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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우신 하나님께 자복하며 탄원하는 성도(예레미야애가 1:18~22)(20230606)

2023.06.06.ㅣ생명의 삶 | 도육환 목사

 

의로우신 하나님께 자복하며 탄원하는 성도

 

할렐루야

온누리 교회 도육한 목사입니다. 

오늘도 말씀과 함께 주의 은혜 아래 걸어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혹 여러분 주변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거나 갑작스러운 불치병 진단이나 큰 사고로 인해서 고통스러워하는 분은 없습니까? 

더구나 이런 환난이 버거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할 만큼 낙심하는 분들에게 무슨 마땅한 위로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저 그 아픔과 좌절에 공감하면서 옆에 있어주고 조용히 기도하는 일 외에 우리가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가 많죠.

우리가 곁에 있다는 그 사실 때문에 그들이 또 위로와 힘을 얻고, 

성령님께서 내면의 힘과 용기를 주시기를 우리는 기대할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수치를 당한 여인 예루살렘도 스스로 그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답을 찾아가는 것을 봅니다. 

오늘 묵상할 본문은 예레미야애가 1장 18절에서 22절 말씀입니다.

함께 슬픈 여인 예루살렘 곁에 머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의로우신 하나님께 자복하며 탄원하는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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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그러나 내가 그의 명령을 거역하였도다 너희 모든 백성들아 내 말을 듣고 내 고통을 볼지어다 나의 처녀들과 나의 청년들이 사로잡혀 갔도다
19 내가 내 사랑하는 자들을 불렀으나 그들은 나를 속였으며 나의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그들의 목숨을 회복시킬 그들의 양식을 구하다가 성 가운데에서 기절하였도다
20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내가 환난을 당하여 나의 애를 다 태우고 나의 마음이 상하오니 나의 반역이 심히 큼이니이다 밖에서는 칼이 내 아들을 빼앗아 가고 집 안에서는 죽음 같은 것이 있나이다

21 그들이 내가 탄식하는 것을 들었으나 나를 위로하는 자가 없으며 나의 모든 원수들은 내가 재난 당하는 것을 듣고 주께서 이렇게 행하신 것을 기뻐하나이다 그러나 주께서 그 선포하신 날을 이르게 하셔서 그들이 나와 같이 되게 하소서
22 그들의 모든 악을 주 앞에 가지고 오게 하시고 나의 모든 죄악들로 말미암아 내게 행하신 것 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나의 탄식이 많고 나의 마음이 병들었나이다

 

예레미야애가는 하나님의 부재처럼 보이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해 그 백성들이 충분히 아파하고 원망해 보고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을 열어둡니다.

당연한 고통을 어물쩍 넘겨버리고 적당한 해피엔딩으로 빨리 마무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고통의 이유에 대해 충분히 묵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요.

그러다 보니 저와 여러분은 이 한 주간 내내 고통과 슬픔에 대해 긴 시간을 갖고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고통을 묵상하는 중에 우리 시대에 지구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부조리한 일들과 불의와 재난과 고통과 소외와
외로움과 두려움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들의 고통을 우리의 공감과 기도로 분담해 줄 것을 요청하십니다. 

하나님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해 인화지의 사진처럼 당신의 뜻을 서서히, 그러나 점점 또렷하게 드러내십니다. 

18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8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그러나 내가 그의 명령을 거역하였도다 너희 모든 백성들아 내 말을 듣고 내 고통을 볼지어다 나의 처녀들과 나의 청년들이 사로잡혀 갔도다

버림받은 여인 예루살렘은

자신에게 닥친 이 모든 재난은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의로우신 분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완전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실수가 없으시고, 신실하시고, 인자가 크신 분이십니다. 

단지 우리가 당하는 모든 환란은 우리가 그의 명령을 거역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딸 시온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겁니다.

여인 예루살렘은 자신을 신부로 부르신 하나님 한 분만 사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방에 의지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두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도와주기를 호소합니다. 

 

말하기를 '너희 모든 백성들아, 내 말을 듣고 내 고통을 볼지어다.'

처녀들과 청년들이 원수들에게 사로잡혀가고 제사장과 장로들이 필요한 양식을 구하다가 쓰러지는 이 절망적인 상황을 도와달라고 하나님이 아닌 열방을 향해 외쳤으나 그들 중 누구도 도와주러 오지 않았던 겁니다. 

애굽도, 의지하던 나라들도 다 헛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선지자는 다시 눈을 들어 참으로 능력과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20절을 보십시오. 

