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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향한 항해, 주님이 이끄시는 여정(사도행전 27:1~12)(20230826)

2023.08.26.ㅣ생명의 삶 | 안광국 목사

 

로마를 향한 항해, 주님이 이끄시는 여정

 

할렐루야

금호중앙교회를 섬기는 안광복 목사입니다.

한 주간의 마지막 날 토요일인데요. 

말씀으로 한 주간의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에게는 혹시 어떤 꿈이 있으신가요? 

꼭 이루고자 하는 꿈 여러분은 어떤 꿈을 가지고 살아가고 계신가요?

예수님에게도 꿈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꿈은 십자가에서 모든 사람의 죄를 구원하는 그런 꿈이었죠. 

사도바울에게도 꿈이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증거 하는 그런 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존스토트 목사님의

누가복음 강해의 부재는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사도행전 강의의 부재는 '예루살렘에서 로마로'라고 되어져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꿈이 예루살렘인 것을 또 사도바울의 꿈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증거 하는 것임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그런 제목인 것이죠. 

 

오늘은 자신의 꿈을 위하여서 로마로 호송되어지는 사도바울의 이야기를 통하여서 

나는 어떤 꿈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
나는 또한 어떤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드리며 살아갈 것인가?를 함께 묵상해 보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로마를 향한 항해, 주님이 이끄시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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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2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3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하더니
4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맞바람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항해하여
5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러

6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7 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8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시에서 가깝더라
9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10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12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말씀은 사도행전 27장 1절에서 12절까지 있는 말씀입니다. 

먼저 1절에서 8절까지 있는 말씀을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사도바울은 오랜 가이사레와 예루살렘에서의 법적인 그런 재판을 끝내고 이제 시저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서 자신이 꿈처럼 그렸던 로마로 호송이 됩니다. 

관광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재판을 받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이제 자신의 인생이 점점 더 자신의 꿈과 비전에 가까워지고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되는 시간인 것이죠.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꿈의 비전에 가까워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점점 더 멀어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모습을 말씀 가운데 한번 비추어 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1절 말씀에 보면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한 단어가 나오는데요. 

바로 처음에 나와 있는 단어입니다. 우리가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1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사실 사도바울의 고백을 한다면 내가 이렇게 되어져야만 하는 것이죠. 사도바울은 '우리가'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이 본문에 '아드라뭇데노'의 호에 같이 탔던 '아리스다고'를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증거 하는 데 있어서 나 혼자만 복음을 증거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늘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동역을 하고 있다라고 고백을 하고 있었고 

이 우리가라는 고백 안에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라는 의미도 포함이 되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삶을 살아갈 때 '내가', '내가' 라고 고백할 수 있지만 

'내가'라고 고백하는 것보다 나와 늘 함께 계시는 성령님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우리가'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삶이 조금 덜 외롭고 우리의 살아가는 삶 가운데 하나님이 늘 함께 계신 것을 늘 우리가 깨닫고 고백할 수 있게 되겠죠.

 

1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2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우리가 배를 타고 아우구스토대의 백부장 율리오와 함께 2절 말씀 '아드라뭇데노'라는 배에 올라타고 갔습니다. 

그때 아리스다고도 함께 동행했습니다. 

 

이 아리스타고가 등장하는 것은 사도행전 19장 29절 말씀인데요. 

사도행전 19: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에베소에서 큰 소동이 일어났을 때에 사도바울 대신에 붙잡혔던 두 사람 

아리스다고와 두기고 중 한 사람이 바로 이 아리스다고라는 것이죠. 

 

아리스타고는 이렇게 신실하게 사도 바울이 로마로 호송되어 가는 그 배에 함께 동행하였다는 것입니다. 


3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하더니
4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맞바람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항해하여
5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러
6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7 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8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시에서 가깝더라

이 배는 시돈을 출발하여서 또한 여러 지역을 통해서 구부로 해안을 의지하고 또한 무라시에 이르러 나중에는 미항이라는 곳에 도착을 하게 되었죠.

 

그런데 우리가 이 본문의 말씀 가운데 두 단어를 좀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바로 4절 말씀 가운데 있는 맞바람을 피하여라고 하는 맞바람입니다. 

4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맞바람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항해하여

또 하나는 7절 말씀에 있는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7 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라는 단어입니다. 

바다에서 항해를 하게 되면 언제나 순풍을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니죠. 

맞바람을 만나게 되기도 하고, 풍세가 허락하지 않는 일들을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잠잠했던 바다가 순간적으로 큰 풍랑과 폭풍이 밀려오는 것을 경험하게 되기도 하죠.

