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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정하신 심판의 비극(예레미야애가 2:11~17)(20230608)

2023.06.08.ㅣ생명의 삶 | 도육환 목사

 

하나님이 정하신 심판의 비극

 

영정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도육한 목사입니다.

여러분은 수년 전, 특히 한 해변에 시신으로 떠내려온 알란 쿠르디라는 세 살 배기 어린아이를 기억할 것입니다. 

시리아 내전을 피해 유럽행 난민 보트에 오른 쿠르디 가족이 탄 배가 난파되면서 겪은 참변이었습니다.

특히 언론사 한 기자에게 찍힌 이 사진 한 장으로 인해 세계는 난민들의 처참한 실정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유럽 전체의 난민 정책이 바뀌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지금도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수많은 아이들이 어른들의 인종 차별과 테러, 전쟁으로 희생당하고 있는 아픈 현실을 보게 됩니다. 

오늘 묵상할 본문에도 이 같은 끔찍한 참상이 기록되어 있어 우리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할 말씀은 예레미야애가 2장 11절에서 17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심판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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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어지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딸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기절함이로다
12 그들이 성읍 길거리에서 상한 자처럼 기절하여 그의 어머니들의 품에서 혼이 떠날 때에 어머니들에게 이르기를 곡식과 포도주가 어디 있느냐 하도다
13 딸 예루살렘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증거하며 무엇으로 네게 비유할까 처녀 딸 시온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비교하여 너를 위로할까 너의 파괴됨이 바다 같이 크니 누가 너를 고쳐 줄소냐
14 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으므로 네 죄악을 드러내어서 네가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지 못하였도다 그들이 거짓 경고와 미혹하게 할 것만 보았도다
15 모든 지나가는 자들이 다 너를 향하여 박수치며 딸 예루살렘을 향하여 비웃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온전한 영광이라, 모든 세상 사람들의 기쁨이라 일컫던 성이 이 성이냐 하며

16 네 모든 원수들은 너를 향하여 그들의 입을 벌리며 비웃고 이를 갈며 말하기를 우리가 그를 삼켰도다 우리가 바라던 날이 과연 이 날이라 우리가 얻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다 하도다
17 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을 행하시고 옛날에 명령하신 말씀을 다 이루셨음이여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무너뜨리사 원수가 너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게 하며 네 대적자들의 뿔로 높이 들리게 하셨도다


이방 군대에 짓밟혀 예루살렘 성이 파괴되고, 성전조차 수탈당한 아픈 현실을 보며, 선지자는 애끊는 심정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11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1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어지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딸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기절함이로다

선지자는 딸 예루살렘이 당한 처참한 환난을 직접 목격하며, 마음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다.

멈추지 않는 눈물로 인해 눈이 짓무를 정도가 되었고, 창자가 끊어질 듯, 간이 땅바닥에 쏟아질 듯한 고통을 갖습니다. 

거룩한 도성의 멸망 앞에 선지자는 애통하는 것 외에는 달리 어찌할 것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어른들의 죄로 인해 유다가 심판을 받게 되었을 때, 그들의 어린 자녀들과 젖먹이들까지 함께 고통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굶주린 채 실성한 것처럼 거리를 헤매며 음식을 찾다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죄와 심판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 끔찍한 폐허와 기아 속에 내던져져야 했던 겁니다.

 

선지자는 딸 예루살렘이 당한 이 처참한 상황에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합니다. 

내가 무엇으로 내게 비교하며 너를 위로할까?

다른 어떤 재앙과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입니다.

유다 전역의 파괴가 마치 바다와 같다고 합니다. 

그 누가 고쳐질 수도 없고, 회복시킬 수도 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선지자가 목격했던 이 처참한 상황은 지금도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1년을 훌쩍 넘긴 우크라이나 전쟁은 수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빼앗아 갔고, 아직 언제 그 끝을 볼 수 있을지 불투명합니다. 

폐허 속에 가족을 잃어버린 채 부르짖는 절규와 통곡을 보면 예루살렘의 심판과 오버랩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납치하려 고통당하는 북한 주민들과 지하교회, 성도들의 통곡에 기도가 들려오지 않습니까?

독재자들의 학정과 함께 심각한 기하와 질병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에 아이들의 소망이 이런 눈빛도 떠오릅니다.

어찌 먼 나라의 이야기만 있겠습니까?

존귀한 생명을 가지고 잉태되었지만 무기력하게 사라지는 이 땅에 수많은 태아들의 외침도 기억합니다. 

십수 년째 오이시디 국가들 가운데 자살률, 인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이웃들의 절망스러운 죽음도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저출산, 인구 절벽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 대한민국의 미래도 안타까울 뿐입니다. 

