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의 마지막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심판(사무엘상 31:1-13)(20230331)

2023.03.31. | 생명의 삶 | 안광국 목사

 

생의 마지막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심판

 

할렐루야

금호중앙교회를 섬기는 안광국 목사입니다.

오늘은 3월의 마지막 날이죠. 

3월의 마지막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혜롭게 마무리하는 거룩한 백성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강준민 목사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영광이라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어릴 때에는 어둠을 두려워하지만 막상 어른이 되고 난 뒤에는 오히려 빛을 더 두려워한다.'

굉장히 의미가 있는 그런 말씀입니다. 

빛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지만, 우리의 마음이 어두워져 있기 때문에 어른이 되고 나서는 오히려 빛을 더 두려워하게 된다는 것이죠.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 두려움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죽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죠.

오늘 본문의 말씀은 서울의 마지막 죽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서 죽음에 대하여서 우리의 마음 가운데에 있는 두려움에 대해서 묵상하는 귀한 한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상 31장 1절에서 13절까지에 있는 말씀입니다.

 

생의 마지막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심판

 

더보기
1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 산에서 엎드러져 죽으니라
2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3 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잡으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에게 중상을 입은지라
4 그가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무기를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감히 행하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매
5 무기를 든 자가 사울이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6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무기를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7 골짜기 저쪽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요단 건너쪽에 있는 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죽었음을 보고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러 거기에서 사니라
8 그 이튿날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를 벗기러 왔다가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길보아 산에서 죽은 것을 보고
9 사울의 머리를 베고 그의 갑옷을 벗기고 자기들의 신당과 백성에게 알리기 위하여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의 땅 사방에 보내고
10 그의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그의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으매

11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이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행한 일을 듣고
12 모든 장사들이 일어나 밤새도록 달려가서 사울의 시체와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서 내려 가지고 야베스에 돌아가서 거기서 불사르고
13 그의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 나무 아래에 장사하고 칠 일 동안 금식하였더라

 

먼저 1절에서 7절까지에 있는 말씀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블레셋과의 전투 가운데 사울과 요나단과 또한 사울의 아들들과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죽음을 경험합니다.

저도 마찬가지고 방송을 보시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고 우리는 죽음을 피해 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의 몸을 잊고 이 땅 가운데 오신 예수님도 또한 그 죽음의 문을 넘어서셨지요.

오직 엘리아와 에녹만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로 갔던 사람입니다.

죽음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죽음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삶은 굉장히 큰 차이를 나타냅니다.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을 떠난다 라고 이야기를 하죠. 

그러나 죽음 뒤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신 본향으로 부르신다고 생각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본향을 향하여 돌아간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갈 곳을 알지 못한 채 떠나는 것과 갈 곳을 분명하게 알고 돌아가는 삶은 너무나 차이가 있는 삶인 것이죠. 

 

오늘 본문의 말씀에 보면 죽는다는 이야기가 계속 반복되어지고 있습니다. 

1절 말씀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으니라 

2절 말씀에도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죽으니라 

또 4절 말씀에도 보면 사울이 칼에 엎드려져서 

5절 말씀에 사울의 죽음을 보고 그 무기든 자도 그와 함께 죽으리라 

6절 말씀에 사울의 새 아들과 모든 사람들이 그 날에 다 함께 죽었더라 

7절 말씀에도 서울과 그 아들들의 죽음 죽었음을 보고

계속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울과 함께 했던 사람들이 같이 죽었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여러 가지 많은 족보가 등장을 하게 되죠. 

여러분 족보는 새로운 시작을 나타냅니다. 

그런 족보에 보면 어떤 사람 몇 살까지 살고 죽었더라 

어떤 사람은 몇 살까지 살고 죽었더라 

그렇게 그 사람이 몇 살까지 살고 죽은 이야기를 계속 반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드린 것처럼 족보는 새로운 시작입니다. 

노아의 족보는 홍서 심판 이후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새로운 민족을 노화를 통해서 이루시는 가에 대한 새로운 시작을 나타냅니다.

