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10.ㅣ생명의 삶 | 도육환 목사
할렐루야
영종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도육한 목사입니다.
주말인 오늘, 이 큐티 방송을 보고 계신 여러분들은 지난 한 주간 믿음으로 승리하셨을 줄 믿습니다.
한 주간 내내 말씀과 동행하며 살아오셨다는 증거이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은 희귀병 중에 하나인 갱글리뉴로 파디(ganglineuropathy)라는 질병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아직까지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은 이 병은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답니다.
뼈가 부러지고 화상을 입어도 통증이 없기 때문에 제때 치료받지 못하거나 질병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요.
한센병에 걸린 분들의 감각이 사라지는 것과 비슷하다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복인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더욱 무서운 질병은 죄에 대한 불감증이 아닐까요?
내 영혼이 병들어가고, 죄로 인해서 죽어가고 있는데도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치명적인 영적 질병이라 하겠습니다.
선지자는 예루살렘이 당하고 있는 고난을 고스란히 자신의 고통으로 받으면서, 주 앞에서 함께 통곡의 기도를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현실을 끌어안고 있는 영적 지도자가 있다는 사실이 유다에게는 소망의 여명을 비춰주는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할 본문은 예레미야애가 3장 1절에서 18절 말씀입니다.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고난당하는 민족과 하나 되어 기도하십시오
1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말미암아 고난 당한 자는 나로다 2 나를 이끌어 어둠 안에서 걸어가게 하시고 빛 안에서 걸어가지 못하게 하셨으며 3 종일토록 손을 들어 자주자주 나를 치시는도다 4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들을 꺾으셨고 5 고통과 수고를 쌓아 나를 에우셨으며 6 나를 어둠 속에 살게 하시기를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하셨도다 7 나를 둘러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내 사슬을 무겁게 하셨으며 8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 9 다듬은 돌을 쌓아 내 길들을 막으사 내 길들을 굽게 하셨도다 10 그는 내게 대하여 엎드려 기다리는 곰과 은밀한 곳에 있는 사자 같으사 11 나의 길들로 치우치게 하시며 내 몸을 찢으시며 나를 적막하게 하셨도다 12 활을 당겨 나를 화살의 과녁으로 삼으심이여 13 화살통의 화살들로 내 허리를 맞추셨도다 14 나는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거리 곧 종일토록 그들의 노랫거리가 되었도다 15 나를 쓴 것들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셨으며 16 조약돌로 내 이들을 꺾으시고 재로 나를 덮으셨도다 17 주께서 내 심령이 평강에서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내어버렸음이여 18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
예레미아 선지자는 고통에 예민한 사람이었을 겁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성전이 파괴되었을 때, 마치 자신이 예루살렘 그 자체인 것처럼, 그 모든 고통을 고스란히 껴안은 채 탄식하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3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말미암아 고난 당한 자는 나로다
2 나를 이끌어 어둠 안에서 걸어가게 하시고 빛 안에서 걸어가지 못하게 하셨으며
3 종일토록 손을 들어 자주자주 나를 치시는도다
다섯 편의 애가 중에 세 번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세 번째 애가는 이전과는 달리 선지자가 예루살렘을 대신하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물론 예레미아도 예루살렘성에 속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예루살렘의 모든 재앙을 자신의 것인 양 온전히 끌어안는 것은 특별한 마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것이 선지자의 마음이요, 중보자의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애국자가 그리스도인은 아닐지라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애국자가 되는 것 같습니다.
공동체의 아픔, 그리고 이 땅의 문제 그것을 고스란히 끌어안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이지요.
그런데 선지자는 예루살렘이 당한 이 모든 재앙이 하나님의 분노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자신이 그 매를 맞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분노의 매라고 표현했지만 유다를 때린 그 막대기는 그동안 양들을 돌보시고 인도해 주신 사랑의 지팡이였습니다.
분노의 매 역시 유다가 범죄로부터 돌이켜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돌이키기 위한 사랑의 매였던 겁니다.
그 때문에 선지자는 이 징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 매로 인해 얼마나 큰 고초를 겪고 있는지 탄식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를 통해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지 간접적으로 경고해주고 있는 겁니다.
매를 맞은 예루살렘은 어둠 속을 걷고 있습니다.
