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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열정의 사슬에 결박된 전도자(사도행전 26:24~32)(20230825)

2023.08.25.ㅣ생명의 삶 | 안광국 목사

 

사랑과 열정의 사슬에 결박된 전도자

 

할렐루야

금호중앙교회를 섬기는 안광국 목사입니다. 

오늘도 생명의 말씀과 동행하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경에는 변화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한 족장에서 믿음의 조상으로 변화된 아브라함의 이야기,

또 유대인의 한 아이에서 이집트의 왕자로,

또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변화된 모세의 변화 이야기, 

목동에서 왕으로 변화된 다윗의 이야기, 

핍박자에서 복음의 증거자로 변화된 사도바울의 이야기 등 

너무나 많은 변화된 사람들의 이야기로 성경은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도 또한 이렇게 변화되기를 바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이 변화에 대해서 생각해 볼 이런 이야기를 하였는데요. 

변화는 당신에게 일어나는 어떤 일들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당신에게 일어난 그 일에 대하여서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서 변화되는 것이다. 

참 의미 있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도 그 나쁜 일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은 우리의 삶 가운데 큰 변화를 일으킬수 있는 아주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서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가야 될지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귀한 묵상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할 하나님 말씀은 사도행전 26장 24절에서 32절까지 있는 말씀입니다.

 

 

사랑과 열정의 사슬에 결박된 전도자

 

더보기
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25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27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28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30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31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32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먼저 오늘의 본문의 말씀 24절부터 26절까지에 있는 말씀을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사도바울의 복음의 증거의 이야기를 듣고 총독이었던 베스도가 이렇게 반응을 합니다. 24절 말씀입니다. 

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베스도가 크게 소리를 내어서 바울아, 미쳤도다라고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베스도가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베스도가 이 선포되어지는 복음의 메시지가 진리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이야기를 들을 때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면 이렇게 두려워하거나 큰 소리를 내면서 반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코웃음 치면서 흘려버리면 되는 것이죠.

그와 같은 이야기가 사도행전 17장 32절 말씀 가운데 등장을 하게 되는데요. 

사도행전 17: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을 통해서 아테네에서 복음을 증거하게 하실 때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에 대해서 아테네 사람들이 비웃고 코웃음을 쳤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사도바울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해도 아테네 사람들이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냥 비웃고 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어 이렇게 지나가 버린다는 거예요. 

그런데 베스도는 크게 소리를 내면서 바울아, 내가 미쳤도다라고 이야기를 했다라는 것입니다. 

베스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이 학식이 뛰어나고 율법에 능통한 사람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도바울을 통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증거를 듣게 되니 베스도가 충격을 받게 된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가 사도바울처럼 우리가 믿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당황시키고 세상을 놀라게 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고 알고 있는 복음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말씀처럼 살았고 운동력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증거할 때 세상은 베스도와 같이 당황하고 놀라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말씀에 보면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많은 인생의 이야기를 이야기를 하면서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들이다.'

라고 이 사람들의 인생을 요약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만 세상에 감당치 못할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그렇게 세상이 감당치 못할 인생이 되어줄 수는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믿음의 선배들처럼 세상을 놀래고 세상을 당황시키고 세상이 감당치 못할 인생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하며

나에게 주신 그 복음을 소중하게 여기고 말씀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갈 때에 이렇게 베리스도를 깜짝 놀라게 하고 당황시켰던 사도바울의 고백과 동일한 고백이 우리 입술과 우리의 삶을 통하여서 세상에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영상을 보고 있는 모든 성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세상을 당황시키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능력으로 선포되어질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믿음의 선배들과 같이 세상에 감당치 못할 사람들로 여러분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복된 인생이 되어줄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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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27절에서 32절까지에 있는 말씀을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분봉왕이었던 아그립바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27절 말씀입니다. 

27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28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이 말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바울아, 내가 이 적은 말로 나를 설득하여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할 수 있을 줄 아느냐? 그렇게 될 수 없다.'

이런 이야기죠. 또 반대로 역설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야 사도 바울은 니가 조금만 더 이야기를 하고 너의 이야기를 조금만 더 듣고 있었더라면 내가 자칫 그리스도인이 될 뻔했다. 너 말 듣고 있다 보면 내가 크리스천 되겠어'

이런 의미도 이 말씀 가운데 담겨져 있는 것이죠. 

그와 같이 사도바울의 이야기에는 설득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29절 말씀에 

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나처럼 살아라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의 인생은, 그의 가정은 그의 자녀들은 얼마나 복된 인생과 가정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드라마에서 많이 보는 것처럼 

보통은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이 아빠처럼 살지 말아라 엄마처럼 살지 말아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보통이죠.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 

이것만큼 정말 설득력 있는 고백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을 설득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죠. 

첫 번째는 로고스입니다. 이것은 로직이죠. 이성적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방법입니다. 
두 번째는 파토스입니다. 이것은 패션이죠. 열정적으로 뭔가를 이야기할 때 사람을 설득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하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바로 에토스입니다. 이것은 에딕이죠.

윤리 자기의 삶의 고백을 말하는 것입니다. 

논리로도 사람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열정으로도 사람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가장 설득할 수 있는 효과적인 가장 궁극의 방법은 자기의 삶을 통하여서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이죠.

본문의 말씀 가운데 있는 사도바울의 고백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하는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겠죠.

사도바울은 어떻게 이렇게 능력 있는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그런 사람이 되었는가?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것은 사도 바울이 무언가 특별해서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을 특별히 사용하셔서 사랑하셔서
사도바울의 인생이 나의 인생과는 참 다르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의 인생도 우리의 인생과 다를 바 없는 인생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들을 참 좋아하시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이렇게 많이 만드신 것을 보니까. 

그런데 그 뒤에 아브라함 링거는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평범한 사람을 통하여서 비범한 역사를 만드신다.

평범한 인생을 비범한 인생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바로 그들의 기도이다. 그들의 선택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평범합니다. 

비범해 보이는 사람도 하나님의 관점에 보면 다 별반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인생이죠.

그러나 평범한 우리가 비범한 인생으로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기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선택하는 그 선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비범한 인생으로 쓰시는 그런 인생이 되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어떤 기도를 드리고 하루를 살고 계십니까? 어떤 선택을 하고 살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기도가, 여러분의 선택이 평범한 여러분의 인생을 비범한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는 인생으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기도, 놀라운 선택이 되어줄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아야 할까요?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믿음의 선배들이 세상에 감당치 못할 믿음의 여정을 걸었던 것처럼, 
우리도 또한 세상에 감당치 못할 사람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시고, 
너무나도 평범한 우리의 인생이나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선택을 통하여
하나님의 비범한 역사에 쓰임받는 귀한 인생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을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고, 
날마다 기도하며 하나님 기뻐하시는 선택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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