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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를 사지 않도록 결백을 증명할 때(사무엘하 3:22-39)(20230416)

2023.04.16. | 생명의 삶 | 김주환 목사

 

오해를 사지 않도록 결백을 증명할 때

 

할렐루야

허브 교회를 섬기는 김주환 목사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날이죠. 

우리의 모든 걱정 근심과 슬픔을 다 내려놓고 주님 앞에 나아가 마음껏 예배하고 그분을 즐거워하는 날입니다.

오늘도 예배 가운데 또 거룩한 이 하루 동안 내내 하나님의 귀한 음성 하나님의 임재를 마음껏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앞장서서 반대했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하나님 편에 서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편에 서서 늘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자랑했죠.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또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을 끊임없이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서 끊임없이 어려움과 고난을 겪으셔야 했던 것이죠. 

예수님의 어려움은 이방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 섰던 사람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종교 지도자들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보게 될 본문은 메시아의 시조였던 다윗이 겪은 비슷한 고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그 어려움을 극복했을까요?

우리 오늘 함께 사무엘하 3장 22절에서 39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오해를 사지 않도록 결백을 증명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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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다윗의 신복들과 요압이 적군을 치고 크게 노략한 물건을 가지고 돌아오니 아브넬은 이미 보냄을 받아 평안히 갔고 다윗과 함께 헤브론에 있지 아니한 때라
23 요압과 그 함께한 모든 군사가 돌아오매 혹이 요압에게 고하여 가로되 넬의 아들 아브넬이 왕에게 왔더니 왕이 보내매 저가 평안히 갔나이다
24 요압이 왕에게 나아가 가로되 어찌 하심이니이까 아브넬이 왕에게 나아왔거늘 어찌하여 저를 보내어 잘 가게 하셨나이까
25 왕도 아시려니와 넬의 아들 아브넬의 온 것은 왕을 속임이라 왕의 출입하는 것을 알고 모든 하시는 것을 알려 함이니이다 하고

26 이에 다윗에게서 나와서 사자들을 보내어 아브넬을 쫓아가게 하였더니 시라 우물 가에서 저를 데리고 돌아왔으나 다윗은 알지 못하였더라
27 아브넬이 헤브론으로 돌아 오매 요압이 더불어 종용히 말하려는 듯이 저를 데리고 성문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배를 찔러 죽이니 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를 인함이더라
28 그 후에 다윗이 듣고 이르되 넬의 아들 아브넬의 피에 대하여 나와 내 나라는 여호와 앞에 영원히 무죄하니
29 그 죄가 요압의 머리와 그 아비의 온 집으로 돌아갈찌어다 또 요압의 집에서 백탁병자나 문둥병자나 지팡이를 의지하는 자나 칼에 죽는 자나 양식이 핍절한 자가 끊어지지 아니할찌로다 하니라
30 요압과 그 동생 아비새가 아브넬을 죽인 것은 저가 기브온 전쟁에서 자기 동생 아사헬을 죽인 까닭이었더라

31 다윗이 요압과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띠고 아브넬 앞에서 애통하라 하니라 다윗왕이 상여를 따라 가서
32 아브넬을 헤브론에 장사하고 아브넬의 무덤에서 소리를 높여 울고 백성도 다 우니라
33 왕이 아브넬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가로되 아브넬의 죽음이 어찌하여 미련한 자의 죽음 같은고
34 네 손이 결박되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착고에 채이지 아니하였거늘 불의한 자식의 앞에 엎드러짐 같이 네가 엎드러졌도다 하매 온 백성이 다시 그를 슬퍼하여 우니라
35 석양에 뭇 백성이 나아와 다윗에게 음식을 권하니 다윗이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해 지기 전에 떡이나 다른 것을 맛보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하매

36 온 백성이 보고 기뻐하며 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무리가 다 기뻐하므로
37 이 날에야 온 백성과 온 이스라엘이 넬의 아들 아브넬을 죽인 것이 왕의 한바가 아닌줄을 아니라
38 왕이 그 신복에게 이르되 오늘 이스라엘의 방백이요 또는 대인이 죽은 것을 알지 못하느냐
39 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날 약하여서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대로 갚으실찌로다 하니라

 

아브넬이 다윗과 평화협정을 맺고 기분 좋게 돌아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요압은 분노하게 되죠. 

이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아브넬은 자신의 동생 아사엘을 죽인 원수였기 때문이죠.

그는 원수이기 때문에 결코 좋은 의도를 가질 수 없는 사람으로 생각이 됐습니다. 

다윗과 평화 조약을 맺은 것도 결국 권력의 자리를 노리는 속임수일 뿐이라고 요합은 생각했던 거죠. 

요압은 뛰어난 용장이었지만 흑백 논리밖에 몰랐고, 그의 삶에는 어떤 빛깔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요압에게 아부넬은 그저 없애야 할 적일 뿐이었던 거예요. 

