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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관용 사이에서 성도가 취할 바른 선택(사무엘하 14:1~11)(20230504)

2023.05.04.ㅣ생명의 삶 | 박종길 목사

 

정의와 관용 사이에서 성도가 취할 바른 선택

 

안녕하세요.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박종길 목사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많은 지식 또 정보도 필요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지혜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혜는 어떤 책을 읽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 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그 지혜를 얻을 수 있고 

또 지혜로운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 통해 얻을 수 있고 

또 우리 야고보서 말씀처럼 후희 주시고 꾸짖지 않는 하나님 앞에 지혜를 간구하고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지혜를 통해서 우리의 삶이 풍요롭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사무엘하 14장 1절에서 11절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정의와 관용 사이에서 성도가 취할 바른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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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향하는 줄 알고
2 드고아에 사람을 보내 거기서 지혜로운 여인 하나를 데려다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상주가 된 것처럼 상복을 입고 기름을 바르지 말고 죽은 사람을 위하여 오래 슬퍼하는 여인 같이 하고
3 왕께 들어가서 그에게 이러이러하게 말하라고 요압이 그의 입에 할 말을 넣어 주니라
4 드고아 여인이 왕께 아뢸 때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르되 왕이여 도우소서 하니
5 왕이 그에게 이르되 무슨 일이냐 하니라 대답하되 나는 진정으로 과부니이다 남편은 죽고

6 이 여종에게 아들 둘이 있더니 그들이 들에서 싸우나 그들을 말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므로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쳐죽인지라
7 온 족속이 일어나서 당신의 여종 나를 핍박하여 말하기를 그의 동생을 쳐죽인 자를 내놓으라 우리가 그의 동생 죽인 죄를 갚아 그를 죽여 상속자 될 것까지 끊겠노라 하오니 그러한즉 그들이 내게 남아 있는 숯불을 꺼서 내 남편의 이름과 씨를 세상에 남겨두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
8 왕이 여인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가라 내가 너를 위하여 명령을 내리리라 하는지라
9 드고아 여인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이여 그 죄는 나와 내 아버지의 집으로 돌릴 것이니 왕과 왕위는 허물이 없으리이다
10 왕이 이르되 누구든지 네게 말하는 자를 내게로 데려오라 그가 다시는 너를 건드리지도 못하리라 하니라

11 여인이 이르되 청하건대 왕은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사 원수 갚는 자가 더 죽이지 못하게 하옵소서 내 아들을 죽일까 두렵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다윗은 압살론이 그의 형 압론을 죽이고 도망간 그 사실이 참 너무 어렵고 힘들고 그렇지 않겠습니까?

아버지로서 너무나 마음이 힘들고 또 화가 많이 납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이렇게 많이 지났음에도 압살론을 보지 못하는 그 마음의 슬픔이 또 그리움이 또 이렇게 많아지게 되고

그렇지만 또 그가 왕으로서 이렇게 쉽게 압살론에게 또 손을 내밀 수 없는 왕으로서 지켜야 될 그런 공의, 정의 그런 어떤 어려움에 있는 것을 보고 요압은 아주 지혜를 이렇게 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3절인데요.

3 왕께 들어가서 그에게 이러이러하게 말하라고 요압이 그의 입에 할 말을 넣어 주니라

요압이 이렇게 왕의 마음이 압살론에게 향해 있는 것을 보고는 그가 드고아 드고아는 베들레의 자그마한 부분인데요. 
다윗이 드고아에서 태어났고 또 요합도 드고아 출신입니다. 

요압은 다윗의 조카예요. 

그 다윗의 여동생 수르야의 아들이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족보로 본다면 조카인데 그런데 요압은 굉장히 싸움을 잘하는 장군입니다. 

힘도 세고 또 나름대로 지략도 있고 그런데 어떤 요압의 성격이라고 그럴까요?  
그 모습을 보면 제가 자주 그렇게 비유하는데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 같은 그런 인물입니다. 

굉장히 좀 막무가내적인 것도 있고 생각보다는 이 손이 먼저 나가고 감정적이고 충동적이고 

그리고 또 힘도 센 

어떻게 보면 좀 약간 좀 무서울 수 있는 그러면서도 무지막지한 어떤 그런 이미지가 이 요압에게 있는데 

이 요압이 지혜를 내서 드고아에 가서 지혜로운 여인에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왕에게 가서 얘기하라라고 하는 그런 지혜를 넣어주는 그런 장면이 3절의 이야기인데요. 