그래서 영국의 종교 시인이었던 조지 허버트는 이런 이야기까지 합니다. 

'기도를 배우고 싶습니까? 그러면 바다로 나가십시오.' 라고 하는 이야기를 하기까지도 합니다.

여러분, 이 본문의 말씀이 우리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인생이 마치 이렇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순풍만이 불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맞바람이 불어오기도 합니다. 

풍쇄가 허락하지 않는 그런 일들도 경험하게 되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꿈과 비전에 따라서 로마를 향해 가게 되는데, 순풍이 불지 않고 맞바람이 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아니 내 꿈에 점점 더 가까이 가는데 왜 이렇게 맞바람이 불지?

왜 이렇게 풍세가 허락하지 않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충분히 우리 인생 가운데는 이러한 일도 일어날 수 있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삶이 꿈과 비전을 향해서 한 걸음 한걸음 나아갈 때 

맞바람을 맞게 되거나 풍세를 경험하게 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서 너무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이 일 가운데는 다 하나님의 계획하신 섭리가 있음을 깨달아 알고 

그 계획하심 가운데 잠잠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기도할 수 있는, 머물게 되는 

하나님의 지혜로운 백성들이 다 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섭리로 내가 가게 된 곳이 있다면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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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말씀 9절부터 12절까지에 있는 말씀을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9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10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12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9절 말씀 함께 보실까요?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미항이라는 곳에 임시로 정박하였던 알렉산드리아 호는 풍쇄가 더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곳에서 여러 날을 머물렀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사도 바울은 선지와 또한 이 모든 호송선에 책임을 지고 있던 백부장 윤리오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이 바로 10절 말씀입니다. 

여러분이요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화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많은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칠 것 같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무리하게 항해를 강행하지 마십시오라고 하는 의미이죠. 

그런데 백부장은 바울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었다고 11절 말씀에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선장과 선주가 항해에 대해서는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다 밝게 깨달아 아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이 모습은 배 안에 있는 바울, 이 모습은 

세상 안에 있는 교회, 크리스천과 같은 그런 모습으로 비칩니다. 

세상 안에 있는 크리스천들이 세상을 향하여 어떤 메시지를 내고자 할 때,

세상은 교회의 메시지, 크리스천의 메시지를 귀 기울여 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에게 더 많은 지식과 경험과 또한 판단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세상이 교회의 말을 들었을 때에 시대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많은 역사적인 기록들이 있습니다. 

세상이 교회와 크리스천들의 메시지에 귀 기울여 듣지 않을 때에 짧게 지나갈 수 있는 어려움을 더 큰 어려움으로 만드는 그런 일들도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바라보게 되는 것이죠. 

 

또한 이 본문의 말씀은 우리 안에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자 하는 사도 바울과 같은 모습도 있고,

또한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의지하고자 하는 백부장과 같은 모습도 내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결정하게 될 때 아주 중요한 결정 앞에서, 신앙적인 판단과 세상적인 판단 앞에서 갈등하는 나의 모습이 있다라는 것이죠. 

신앙적으로 보면 '반드시 이를 이렇게 해야 되는데', 신앙적인 메시지로 보면 '그건 그렇게 하면 안 돼'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신앙적인 말씀의 메시지에 귀 기울여 듣지 않고 세상에 주는 메시지, 이 세상의 정세를 보아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보고 판단을 해보니까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라고 하는 세상의 메시지에 우리가 더 귀 기울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풍랑과 같은 인생 앞에서 세상의 메시지에 더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의 메시지에 더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까?

이 말씀은 분명히 여러분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풍랑 앞에 선 너희들이여.

하나님의 말씀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라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인생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지 않고 그 어려움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인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서 세상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메시지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인생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헌신하며 결단하며 기도할 수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거룩한 인생이 다 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는 무엇을 선택할 때 누구에게 의견을 묻나요?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인생의 꿈과 비전에 한 걸음 한걸음 가깝게 다가가는 그 과정 가운데에서도 
맞바람을 맞이하거나 풍세가 허락하지 않는 그와 같은 일들도 경험할 수 있는 것을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고, 
그런 어려움들이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나게 될 때 
잠잠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할 수 있는 지혜로운 백성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의 메시지를 의지하며 귀 기울이기보다
말씀의 그 메시지와 우리에게 하시는 음성을 듣고 귀 기울일 수 있는
그런 결단과 또한 믿음이 우리에게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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