민수기는 출애급을 한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약속 백성 언약 백성으로 살아갈지에 대한 새로운 시작을 알려주는 그런 책입니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도 느헤미야와 에스라에 보면 족보가 등장을 하게 되죠. 

마태복음도 족보로부터 시작됩니다.

400년 중간기를 거치고 예수님을 통하여서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닙니다. 

성경은 한 사람의 죽음이 새로운 시작을 나타내고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으셨지만 돌아가셨지만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하여서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는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죠. 

그래서 성경 말씀에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죽음은 우리에게 두려움의 존재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새로운 시작인 것을 우리가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죽음을 통하여서 새로운 시작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간구하는 

예수님 닮은 백성 되겠노라고 주님 앞에 고백하는 일이 우리에게 훨씬 더 죽음을 바라보는 지혜로운 태도일 것입니다.

 

사울은 허망하게 죽음을 맛보았습니다.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쳤지만 결국에는 허망하게 모든 사람들과 함께 죽었습니다. 

이 죽음의 메시지를 통하여서 죽음은 우리가 발버둥 친다고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예수님처럼 새로운 시작을 이루는 그런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해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간구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는 내 생의 마지막 순간이 어떠하길 원하나요?

 

반응형

 

8절에서 13절까지에 있는 말씀입니다. 
8절 말씀을 보면 사울이 죽은 그 이튿날에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들을 확인하러 왔다가 사울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8 그 이튿날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를 벗기러 왔다가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길보아 산에서 죽은 것을 보고
9 사울의 머리를 베고 그의 갑옷을 벗기고 자기들의 신당과 백성에게 알리기 위하여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의 땅 사방에 보내고

사울과 그 새 아들이 길보아 산에서 죽은 것을 보고 사울의 머리를 베고 승리를 알렸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9절 말씀에 우리가 굉장히 주의에서 눈여겨봐야 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자기들의 신당과 백성에게 알리기 위하여라고 기록이 되어져 있다는 것이죠. 

 

NIV 성경에 보면 in the temple of their idols 그들의 신의 신강에 이 뉴스를 이 소식을 선포하기 위하여서 사방에 보내었다는 것입니다. 

9 They cut off his head and stripped off his armor, and they sent messengers throughout the land of the Philistines to proclaim the news in the temple of their idols and among their people.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패배하고 자신들이 섬기는 신이 승리했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사울의 죽음은 그냥 사울의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패배자로 만드는 그런 불명예스러운 일이 된 것입니다.

 

영광이라고 번역되어져 있는 히브리어 단어 카버드는 무겁다는 뜻도 있고 명예라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영광을 올려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우리의 삶 가운데 가장 무거운 분으로 가장 중요한 분으로 여긴다는 고백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명예를 하나님의 이름이 명예롭게 되어지는 그런 삶을 살겠노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몇몇 교회들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는 하나님의 이름을 명예롭지 못하게 하는 그런 교회들이 있어서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또 어떤 크리스찬인들의 삶을 보면 분명 크리스천이라고 이야기를 하였는데 크리스천다운 삶을 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명예롭지 못하게 하는 그런 사람들도 발견을 하게 됩니다.

반면에 운동 선수가 금메달을 따거나 아니면 영화배우나 가수가 상을 받게 될 때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명예롭게 하는 그런 사람들도 발견을 하게 됩니다. 

 

저는 이 말씀으로 여러분을 축복하길 원합니다. 

여러분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명예롭게 되는 축복이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3장 7절 말씀은 내 찬송을 부르게 하려고 나의 영광을 위해서 이 백성을 창조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3: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이것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하신 목적에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명예롭게 되어지기 위하여서

하나님의 몸된 교회가 명예롭게 되는 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내가 '선'(善)으로 보답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요?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길을 걸어가신 그 십자가를 묵상하는 사순절 기간에 
사울의 죽음을 통하여서 
어떤 이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허망한 죽음이 되나
예수님의 죽으심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죽음이 되는 것을 묵상해 봅니다. 
주님
예수님의 죽으심과 예수님의 섬김을 기억하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백성들 되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명예롭게 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삶을 살도록
날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