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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재판 과정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섭리(사도행전 25:13~27)(20230822)

2023.08.22.ㅣ생명의 삶 | 안광국 목사

 

오랜 재판 과정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섭리

 

할렐루야 

금호중앙 교회를 섬기는 안광국 목사입니다.

오늘도 말씀과 함께 동행하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잊지 않았다'라고 하는 책을 쓴 케네스베 선교사님은

외국인으로서는 북한에 가장 오랜 시간 동안 735일, 2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억류되어 있었던 선교사님이었죠.

그 선교사님의 책을 보면 북한에 억류되어 있을 당시에

심한 고문을 받지는 않았지만, 중노동에 시달리며 밤에는 불을 끄지도 않은 채 잠을 자야만 했던 그런 어려움 가운데 있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선교사님은 처음에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 나를 좀 꺼내주십시오. 나를 구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다가

점점 자신의 기도가 나를 구해주십시오라는 기도에서

'나를 이곳에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로 바뀌어졌다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참 귀한 고백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때로는 어려운 일 가운데 

'나를 좀 도와주십시오. 나를 구해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하지만,

이 선교사님의 고백과 같이

'이 어려움의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 나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내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우리의 인생이 더 복된 인생이 되어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서

'나를 구해주시옵소서'라가 아니라 '나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한 사도바울의 삶의 이야기를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할 본문의 말씀은 사도행전 25장 13절에서 27절까지 있는 말씀입니다.

 

 

오랜 재판 과정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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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14 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이르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
15 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

16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주는 것은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17 그러므로 그들이 나와 함께 여기 오매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명하여 그 사람을 데려왔으나
18 원고들이 서서 내가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19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뿐이라
20 내가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심리할는지 몰라서 바울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

21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지켜 두라 명하였노라 하니
22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이르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
23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24 베스도가 말하되 아그립바 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 당신들이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25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내가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그가 황제에게 상소한 고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나이다

26 그에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자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 앞에 그를 내세웠나이다
27 그 죄목도 밝히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아나이다 하였더라

 

먼저 오늘 본문 13절에서 22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사도바울의 변론을 담당했던 총독 벨릭스는 사도바울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년 동안 이틀 동안이나 사도바울을 구류하고 있었죠. 

재판을 받지 못한 채 사도바울은 그냥 억류가 되어 있었습니다.

벨릭스가 자신의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일찍 사망하게 되고, 그 뒤를 이어서 베스도가 새롭게 총독이 되었죠.

그리고 베스도는 동일하게 사도바울을 신문을 합니다. 

그런데 그 어떠한 죄의 몫도 찾아내지 못했던 베스도는 새로 총독이 된 자신을 방문하러 온 분봉왕 아그립바와 버니게의 앞에서 사도바울의 이야기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인데요. 18절 말씀에 보면, 

18 원고들이 서서 내가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19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뿐이라

이 재판을 내가 이루었으나, 원고들이 서서 내가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일에 대해서 고발하였을 뿐이다라고
총독인 베스도의 입을 통하여서 분봉왕 아그립바 왕에게 증거를 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생각할 때, 상식적으로 사도바울에게는 죄가 없었고, 

그리고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보다 열심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이 하나님 나라에 훨씬 더 유익하였기 때문에, 

우리 생각에는 사도바울이 빨리 그 재판을 받고 풀려날 것으로 생각을 하였지만, 

사도바울은 2년 동안이나 억울한 감옥 생활을 하였고, 

또 새로운 총독 베스도 앞에서 재판을 받았고, 

이제는 아그립바 왕 앞에서도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건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 12장 말씀에 보면,

무고한 베드로를 가뒀던 그런 많은 사람들의 재판 앞에서, 성령께서 베드로를 성령의 놀라운 능력으로 감옥으로부터 출옥시키는 그 본문의 사건을 우리가 바라봅니다.

이와 같은 일이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도 또 일어나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죠. 

아니, 왜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을 저렇게 가둬두고, 오랫동안이나 여러 사람들에게 심판을 받으며 저렇게 묶어놓으시지? 이것은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효율적인 방법이 아닌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은 

바로 총독인 베스도의 입을 통하여서 분봉왕이었던 아그립바에게 이 사람이 잘못이 없는 것을 내가 보았다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입을 통하여서 '나는 무죄합니다'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재판을 담당하였던 총독인 베스터의 입을 통하여서 사도바울이 무지하다라는 것을 증거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얼마나 더 놀라운 사실입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복음을 증거할 때, 

내가 아니라, 그 증거하는 복음을 듣고 있던 옆에 있는 사람이

내가 이 이야기를 듣자 하니 이 사람의 말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한다면,

그것은 내가 복음을 증거하는 것만큼 더 의미가 있는 일이죠. 

그와 같은 의미가 있는 일이 바로 베스도와 아그립바와 버니게의 사이에서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가 깨닫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될 제목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내가 복음을 증거하게 될 때에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서 이 복음이 분명한 사실이고, 또한 명백한 복된 소식이 있는 것을 증거 하는 그런 놀라운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베스도와 같은 사람을 나의 주변에 세워주셔서 나로 하여금 복음 증거에 도움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간구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에겐가 복음을 증거해야만 하는 아주 절박한 상황이 혹시 있습니까? 