어떻게 보면 요압이 갖고 있는 그 지혜나 또 이 드고아 여인의 지혜를 통해서

우리의 삶에 참 지혜가 필요하다는 거를 우리가 종종 느낄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그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가, 젊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그런 열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떤 문제를 풀기도 하고요.

 

아주 오래됐지만 제가 미국 얼바인 온누리 교회에 가서 좀 어려운 문제 성도님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는데

그 갈등을 해결해야만 됐었는데

우리 근처에 존경하는 목사님 찾아가서 목사님이 이러이러한 상황인데 어떻게 하면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렇게 좀 목회적인 어떤 자문을 구했을 때

그 목사님께서 그분들과 식사를 하라고 밥을 먹으라고 얘기해 줬는데

그래서 이제 제가 이렇게 갈등 가운데 있는 그분들 하고 따로따로 이제 식사를 했어요.

그런데 식사하면서 그 사건에 대해서 그 일에 대해서 얘기도 안 하고 밥만 먹었는데도 

아무튼 그분들이 알아서 화해도 하시고 풀어지는 걸 보면서 

이 어른들이 갖고 있는 또 지혜로운 분이 주시는 그런 지혜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혜를 사모하시고 또 그 지혜를 가진 분과 함께하시고

더불어서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 기도해서 

그 지혜로운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요압이 드고아의 지혜로운 여인을 부른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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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압의 지시를 받은 드고아의 지혜로운 여인은 다윗 앞에 나가서

아주 그의 처지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다윗 왕의 자비와 은혜를 이렇게 유도해 냅니다.

 

다윗은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참 어려운 그 아들을 잃게 된 이 여인에 대해서

걱정하지 마라 내가 지켜주겠다. 걱정하지 마라 사람들이 그 아들을 해하지 않게 하겠다고 이제 얘기를 합니다. 

그렇지만 여인은 그냥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그냥 이렇게 뒤로 가는 것이 아니라 

더 구체적으로 더 분명하게 그래서 다윗이 결국 맹세를 할 정도까지 그렇게 요구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11절인데요. 

11 여인이 이르되 청하건대 왕은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사 원수 갚는 자가 더 죽이지 못하게 하옵소서 내 아들을 죽일까 두렵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결국 이 여인은 다윗이 이 여인의 아들을 지켜주겠다고 하나님께 맹세할 때까지

계속 다윗에게 요구하고 또 부탁하고 그러면서 다윗의 맹세를 얻어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이 여인이 진짜 그런 일이 자기 아들에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요압이 준 지혜죠.

결국 이 압살론을 용서해 달라는 그런 내용을 얻기 위해서 이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고 또 그 이야기 속에서 다윗은 이 여인을 불쌍히 여겨서 용서를 또 이렇게 할 수 있도록 이렇게 그 마음을 움직이는 그런 과정입니다. 

 

제가 이 모습을 보면서 

이 이야기에 힘이 있구나라는 것도 좀 느꼈고요.

나단도 다윗의 죄를 정죄할 때 당신이 죄를 졌습니다. 이렇게 얘기하지 않고 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습니까?

이 여인도 바로 그냥 압살론을 용서해 주세요. 

이렇게 말하지 않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이야기에 참 힘이 있구나 그것도 알게 되고 

또 한편 이렇게 바로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 마음이 열어질 수 있도록 또는 이렇게 시각을 바꿔서 볼 수 있도록 

이렇게 하는 그런 지혜 그 지혜도 참 귀한 것 같고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사건 속에 이 이야기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긍휼 그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다윗이 왕으로서 백성들이 지은 잘못을 용서해 주고 또 품어주고 그런 것처럼 하나님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품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나에게 잘못을 한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을 우리가 용서해 주고 은혜를 베푸는 것 

그것이 또 필요할 것이고요.

또 내가 누군가에게 잘못을 했다면 그 잘못을 용서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가 용서받는 것도 중요하고 

또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도 중요한 용서에 대한 귀한 말씀이었다고 묵상했습니다. 

성도 여러분에게도 그런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삶 속에 우리가 잘못한 일이 있다면 용서받게 하여 주시고 
또 누군가를 용서해야 된다면 용서할 수 있는 마음과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 하루도 우리의 삶 가운데 함께하여 주시고 
우리의 자녀들과 또 한우들과 해외 한인들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지켜주시고
또 우리의 직장과 우리의 일터와 우리의 기업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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