20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내가 환난을 당하여 나의 애를 다 태우고 나의 마음이 상하오니 나의 반역이 심히 큼이니이다 밖에서는 칼이 내 아들을 빼앗아 가고 집 안에서는 죽음 같은 것이 있나이다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내가 환난을 당하여 나의 애를 태우고 나의 마음이 상하오니 나의 반역이, 저의 잘못이, 저의 불순종이, 심이 큽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선지자는 유다 전체를 대표하여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의 반역 때문입니다. 가슴으로 멸망하는 예루살렘을 끌어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죄에 따른 심판의 날을 잊지 않기 위해 슬픈 노래를 지어 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통과 아픔도 휘발성이 대단히 높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가 고난당할 때는 너무나 힘들어 하면서도 정작 그 고통이 끝나버리면 우리는 너무나 빨리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심리적 방어 기제가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오래 두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또다시 죄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현대 이스라엘의 성지순례를 가면 야드바솀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있습니다. 

나치 치하에서 죽어간 수많은 유대인들을 기억하기 위해 세운 곳입니다. 

야드바솀(יד ושם)은 '이름을 기억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면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한 어둠 속에서 코스를 따라서 걷도록 둡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홀로코스트에서 희생당한 어린아이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불려집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인간이 얼마나 악할 수 있는지 숙연한 마음으로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의 조국, 근, 현대사회도 결코 잊지 못할 많은 아픈 이름들이 있죠. 

이데올로기의 차이로 인해서 동족이 총부리를 겨누었고, 서로 죽여야만 했던 슬픈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역사에 대한 어떤 관점이나 입장을 가지고 있든지 상관없이 

피차 희생당한 선량한 소시민들의 슬픈 이름들을 기억하고 불러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야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먼저 믿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의 죄악을 끌어안고 예레미아처럼 고백해야 합니다. 

나의 반역이 심히 큼이니다. 사랑하는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예레미야는 무엇 때문에 애를 태우고 마음이 상한다고 고백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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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통 중에 있는 여인 예루살렘은 눈을 돌려 그들이 당한 재앙과 수치를 조롱하는 이들에 대해 탄원합니다. 

22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22 그들의 모든 악을 주 앞에 가지고 오게 하시고 나의 모든 죄악들로 말미암아 내게 행하신 것 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나의 탄식이 많고 나의 마음이 병들었나이다

주변 국가들은 유다가 당한 이 재앙을 오히려 기뻐하고 조롱하기까지 합니다.

이것 때문에 처녀 시온은 더 마음이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성전이 파괴된 것만으로도 유다는 충분히 고통스럽고 아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원수들이 예루살렘이 재난 당하는 것을 두고 기뻐하면서 비아냥거리는 것을 보면 마음이 더 힘들고 절망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 예루살렘은 몸을 돌이켜 하나님께 항의하듯 요청합니다. 

'그들이 나와 같이 되게 하소서. 내게 행한 것 같이 그들에게도 하옵소서.'

21 그들이 내가 탄식하는 것을 들었으나 나를 위로하는 자가 없으며 나의 모든 원수들은 내가 재난 당하는 것을 듣고 주께서 이렇게 행하신 것을 기뻐하나이다 그러나 주께서 그 선포하신 날을 이르게 하셔서 그들이 나와 같이 되게 하소서

이 고백은 나도 당했으니 너희도 한번 당해보라고 하는 고약한 심보에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엄격한 도덕적인 잣대를 갖다 대고 심판을 명령하신 것처럼, 

이방 원수들에게도 동일하게 심판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는 요청인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의롭고 판단이 바른 분이십니다. 

그분께는 불의가 전혀 없고, 거짓도, 부족함도 없으십니다. 

그런 분위기에 유다와 이방에게 다른 잣대를 가지실 리가 없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선민을 훈련시키고 바르게 성장시키기 위해서 이방의 막대기와 몽둥이를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이 일로 쓰임 받은 막대기가 교만하거나 심판받은 백성들에 대해서 조롱거리로 삼는다면, 하나님은 그 막대기를 부러뜨리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아끼지 않고 징계하셔야 했던 하나님께서 선민의 원수들을 아끼실 리가 있겠습니까?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을 뿐이지,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맙니다. 

 

여인 예루살렘이 이방 원수들에게 심판을 요청하는 것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성품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악인이 득세하는 것과 원수들이 무탈한 것에 대해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 어느 누구도 우리가 정죄하거나 판단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아시고, 주님의 정확한 때에 주의 의를 드러내실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기다리시면 됩니다. 

혹 누군가가 당하는 고통에 대해서 원인을 찾으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그저 누구를 판단하고 해석할 자격이 없는 존재입니다. 

단지 아파하는 이들의 곁에서 공감해 주고, 함께 슬퍼해 주는 것만이 우리에게 맡겨진 일인 것 같습니다. 

 

전쟁과 지진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시리아의 아픔을, 

또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통곡하는 티르키의 이재민들의 아픔을 함께 공감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크고 작은 형태로 그들을 도와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웃과 열방을 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재난 당한 사람에 대해 성도는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져야 할까요?

 

자비로우신 주님 
지금도 자연재해와 전쟁으로 고통당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채 슬퍼하고 있는 이 땅에 많은 슬픈 여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하늘의 평안과 위로를 내려 주옵소서. 
그들의 눈물을 닦는 일에 저희와 교회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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