모님 장례를 치를 묘지도 주지 않는 경우가 있었지요. 

얘나 지금이나 믿음이 경고할 때는 이런 문제를 쉽게 이겨내지만, 신앙이 흔들릴 때는 이런 회유와 협박에 무너져 배교하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서는 배교자들에 대해 무섭게 경고하면서 믿음을 지킬 것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26절, 27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무서운 말씀이죠.

예수 그리스도가 참 진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고백한 신자가 

짐짓 의도적으로 배교의 죄를 범하는 경우에는

속죄의 길이 없을 뿐 아니라 불같은 심판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배교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신앙생활 중 낙심해서 예배를 게을리하거나 모태 신앙으로 자라나다가 젊은 날에 잠시 방황하고 주를 떠나 있는 정도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의적으로 믿음을 배반할 뿐만 아니라 주를 대적하는 상태까지 이른 걸 말하지요.

29절의 말씀처럼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임할 형벌은 무겁고도 고통스러울 것이라 하십니다. 

옛 언약인 율법에도 두세 사람의 증거가 있으면 용서받지 못하고 처벌을 받았는데, 

하물며 이렇게 보배로운 새 언약을 누리고 배교하는 것은 더욱 무서운 진노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자와 긍휼이 크셔서 용서하시고 오래 참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눈 감아주시는 분은 아닙니다. 

공의로운 분이시며,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분이십니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반드시 악을 심판하시겠다 그런 뜻입니다. 

또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하셨으니, 당신의 백성조차 배교하면 징계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31절과 같이 경고합니다. 

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두려워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고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이 점점 약해지고 있는 오늘 우리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두려움으로 귀 기울여야 할 말씀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용서하심, 조건 없는 은혜, 그 사랑에 너무 도취되어 있는 나머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성품마저 애써 의도적으로 잊어버리려고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이 선포되는 강단에서도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는 설교는 하지 않으려고 하고, 

성도들 역시 그런 설교를 듣고 싶어 하지 않아 합니다. 

절대 진리를 부인하는 시대 정신에 요동되어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조금만 어려운 일이 닥치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신앙공동체를 떠나버리는 경우들도 적지 않지요. 

신앙의 중심에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자리 잡고 있는 건 아닐까요? 

스스로가 신앙의 행위와 판단의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닌 임의로 나 자신이 판단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처럼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반복할까요?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불꽃 같은 눈으로 살피시고 아시는 하나님이시지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늘 하나님의 현존 앞에 살아가는 코람데오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우리의 말과 행위를 삼가 조심하는 겸손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죄 사함의 은혜를 알고도 일부러 죄를 선택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나요?

 

반응형

 

배교에 대해서 강하게 경고했던 히브리서 기자는 이제 그들 안에 있었던 아름다운 신앙의 행보를 기억시켜 줍니다. 

3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32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히브리서를 받아 읽는 성도들은 이미 전에 큰 고통과 시련 중에도 인내하고 승리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고난 중에 이겨냈던 이전의 믿음을 상기시킴으로 다시 용기를 가지고 이 어려움과 시험들을 이겨내도록 북돋아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동안 어떤 싸움에서 이겨왔는지를 볼까요?

그들은 이전에 비방받으며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고, 큰 환난을 겪는 이들과 함께 신앙공동체를 이어왔습니다. 

자신이 당한 일만으로도 버거웠겠으나 갇힌 자들을 찾아 위로하고 마음을 나누었던 사람들입니다. 

소유를 빼앗기고 큰 손실이 있었지만 오히려 더 영원하고 더 나은 상급을 바라보며 이겨내기도 했습니다.

말 그대로 큰 고난 중에 이겨낸 영적 전사들이었습니다. 

그것을 기억하라 하십니다. 

 

만일 오늘 우리에게 이 같은 고난이 닥치면 우리는 믿음과 정절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자신이 없어지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예전에 잘 이겨온 성도들이었지만, 이제 다시 인내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시련의 파도가 한 번 몰려오고 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위협과 시험이 몰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이겨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36절, 37절을 읽겠습니다.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아멘. 

 

첫째 이유는 끝까지 견디고 이기는 자가 약속하신 것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약속하신 것이 무엇일까요?

영원한 하늘의 상급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승리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받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머지 않아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때문이랍니다. 

거기로부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분 앞에 우리 살아있는 모든 자들의 삶을 결산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최후의 심판대 앞에 칭찬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이후에는 다른 어떤 항소도 재심 청구도 소용없는 최후의 심판날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하고 또 지킬 수 있습니다.

어떤 시련이 와도 인내로서 이겨내고 믿음의 경주를 계속해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까지도 잘 이겨오셨고 승리해 오셨습니다. 

동시에 앞으로도 어떤 유혹과 시험이 몰려와도 이 믿음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 견고하게 붙들지 않으면 몰려오는 새 속의 파도에 쉽게 휩쓸려 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우리 자신들이니

깨어 경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만 휩쓸려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39절의 말씀이 저와 여러분의 확신이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아멘.

 

우리는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우리의 신앙에는 후퇴도 없고 정지도 없습니다. 

계속 달리지 않으면 쓰러지는 자전거처럼 믿음의 페달을 계속 밟아야 합니다. 

최후의 안식의 날이 올 때까지 깨어 있어야 하고 믿음의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도 믿음의 도리를 굳게 붙잡고 달음질해 온 줄 압니다. 

잘하셨습니다. 

그리고 주저하거나 움츠리지 말고 계속해서 이 거룩한 믿음의 달음질을 이어나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용기 내십시오. 

당신은 승리자입니다.

 

믿음으로 전진하는 신앙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존귀하신 하나님 
어떤 시련과 유혹 앞에서도 복음을 타협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 말씀과 언약을 굳게 붙들고 견고히 서서 끝까지 인내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