 

예레미아처럼 하나님 앞에 탄식하며 울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시대 아픔과 절망을 끌어안고 함께 울어줄 교회와 성도가 필요합니다. 

꿈을 잃어버리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을 위해 울어야 하고,

크리스천 3센트도 되지 않는 다음 세대를 위해 탄식해야 합니다.

어린 자녀들이 없어 교회 학교를 운영할 수 없는 45%의 한국 교회를 위해서 울어야 하고,

수많은 이단들의 거짓에 유린당하고, 삶을 저당 잡힌 너무 순진했던 성도들을 위해서 울어야 합니다.

이렇게 우려야 할 일이 너무나 많은 세상 한가운데, 혹 우리가 너무 쉽고, 편안하고, 안일한 일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됩니다. 

선지자 예레미아 뒤에서 마음 아파하시고 울고 계실 하나님을 기억합시다. 

장차 예루살렘에 닥칠 멸망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시던 우리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 시대에, 그리고 우리 한국 교회를 보면서 울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의 눈물이 있는 곳에 함께 울며 중보하고 섬기는 성도들이 많이 세워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다음 세대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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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이 이같이 징계받게 된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는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에 넘어가 버린 것이라 하겠습니다. 

1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14 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으므로 네 죄악을 드러내어서 네가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지 못하였도다 그들이 거짓 경고와 미혹하게 할 것만 보았도다

예레미아 선지자는 반복적으로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하고 있다고 경고해 왔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죄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이 예고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평강 하다, 문제없다고 외치고 있었던 겁니다. 

사람들의 귀에 듣기 좋은 말, 자신들의 인기에 부합되는 말을 하나님의 계시인 양 전파하고 다녔습니다. 

왕과 지도자들은 시대적 위기를 경고하던 예레미아를 핍박하고, 귀를 막고, 그 소리를 외면했던 겁니다.

 

애가를 지어 불러야 할 정도의 끔찍한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임한 것이 아닙니다. 

선지자를 통해 거듭된 경고와 호소가 있었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서려면 백성들이 가슴을 찢고 돌이켜야 했습니다.

이러한 선지자의 절절한 마음이 무위로 돌아가 버렸으니, 예레미아의 절망감은 더 컸을 겁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아에게 지난 이십삼 년 동안 전파했던 모든 말들을 두루마리에 기록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유다 백성에게 내리기로 작정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이 듣고, 혹시 저마다 자신의 악한 일에서 돌아선다면 나도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여 주겠다고 예레미아의 그 애끓는 심정으로 대언하게 하신 겁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두루마리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야김 왕은 하나님의 경고가 담긴 이 말씀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칼로 잘라 화로에 던져 넣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가볍게 여겼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 돌이켜 회개할 수 있는 기회조차 불태워버린 것입니다. 

어찌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더 슬픈 것은 예루살렘이 당한 이 재앙에 대해 이웃 국가들이 동정하고 아파하기보다는 손뼉 치며 비웃고 조롱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원수들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비웃고 이를 갈며 자신들의 승리를 자축하고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예루살렘의 아픔에 공감해주지 않는, 그래서 더 큰 아픔을 갖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을까요? 17절 말씀도 읽어보겠습니다. 

17 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을 행하시고 옛날에 명령하신 말씀을 다 이루셨음이여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무너뜨리사 원수가 너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게 하며 네 대적자들의 뿔로 높이 들리게 하셨도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미 옛적에 정하시고 명령하신 말씀이 재앙의 형태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고 불순종하고 우상숭배에 빠진 결과였다는 겁니다. 

그들의 힘은 그대로 거두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여러분 

오늘 우리 시대에도 이 같은 경고의 메시지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이 없어서, 표대가 없어서 방황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부담스러운 말씀은 듣지 않으려 하고 쉽고 편한 길을 찾아 눈앞의 욕망에 따라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에 이 재앙을 향한 경고의 목소리에 우리가 귀를 닫고 있는 건 아닐까요? 

먼저 깨달은 저와 여러분이 주의 몸인 교회가 먼저 예레미아를 통해 주셨던 심판의 메시지를 이어서 오늘 우리 시대에 증거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군가는 파수꾼이 되어야 하고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이 시대의 재앙을 막아서는 파수꾼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저와 여러분이 먼저 기도하고 기대하고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죄에서 돌이킬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내가 주의 깊게 경청할 말씀은 무엇인가요?

 

자비로우신 주님,
우리가 연약함 중에도 길이 참으시고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심판의 날을 늘 기억하고 
우리 개인도 공동체도 넓게 경성 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이루어가는 저희와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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