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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와 패망으로 영광을 잃어버린 도성(예레미야애가 1:1~11)(20230604)

2023.06.04.ㅣ생명의 삶 | 도육환 목사

 

징계와 패망으로 영광을 잃어버린 도성

 

징계와 패망으로 영광을 잃어버린 도성

 

할렐루야.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도육한 목사입니다.

최근 창립하고 봉헌한 영종도 새 예배당에서 여러분과 함께 묵상을 나누게 되어 기쁩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위해서 구별하신 주일입니다. 

오늘 드려지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모든 예배자들에게는 은혜와 성령으로 충만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예레미야애가를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구약 신학자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예레미야애가를 주석하면서 이와 같은 부제를 붙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정직한 탄식'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유다의 멸망을 목도해야 했던 선지자 예레미야가 하나님 앞에 가감 없이 토해내는 슬픔의 노래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예레미야 선지자의 슬픔에 공감하며 본문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오늘 묵상할 본문은 예레미야애가 1장 1절에서부터 11절 말씀입니다.

 

 

징계와 패망으로 영광을 잃어버린 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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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
2 밤에는 슬피 우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들 중에 그에게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 원수들이 되었도다
3 유다는 환난과 많은 고난 가운데에 사로잡혀 갔도다 그가 열국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쉴 곳을 얻지 못함이여 그를 핍박하는 모든 자들이 궁지에서 그를 뒤따라 잡았도다
4 시온의 도로들이 슬퍼함이여 절기를 지키려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들이 적막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시온도 곤고를 받았도다
5 그의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이 형통함은 그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곤고하게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

6 딸 시온의 모든 영광이 떠나감이여 그의 지도자들은 꼴을 찾지 못한 사슴들처럼 뒤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달아났도다
7 예루살렘이 환난과 유리하는 고통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기억하였음이여 그의 백성이 대적의 손에 넘어졌으나 그를 돕는 자가 없었고 대적들은 그의 멸망을 비웃는도다
8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함으로 조소거리가 되었으니 전에 그에게 영광을 돌리던 모든 사람이 그의 벗었음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그는 탄식하며 물러가는도다
9 그의 더러운 것이 그의 옷깃에 묻어 있으나 그의 나중을 생각하지 아니함이여 그러므로 놀랍도록 낮아져도 그를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여 원수가 스스로 큰 체하오니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
10 대적이 손을 펴서 그의 모든 보물들을 빼앗았나이다 주께서 이미 이방인들을 막아 주의 성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명령하신 그 성소에 그들이 들어간 것을 예루살렘이 보았나이다

11 그 모든 백성이 생명을 이으려고 보물로 먹을 것들을 바꾸었더니 지금도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나이다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돌보시옵소서

 

오늘부터 묵상을 시작한 예레미야 애가는 선지자의 슬픔과 애통하는 마음을 다섯 편의 슬픈 노래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애가는 감정에 우러나오는 대로 탄식을 쏟아낸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을 순서대로 배열하여서, 각 연의 첫 글자로 사용한, '아크로스틱'이라 부르는 문학적 방식으로 노래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애가를 기록한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쉽게 암송하고, 기억할 수 있게 의도적으로 편집했다는 겁니다.

주전 587년, 바벨론 군대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도시가 불탄, 이 끔찍한 재앙의 날을 생생하게 목격한 선지자의 감정을 후세에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전쟁 기념비는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해서 세우지 않습니까? 

그 기념비를 통해서 그날의 고통, 그리고 승리를 기억하게 하기 위한 역할을 하지요. 

애가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다가 겪은 선조들의 끔찍한 결과를 기억하고, 반면교사로 삼아 

믿음을 가지게 하기 위한 선지자의 의도로 기록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실제로 애가는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의 주제로도 매력적이지 않고, 성경 공부나 묵상조차도 쉽지 않은 말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매우 낯설고 불편한 말씀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어쩌면 하나님께서 애가의 탄식을 통해 우리 시대의 문제를 읽어내고,

그리고 이 땅에 고통당하는 이들의 아픔을 공감하도록 안내해 주는 지침을 우리에게 줄 것이라 기대하게 만듭니다. 

 

이제 함께 본문 묵상을 시작해 봅시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날씨로 표현한다면 그야말로 대낮에도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먹구름이 낀 어둡고 캄캄한 날, 천둥과 번개가 내리치는 날, 그렇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파괴된 예루살렘을 보면서 깊은 탄식으로 아파하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마음에 공감하면서 함께 1절 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
2 밤에는 슬피 우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들 중에 그에게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 원수들이 되었도다

예레미야의 눈앞에 펼쳐진 예루살렘의 상황이 어떨지 상상이 가십니까?

 

예루살렘은 이전에 예배의 중심지였고, 절기 때마다 몰려든 수많은 인파로 생동감이 넘치던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참혹하게 황폐화되어 거리에는 인적마저 끊겼고, 성문은 파괴되어 적막한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성전은 파괴되었고, 절기를 지키러 올라오는 사람들조차 없으니 제사장들도 탄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지자는 처참하게 파괴된 예루살렘의 모습을 여인의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남편과 자식을 잃은 과부에 비유했습니다. 