이런 적이 영향력 있는 자리에 오르는 것을 요합은 절대 지켜볼 수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하기로 합니다. 적을 처리하는 거예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던 것이죠. 

죽이는 것입니다. 26절과 27절 말씀을 보게 되면 그래서 요합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합니다.

26 이에 다윗에게서 나와서 사자들을 보내어 아브넬을 쫓아가게 하였더니 시라 우물 가에서 저를 데리고 돌아왔으나 다윗은 알지 못하였더라
27 아브넬이 헤브론으로 돌아 오매 요압이 더불어 종용히 말하려는 듯이 저를 데리고 성문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배를 찔러 죽이니 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를 인함이더라

사절단을 다윗 모르게 보내어서 아브넬로 하여금 다시 다윗에게로 돌아오도록 속입니다.

아브넬은 눈치 채지 못한 채 돌아왔는데 요압은 그를 인적이 드문 곳으로 데려가 대화를 하고자 하는 척하면서 칼로 찔러 죽입니다. 

아브넬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배신을 선택하므로 결국 죽음을 맞게 되죠. 

그리고 요압은 동생을 위한 복수에 성공하게 됩니다.

 

28절에서부터 30절을 보게 되면 다윗은 이 요압의 복수에 대해 알게 되자 극도로 격분하게 됩니다. 

요압이 한 것은 복수가 아니라 살인이었기 때문이에요. 그것도 도피성으로 지정된 해부론에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거예요.

그는 아브넬의 피가 요압과 그의 가족들에게 있음을 선언함으로써 요압과 거리를 둡니다.

다윗이 왜 이토록 분괴했을까요?

왜냐하면 동족 간에 피흘림 없이 평화를 이루려는 다윗의 노력을 망쳐버렸기 때문입니다.

 

요압이 아브넬을 죽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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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넬은 죽임 당한 당일에 장사됩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이제 민족적인 위기에 직면한 거죠. 

통합의 꿈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어요.

나아가 전쟁 발발 직전까지 간 해브론은 언제든 무자비한 학살의 현장으로 변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아부넬의 죽음 앞에서 취한 다반윗의 반응은 너무나 중요했습니다. 31절을 보면 

31 다윗이 요압과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띠고 아브넬 앞에서 애통하라 하니라 다윗왕이 상여를 따라 가서
32 아브넬을 헤브론에 장사하고 아브넬의 무덤에서 소리를 높여 울고 백성도 다 우니라

다윗은 진정성 있는 슬픔과 분노를 보임으로써 민족이 갈라지는 위기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그는 아브넬의 장례 행렬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관대 바로 뒤에 서 있었고, 요압을 포함한 모든 유다의 백성들로 하여금 옷을 찢고 배 옷을 입고 참여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다윗의 진심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과 함께 울게 되었던 거예요.

 

35절부터의 내용을 보면 많은 사람들은 다윗이 원수의 죽음 앞에서 기뻐할 거라고 예상을 했는데,

그런데 그 예상을 다 깨버린 것이죠. 

진심으로 슬퍼하며 날이 저물도록 금식을 하자 온 이스라엘이 이런 다윗의 행보를 보면서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의 신하들 뿐만 아니라 남은 열한 지파도 다윗이 아부넬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것이에요.

이스라엘의 가슴 아픈 분단과 내전 속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으로 민족 통합에 성공하게 됩니다. 

다윗의 진심은 백성의 진심이 된 것입니다.

다윗의 행동은 백성들의 감정까지 움직였고 그들의 가치관을 형성했습니다. 

다윗에게 큰 방해와 장애물이 분명히 있었지만 그것도 다윗으로 하여금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1등 공신으로 섬겼던 부하들이었지만 하나님이 주신 진정한 리더십을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를 이루는 데 성공합니다. 

 

우리가 주목할 인물들은 수르야의 아들들이었던 요압과 아비새예요. 

그들은 다윗의 조카로 분명 다윗의 편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가시 같은 존재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냐하면 그들은 다윗을 위해 싸우면서도 다윗이 일하는 방식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다윗과 가까웠습니다. 

누구보다 다윗을 잘 알았어요.

하지만 다윗의 하나님에게는 관심이 없었던 거예요. 

여기에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옳은 편에 서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옳은 마음을 갖고 옳은 방법으로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편에 서 있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해야 됩니다. 

 

오늘날도 수르야의 아들들은 건재합니다. 

교회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고백하는 사람들 많죠.

하지만 정작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방법으로 일하는 사람들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인생에서 성공과 형통을 경험할 때 주의할 것은 무엇일까요?

 

주님, 다윗처럼 평화를 이루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도 인내심을 갖고 주님의 마음과 방법으로 일할 수 있게 하옵소서 
때로는 일이 틀어지고 오해받을 상황이 되더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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