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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고발에 맞서는 힘, 진리에 기초한 믿음(사도행전 23:31~24:9)(20230819)

2023.08.19.ㅣ생명의 삶 | 김주환 목사

 

거짓 고발에 맞서는 힘, 진리에 기초한 믿음

 

할렐루야 

허브교회를 섬기는 김주환 목사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에게 말씀의 은혜가 풍성하게 임하길 바랍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을 향해 

세상을 온통 뒤집어 놓은 자들이라는 표현, 또는 전염병과 같은 자들, 이런 과격한 표현을 사용한 걸 보게 돼요.

 

우리는 지난 3년간 이 코로나로 인해서 셧다운을 경험하면서, 또 격리를 경험하면서,

전염병이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죽음과 또 공포를 불어넣을 수 있는지를 목격했습니다.

전염병은 사람을 죽음과 공포로 몰아가지만, 복음은 사람들을 생명과 영원한 소망으로 인도합니다. 

비록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 자들을 향해 이런 과격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당시 믿는 자들은 그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었던 거죠. 

세상을 뒤집을 만큼 전염병처럼 

 

과연 우리는 복음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살고 있는가요?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하게 될 본문은 사도행전 23장 31절에서부터 24장 9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거짓 고발에 맞서는 힘, 진리에 기초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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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장
31 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32 이튿날 기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내로 돌아가니라
33 그들이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34 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35 이르되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

24장
1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2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3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4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6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6하반-8상반 없음)

8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고발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9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이 안토니우스 벨릭스는 유대 지방의 총독으로서 정말 악명 높은 총독이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두루실라로 헤롯 아그리파 1세의 딸이었고, 또 벨릭스의 셋째 아내였습니다. 

벨릭스의 아내가 되기 위해 남편을 버리고 온 여인이었죠.

이 벨릭스는 바울이 길리기아 출신의 로마 시민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유대인 죄수를 대하듯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먼저 그가 자신의 재판 관할 구역에 있는 사람 맞는지를 확인을 하게 됩니다. 

그다음에 그를 이제 일반 감옥이 아닌 헤롯 궁으로 보내게 되는데요.

이 사람들로 하여금 거기서 그를 지키도록 합니다. 

헤롯 궁은 헤롯 대왕이 직접 지은 지중해 해변에 있는 왕궁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무려 2년 동안 제법 괜찮은 환경에서, 심지어 보호를 받으면서, 숙식 다 제공받으면서 보내게 됩니다. 

 

여러분, 이것 또한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와 준비하심이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것은 이곳 가이사랴 빌립보에도 분명히 믿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바울이 여기에 있는 동안 왜 아무도 그를 찾아와서 격려했다는 기록이 없을까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고통당할 때,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그 누구도 바울을 돕지 않았습니다. 

그게 너무 가슴이 아파요. 

예루살렘교회 지도자들의 요구를 따르기 위해서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아무도 그를 찾아오지 않고, 바울을 지지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예요. 

이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2년 넘게 지내게 되었는데도 믿는 사람은 아무도 바울을 찾아와 도왔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은

너희가 서로 사랑할 때,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여러분, 성도는 그 누구보다도 성도를 사랑하고, 서로를 돌보고 격려하는 삶을 살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오늘 하루도 여러분 주에 있는 지체를, 형제를 사랑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뜻을 신뢰하며 내가 잠잠히 준비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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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장 1절부터 이제 바울은 드디어 벨릭스 총독 앞에 서서 재판을 받게 됩니다. 

비록 성난 유대인들로부터 벗어나는 데는 성공했지만, 바울은 과연 벨릭스 앞에서 무사할까요? 

역사가들이나 성경학자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벨릭스 총독은 올바른 권력을 전혀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보게 되면, 바울이 가이사랴에 도착한 뒤, 

당시 굉장히 잘 나가던 변호사 더들로라는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올라온 몇몇 장로들과 함께 와서 벨릭스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 아나니아도 지금 더둘로와 함께 바울을 고소하러 와 있다는 거예요 이게 좀 놀랄 만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때 아나니아의 나이가 80세 정도였어요. 

그러니까 당시 수명으로 본다면 오늘날 100세가 넘어간 굉장히 연로한 나이입니다.

그런데 그 80세의 연약한 몸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부터 가이사랴까지의 이동거리가 무려 100km인데 그땐 고속열차, 자동차, 비행기, 뭐 그런 거 없었죠. 

자전거도 없었습니다. 

근데 그런 나이에 이런 장거리를 이동하기에는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니었어요. 

거의 목숨을 걸고 떠나야 하는 여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0세인 이 노인이 직접 이곳까지 제 발로 왔다는 것은 그만큼 바울을 향한, 복음을 향한 적대감이 컸다는 것을 보여주지요. 

아나니아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바울을 총독 앞에서 직접 고소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2절과 3절을 보면 더들로는 벨릭스 총독에게 엄청난 아부를 퍼붓습니다. 

2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3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하면서 이렇게 막 감사한다고 말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 유대인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렇다면 그게 총독 덕분이었을까요?

과연 유대인들이 그 당시에 더들로 가 말한 것처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을까요? 

그것도 총독 덕분이었을까요?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벨릭스는 유대인들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었던 장본인이에요. 심각한 차별 정책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벨릭스가 얼마나 부패한 지도자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는데도 더둘로는 온갖 거짓말로 그를 칭찬합니다.

왜요? 

그래야 자신이 바울에 대해 고소할 때 잘 먹힐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더둘로에 의하면 바울은 어떤 사람이냐면 5절 말씀입니다.

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유대인들을 충동질하여 로마 정부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려는 악한 추동 자다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는 나사벳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초대교회를 대적했던 사람들은요. 믿는 사람들을 향해 두 가지 호칭을 많이 썼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잘 아는 그리스도인, 그리고 또 하나는 나사렛 당원이라는 거였어요. 

그리스도인은 작은 그리스도라는 의미로 주님을 모욕하려는 의도였고, 나사렛 당은 주님이 나사렛 출신이라는 것을 비아냥거리기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이 나다나엘이 예수님에 대해 뭐라고 했었죠?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느냐? 

이게 무슨 얘기냐면 당시 나사렛은 외진 시골 도시에 불과했다는 거예요. 

6절 말씀을 보면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함으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이렇게 돼 있습니다.

6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6하반-8 상반 없음)

바울이 이방인들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갔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죠. 

하지만 어차피 더둘로와 유대인들은 진실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승소해서 더둘로의 경우 자신의 커리어를 쌓는 것이고, 또 예루살렘에서 온 지도자들은 자신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었죠.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인 9절을 보면 더둘로와 아나니아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까지 간 모든 유대인들은 더둘로의 거짓말이 옳다고 뒷받침해 주는 것으로 끝납니다.

 

여러분, 마귀는 복음을 가로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인간의 경험, 기술, 재능, 정치력은 물론 이 모든 것 위에 거짓말을 동원해 가면서 복음을 전하는 자를 해방합니다. 

우리는 이런 거짓에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요?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공격에 대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바울이 다른 서신서에서도 늘 말한 것처럼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짓에 맞서기 위해서 우리는 삶으로 진리를 선포하면서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거짓 고발이나 거짓 험담에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요?

 

사랑의 주님, 어떤 거짓 앞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진리를 거짓이라고 말하고 거짓을 진리라고 가르치는 세대를 본받지 않게 하옵소서. 
거짓을 일삼는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오르고,
진리를 왜곡하는 인간들이 성공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오직 진리의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말씀을 날마다 믿음으로 붙잡고 살아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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