좋았던 옛 시절 그리워하며, 지금의 환난을 한탄하는 슬픈 여인과 같다고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전에 많은 사람들의 찬사와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공주 예루살렘이 이제는 강제 노동에 시달리는 노예와 같이 착취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그들과 동맹을 맺었던 모압, 암몬, 애굽까지 모든 친구들은 등을 돌렸고, 그들의 슬픔에 위로해 줄 친구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사랑하고 보호해주던 남편도 없고, 친구들에게도 버림받은 채 홀로 처절한 외로움에, 슬픔에 내 던져진 여인 그것이 바로 예루살렘의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동족 유다는 세 차례에 걸쳐 바벨론 군대에 의해서 유린당하고, 환난과 고난 중에 포로로 끌려가 이방 땅에 정체 없는 나그네로 떠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소망도 기대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예루살렘이 처음부터 이렇게 비참했던 것입니까? 아닙니다. 

평화로웠고 영화로웠으며, 많은 사람들의 찬사와 함께 좋은 친구들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상황이 뒤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당한 상황이 더 끔찍하고 고통스럽게 여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선지자는 이렇게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보면서 밤마다 슬피 애곡 합니다. 

마르지 않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고 있고, 예루살렘의 절망적인 상황을 탄식하며 끌어안고 있습니다. 

 

저는 애가를 묵상하면서 우크라이나를 기억하게 됩니다.

이전에 우크라이나 도시들은 오랜 역사를 간직한 아름다운 도시들이었죠. 

그러나 지금은 전쟁으로 파괴되었고, 준수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 전투에서 피를 흘려야만 했습니다. 

500만 명이 넘는 이재민들은 나라를 떠났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들의 생명을 담보할 수 없는 채 두려움과 염려로 수많은 밤을 지새우고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불렀던 이 슬픔의 노래를 오늘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아픔을 공감하며 기도의 손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전과는 달리 언론들도 앞다퉈 보도하던 그 참상의 뉴스가 점점 뜸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땅에 전투는 계속되고 있고, 비참한 상태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찌 우크라이나 군대 뿐이겠습니까? 

러시아의 젊은이들 역시 원치 않는 전쟁에 동원되어 죽거나 부상당하고 있습니다. 

 

열망의 아픔과 고통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조금만 눈을 더 크게 뜨고 보면 우리 이웃들 중에도 큰 상실감과 아픔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별한 이들의 아픔, 그 절망감과 외로움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불치병에 걸려 고통 당할 때 가슴 졸이며 눈물짓는 부모의 마음도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세상에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말씀하십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 아픔을 눈물로 부둥켜안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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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가 된 예루살렘과는 달리 대적들의 위세는 높아졌고, 원수들 앞에 형통함만 있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유다의 어린 자녀들은 포로로 끌려가고, 백성들은 돌보아야 할 지도자를 잃어버린 채 지도자들조차 다 도망가버렸습니다. 

타락한 예루살렘은 옷을 벗은 여인처럼 수치와 조롱조차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예배하던 성소는 약탈 당하고, 백성들은 가난과 궁핍에 내동댕이쳐 비천함에 빠졌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을까요? 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5 그의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이 형통함은 그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곤고하게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

유다가 대적들에게 짓밟히고 원수들이 그들을 압제하게 된 것은 원수들, 대적들의 세력이 더 강해져서가 아닙니다.

유다가 불순하고 죄에 빠졌기 때문에 임한 심판입니다. 

하나님이 유다를 버린 것이 아니라, 유다가 하나님을 떠나버렸기 때문에 이 모든 환란과 재앙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이미 율법에 경고된 것이었고, 선지자를 통해 아직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부터 수없이 이런 결과가 올 것이라고 경고한 바가 있었습니다. 신명기 28장 말씀 일부분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신명기 28
58 네가 만일 이 책에 기록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라 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
59 여호와께서 네 재앙과 네 자손의 재앙을 극렬하게 하시리니 그 재앙이 크고 오래고 그 질병이 중하고 오랠 것이라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직 약속의 땅에 정착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장차 임할 수 있을 만한 일들에 대해서 미리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차 얻게 될 땅은 특별한 은혜와 복을 누리는 땅이 될 것인데, 

그 땅에서 여호와를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해야 이 복이 계속 이어지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만일 하나님의 율법을 떠나면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선지자가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권고하게 하셨음이라고 고백한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11절에 탄식 이 짧은 기도가 절실한 때인 것 같습니다. 

'나는 비쳐 나오니, 여호와여, 나를 돌보시옵소서. '

11 그 모든 백성이 생명을 이으려고 보물로 먹을 것들을 바꾸었더니 지금도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나이다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돌보시옵소서

'나는 비쳐 나오니, 여호와여, 나를 돌보시옵소서.'

주의 은혜 외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물고기가 물 안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어야만 온전한 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한 여러분, 어느 날 갑자기 임하는 심판은 없습니다. 

미리 예언되었고, 수차례 경고를 통해 심판의 날을 준비하게 하십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이 놓치고 있는 경고의 나팔은 없는지요? 

좀 더 귀를 기울이며 깨어 있어서, 시대와 진조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루살렘이 수치를 당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역사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 
이 땅에 수많은 고통당하는 이들을 기억하게 하시고, 
저희도 이 시대를 분별함으로 늘 경성하여 깨어 있는 자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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