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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전도를 위해 주님이 택하신 그릇(사도행전 9:10~22)(20230710)

2023.07.10.ㅣ생명의 삶  | 안광복 목사

 

이방인 전도를 위해 주님이 택하신 그릇

 

할렐루야 

청주상당교회를 섬기는 안광복 목사입니다. 

 

여러분 축구 경기 좋아하십니까? 

축구에서 골을 얻는 선수만큼 중요한 것이 마지막 순간 공을 어시스트한 선수입니다. 

골을 넣는 선수에게 모든 찬사와 영광이 돌아가는 듯 하지만 어시스트한 선수에게도 큰 칭찬과 인정이 뒤따르지요.

경우에 따라서는 골을 넣은 선수보다도 더 높은 평점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나니아는 사도행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어시스트의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사울이라는 위대한 인물을 복음의 세계 안으로 들어오게 하십니다.

사울의 인생 전환점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 이후에는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고 사라집니다. 

잠깐의 등장이지만 너무도 귀한 사명을 감당하는 아나니아의 멋진 모습.

그가 어떻게 순종하고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 9장 10절에서 22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이방인 전도를 위해 주님이 택하신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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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오늘 본문 전반부에는 아나니아를 부르시는 성령님의 모습 이야기가 소개가 됩니다. 10절입니다.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아나니아를 부르셨을 때 아나니아는 즉각적으로 알아듣고 반응을 하죠.

'제가 여기 있습니다.'

어제 본문과 많이 데뷔가 되지 않습니까? 

'당신이 누구십니까?'

하고 깜짝 놀랐던 사울의 모습과 많이 비교가 됩니다.

아나니아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11절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성령 하나님께서는 아나니아에게 아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셔요.

일어나서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라 가라 하는 거리 '스트레이트 스트리' 똑바로 펼쳐진 그런 거리라고 하는 거죠. 

그곳에서 사울을 만납니다. 

평생 구부러진 길만 걸어왔던 그 사울을 똑바로 펼쳐진 그 거리에서 그가 만나게 되죠. 

유다의 집 장소입니다. 다수 사람 사울이라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지금 기도하고 있다. 

 

어제 본문과 뭐가 다릅니까? 

사울에게는 좀 막연하게 말씀을 하세요. 

시내로 들어가라. 너에게 뭘 해야 될지를 알려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거기에 반해서 아나니아에게는 굉장히 구체적으로 아주 명확하게 말씀을 하십니다. 

어디로 가서 누구의 집을 찾아가서 누구를 만나라. 

 

여러분 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 굉장히 아주 분명합니다. 아주 명확합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잘 분별하지를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사울의 경우가 그런 거죠. 

아직까지 주님과 친밀한 교제가 없었기 때문에 그래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주파수 라디오 시그널이 틀려질 때 어디 지방을 갈 때나 고속도로에서도 지역과 지역을 넘어설 때 

이게 시그널이 안 맞으면 명확한 그런 음악이나 아니면 라디오 프로그램들을 듣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마치 깨끗하게 정말 조용한 그런 호수에는 모든 것이 거울처럼 반사가 되지만

일렁이거나 아니면 어떤 좀 이렇게 흐트러진 그런 모습 속에서는 비추어지지를 못하는 이유와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사울과 아나니아는 결정적으로 그런 그런 차이를 지금 갖고 있어요. 


아나니아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13절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드사온 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합니다.'

여기서도 

굉장히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서 왔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라고 하는 질문에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15절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이 친구는 나의 그릇이다. 내가 사용할 그런 특별한 도구다라는 거예요.

누구를 위해서? 

이방인 임금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사울이 갖고 있었던 그런 해박한 지식들 

복음에 대한 열정들

비록 그가 구부러진 삐뚤어진 길을 걸어왔지만 

그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잘 만나고 사명을 그가 제대로 이해를 한다면 

정말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좋은 그런 그릇이 된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울을 그렇게 고쳐서 사용하시죠.