여러분, 그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서 도울 수 있는 베스도와 같은 사람을 여러분에게 붙여주시고 만나게 해 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베스도는 아그립바에게 바울의 고발 사건에 대해 어떻게 보고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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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말씀 23절에서 27절까지에 있는 말씀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이 본문 말씀 가운데 너무나도 중요한 두 가지 묵상의 포인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23절 말씀인데요.

23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총독인 베스트로의 명령에 따라서 죄인으로 여겨지는 바울이 그 앞에 서게 됩니다. 

아그립바왕과 버니게는 크게 위험을 갖추고 많은 사람들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아그립바왕은 어떤 사람일까요? 

아그립바 헤롯이라고 하는 이 아그립바는 유대를 다스리고 있는 분봉왕이었죠. 

그의 증조부 할아버지 헤롯은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에 많은 영아들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렸던 그런 사람입니다. 

이 아그립바 왕의 아버지였던 헤롯은 최초의 순교자 야고보를 순교시켰던 그런 왕이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이 아그립바 왕의 가문은 복음을 가장 최전방에서 적극적으로 박해했던 그런 사람인 것이죠.

그의 아내였던 버니게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아그립바 왕과 이 남매 지간에 있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버니게는 역사를 보면 세 번의 결혼을 했습니다. 

첫 번째 친삼촌인 헤롯과 결혼을 했다가,

두 번째는 길리기아 지방의 분봉왕이었던 폴린과 결혼했다가

세 번째는 유대의 분벙왕이었던 아그립바와 결혼한 사람이었죠.

 

바울을 신문하려고 위엄을 갖추고 선 사람 아그립바와 버니게 어떤 인생이 더 행복해 보이는 인생일까요?

사람들은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행복한 인생으로 보일지 모릅니다.

그들에게는 권력이 있었고, 힘이 있었고,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었고, 위엄을 갖추고 죄수인 바울 앞에 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인생 가운데 정착할 사람을 찾지 못하고 때로는 친삼촌에게 또는 다른 사람에게, 

결국에는 자신의 오빠에게 결혼한 그런 버니게와 같은 그런 인생이었고,

아그립바 왕은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증조부로부터, 그의 아버지로부터 많은 사람을 살해하고 죽이는 그런 가문의 위업을 받은 사람이었던 것이죠.

 

오늘의 본문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첫 번째 메시지는 

어떤 인생이 더 행복한 인생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위엄을 갖추고 사람들 앞에서 존경의 시선을 받는 그런 인생이라 할지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인생보다는 죄수의 신분으로 피고의 신분으로 그들 앞에 선 바울의 인생이 더욱더 행복한 인생인 것을 오늘의 본문을 우리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중요한 메시지는 25절과 27절에 나와 있는 말씀인데요.

베스도가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살피건데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황제에게 상소했기 때문에 황제에게 시저에게 보내져야만 합니다. 

25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내가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그가 황제에게 상소한 고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나이다

27절 그 죄목도 밝히지 않고 죄수를 보내는 것은 무리한 일인 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27 그 죄목도 밝히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아나이다 하였더라

황제 앞에 법정에 세워져야만 하지만, 무슨 죄목인지도 밝혀지지 않은 채 죄수를 어떻게 보내겠습니까? 

그러니까 황제에게 보내기 전에 아그립바 왕이 이 사람의 죄에 대해서 한번 판단해 보십시오.

내가 볼 때는 이 사람이 죄가 없는 사람입니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유대의 총독이었던 베스도의 입을 통하여서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면, 

죄가 없는 사람으로서 죄수를 보내는 것은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까? 

바로 아무런 죄 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일을 총독인 베스도를 통해서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아무런 죄도 없는데 아무런 죄도 없는 죄수를 어떻게 재판장으로 보냅니까?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이 재판장 앞에 서 있는 많은 사람들의 그 마음 가운데 아무런 죄도 없이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았던 그들의 양심을 찌르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총독인 베스도가 바울의 이야기를 통하여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으셨지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분이십니다라고 분명히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많은 사건은 처음에 얼핏 바라보며 이 말씀이 왜 여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얻게 되지만, 

자세히 그 말씀 가운데 담겨져담겨 있는 그 뜻과 이유를 살펴보면 너무나도 귀하고 아주 놀라운 복음의 사실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입을 통하여서 예수님께서 아무런 죄도 없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을 증언하게 하신 그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이 오늘의 여러분의 삶 가운데 나타나, 여러분이 함께 복음과 살아갈 수 있는 놀라운 삶을 살게 하시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베스도는 바울을 심문한 이유를 무엇이라고 밝혔나요?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는 위엄을 갖추고 죄수인 바울 앞에 서게 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증언하는 것은 
많은 위엄을 갖추고 있었던 아그바 왕과 버니게의 인생이 행복한 인생이 아니라
사도바울의 인생이 행복한 인생인 것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우리는 때로 세상의 부와 명예와 성공에 현혹이 되어져서 
'나의 인생보다 저 사람들의 인생이 더 행복하겠지'라고 잘못 생각할 때가 있는데,
이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서 복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나의 인생이 정말 행복한 인생인 것을 깨달아 아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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