한두 번 맞은 것으로 그치지 않고 종일 고통을 당합니다.
살도 가죽도 뼈도 당하고 꺾였습니다.
고통과 수고가 덮쳤고 오래전에 죽은 자 같이 눌려 있습니다.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갇혔고 무거운 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부르짖어 도움을 구해보지만 기도조차 허공을 메아리칠 뿐입니다.
모든 길이 막혔고 어디에서도 답을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죄의 결과라면 죄 짓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거저 받은 은혜,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는 결코 값싼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은채 거저 받은 구원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그 모든 죗값을 담당하셨습니다.
내가 지불하지 않았다고 해서 공짜로 여기면 안 됩니다.
날 사랑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지불하신 이 십자가의 고난을 내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쉽게 죄 짓고 쉽게 회개하려고 하는 값싼 구원이 되지 않도록, 죄의 결과를 마음에 잘 새기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결코 죄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깨어 있어야 하고 단호해야 합니다.
죄를 미워해야 하고, 대적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선지자는 예루살렘을 향했던 분노의 매로 당하는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 몇 개의 은유적인 표현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헤치려고 기다리는 곰과 은밀하게 숨은 사자와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나운 짐승들 때문에 가던 길에서 치우칠 뿐만 아니라 몸도 찢겨 나가기도 했답니다.
마치 화살이 허리에 박힌 것 같이 고통의 정수리가 상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재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다를 과녁 삼아 화살을 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 시인의 언어에는 원망의 말이나 불평이 없습니다.
이 죄앙이 자신의 죄로 인한 결과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분노의 매를 든 것은 죄에서 벗어나 순종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마음 의도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5절에서 18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5 나를 쓴 것들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셨으며
16 조약돌로 내 이들을 꺾으시고 재로 나를 덮으셨도다
17 주께서 내 심령이 평강에서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내어버렸음이여
18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예루살렘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큰 재앙으로 쓴 것에 배불렀다 합니다.
이발도 꺾였고, 죄를 뒤집어 썼습니다.
평강은 저 멀리 달아나 버리게 하시고 소망도 끊어져 버린 것 같습니다.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도다. 하였도다.
이보다 더 큰 징계가 어디 있겠습니까?
모든 소망을 잃어버리는 순간 그곳은 지옥처럼 되어 버렸을 것입니다.
바로 예루살렘이 당한 상황이 어떤 소망도 갖지 못할 정도로 파괴되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친 백성 예루살렘을 징계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죄의 결과가 얼마나 두려운지를 알려주고 죄를 멀리할 수 있는 예방 효과를 주시는 것입니다.
최근에 다시 퍼져가는 구제역으로 인해서 많은 축산 농가들의 시름이 깊어진다고 보도합니다.
구제역이나 아프리카 돼지열병, 조류독감 같은 질병이 축산 농가에서 발견되면 그 농장에 있는 모든 동물들은 폐사시킵니다.
불과 몇 마리만 감염되었는데 왜 모든 가축과 인근 농가까지 집단 폐사시켜 버리는 것일까요?
그것은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소수 감염된 동물들이 발견될 때 빠른 조치로 질병의 확산의 원천을 차단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경고하시고 진노의 막대기를 드시는데도 이유가 비슷합니다.
우리가 죄를 경계하기를 원하십니다.
죄의 확산을 막고 죄를 가까이 하지 않게 하기 위한 예방조치와 같습니다.
특히 개인을 위한 기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공동체를 대신하는 중보의 기도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공동체의 재앙을 막아서는 은혜의 보호막을 둘러싸는 것이 중보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중보 기도가 나라를 살리고 한국교회를 살립니다.
존 낙스(John Knox)의 유명한 기도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스코틀랜드를 내게 주옵소서 아니면 죽음을 주옵소서.
그런 기도가 있었기에 피의 메리라 불리는 메리 여왕조차 기도의 사람 '낙스'를 두려워하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듣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고난당하는 민족과 도시들을 끌어안고 중보의 기도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많이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재앙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끝까지 소망을 붙들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존귀하신 하나님
우리를 사생자와 같이 버리지 않으시고
때로 고난과 시련을 통해 교훈하시고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성의 무너진 데를 막아서는 중보의 일꾼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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