잘못된 길을 억지로 정말 삐뚤어진 모습으로 걸어갔던 그의 인생의 행보를 바꾸셔서 사용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들은 어떤 그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저와 여러분에게는 어떤 달란트를 주셨을까요? 

어떤 사명을 주셨을까요? 

이 말씀을 통해서 한번 나 자신을 한번 들여다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나도 주님 앞에서 온전하게 쓰임 받는 좋은 그릇되기를 원합니다. 

저희도 그런 모습으로 쓰여질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쓰임 받는

좋은 그릇, 선하고 아름다운 그릇으로 그렇게 쓰이는 인생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그렇게 기도하실 때,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참으로 귀한 주님의 도구로 그릇으로 사용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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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부분에서는 아나니아의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죠. 17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아나니아는 그 성령님의 명령 지시대로 순종을 합니다.

그대로 떠나서 사울을 찾아가죠. 

그리고 그를 만나서 그에게 안수합니다. 

그리고 뭐라고 말합니까? 

'형제 사울아' '형제 사울이여, 사울 형제님' 이런 거예요.

여러분 사울은 광기 어린 모습으로 크리스 안들을 핍박하고 교회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 찾아왔던 그런 사람이에요. 

핍박하고자, 아니면 죽이려고 그렇게 모습 정말 분노에 찬 모습으로 쫓아왔었던 그 사울인데

참으로 부드럽고 따뜻한 환대를 하죠.

'사울 형제님'

그러면서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신다. 

이것이 다 은혜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다라는 거죠. 18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사흘간 눈은 떴지만 볼 수가 없었던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던 정말 충격을 받아 있었던 사울이 드디어 눈을 뜹니다. 

그런데 안수했을 때 눈을 뜨는데 그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졌다고 이야기를 해요. 

참 신기한 그런 장면이죠. 그 비늘 같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어쩌면 일평생 사울을 무지몽매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했던 여러 가지 모습에 장애물들이에요. 

편견과 고정관념과 잘못된 그런 열정과 자신만의 의로움과 혈기와 이것으로 꽁꽁 묶여 살아왔던 

그래서 진실을 바라보지 못하게 했고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듣지 못하게 그의 삶을 삐뚤어지게 했던 

그 비늘 같은 것이 또각 떨어지면서 그는 진리를 제대로 바라보게 합니다. 

제대로 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그 소명의 자리 앞으로 그는 나아가게 되죠. 세례까지 받고요. 

그곳에서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는 동안 그 이후에 20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즉시로' 많이 나옵니다. 사도행전에 어떤 순종이나 빠른 진행을 나타내는 그런 부사절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2절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변화된 사울은 즉각적으로 복음을 선포합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가 메시아다.

이단자고 거짓된 사상을 설포 하는 그런 헛된 사이비 교주다가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복음의 확신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그 사실을 증거 합니다.

주저함 없이 정말 열심히 열심히 그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일평생 매진하게 되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울의 이 급격한 회심 장면을 보면서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변화되자마자 평생 온전한 모습으로 열심히 복음을 위해서 헌신했던 교회를 위해서 애를 썼던 사울의 모습 

주님, 저는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될까요? 

지금까지 어떤 모습으로 사셨습니까?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사랑하고 예배하고 그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우리도 사울과 같이 열심히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야 되지 않을까요? 

어디에서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의 증인 되어서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통해서, 

그 파워풀한 그 복음의 그런 간증과 증거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더 힘 있게 확장되고, 

주님을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돌아오는 

구원의 놀라운 역사가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내키지 않지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순종할 일은 무엇인가요?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아나니아처럼 때론 주목받지 못하는 이인자의 역할이 주어지더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온전히 순종하며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충성된 일꾼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때론 굽은 길을 걸어갈 때 가장 곱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시고, 
우리의 눈에서도 모든 교만과 음란과 탐심과 죄악의 비늘들이 벗겨지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주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라 증거 하며 살아가는 복음의 도구로, 축복의 통로로 
일 평생 살아가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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