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5. | 생명의 삶 | 백상욱 목사
안녕하세요.
오늘은 12월 5일 월요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하난님의 말씀과 함께 하루를 출발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좋으신 하나님의 은총이 종일토록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광진구 자양동에서 요한 서울교회를 섬기는 목사 백상욱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시편은 다른 여러 성경과는 다르게 매우 독특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 인간을 향한 절대불변의 말씀을 담고 있는데,
시편만큼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람의 하소연 호소가 시편을 보고 있는 거죠.
어떻게 사람의 이야기 절대적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고, 고통받고 살아가는 우리에 대해서 하나님의 마음과 눈이 거기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39편 1절부터 13절인데요.
오늘 말씀을 보겠습니다.
허무한 인생의 유일한 소망
1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2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3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5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8 나를 모든 죄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서 욕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소서 9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 10 주의 징벌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11 주께서 죄악을 책망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이다 (셀라) 12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13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
대개 인간의 교만이나 겸손함은 그가 잘 나갈 때 드러난다고 합니다.
잘 될 때, 그의 태도와 삶의 모습을 바라보면, 그가 얼마나 교만한 사람인지 겸손한 사람인지 드러나게 된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사실 잘 될 때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가 어려움에 처할 때, 어떤 태도 자신의 삶과 타인에 관해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를 보면 그가 정말 겸손한 사람인지 혹은 성품이 교만한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대체로 재난을 만날 때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혹은 자기 재난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돌립니다.
'나는 이런 재난을 당할 사람이 아닌데 누구누군가 때문에 내가 이런 일을 당하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반면에 겸손한 사람은 이 모든 원인을 자기를 통해 찾고, 자기 안에서 문제를 찾아가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인생의 큰 재난과 질병 앞에서 어떤 태도를 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1절 말씀을 읽어보죠.
1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 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윗이 건강을 구하는 그런 기도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질병 속에 있을 때 다윗은 누구를 원망하거나 아니면 질병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향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를 성찰하는 기회를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자기가 질병의 고통 속에 있을 때, 재난의 어려움 속에 있을 때,
혹여라도 내가 말이라도 실수할까 봐, 내가 사람에게 책 잡히는 말을 할까 봐,
혹은 하나님의 원수로 하여금 하나님을 회방하는 거리를 줄까 봐,
극도로 조심하면서 긴장하며 또 겸손하게 자신을 성찰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2절에 보면요. 이런 표현의 말씀도 있습니다.
2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혹여라도 자기가 실수할까 봐 선한 말도 하지 않고 참고 있었다는 것이죠.
왜 그런 것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마음이 불편하고 몸이 괴로울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뜻하지 않게 원망과 불평이 튀어나올 수 있고 그러면 그것이 악인에게 책을 잡힐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혹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향해서 악담이나 험담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극도로 자신을 조심하는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과 행실에 있어서 자기를 성찰하며 조심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는데요.
더 나아가서, 다윗은 자신의 인생의 재난과 위기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과 무력함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크심을 기억하는 그런 신앙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본문 4절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어려울 때, 재난을 겪고 있을 때, 정말 자신이 무기력하고 연약하다는 고백을 한 것이죠.
본문에선 특별히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해 주십시오.
이 말은 무슨 말이겠습니까?
내가 얼마나 연약한 사람인지 내가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십시오.
내가 그래서 허망한데 거하지 않고 높은 데 마음을 두지 않고, 내가 이룰 수 없는 것을 꿈꾸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주님 내가 나의 한계를 깨닫게 해 주십시오.
내가 얼마나 연약한 사람인지,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사람인지, 하나님 알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조금만 잘난 것이 있으면 어깨를 우쭐거리고 고개를 뻣뻣하게 세우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조금만 내 몸이 불편하고 나에게 내게 억울한 일이 생길 것만 같으면, 하나님을 향해서나 주변을 향해서 불평과 원망을 토설하지 않습니까?
재난과 위기야말로 우리의 연약함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나 자신의 한계를 살펴볼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
다시 말하면 재난에나 질병 앞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하나님의 돌보심과 하나님의 크심을 향해 고개를 돌려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난은 어찌 보면 나약함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크심을 깨닫는 축복된 기회일 수가 있는 것이죠.
사람은 자기가 큰 질병을 겪게 되거나 뜻하지 않는 재난을 겪게 되었을 때에, 지금까지 자기가 해왔던 일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가 쌓아놓았던 업적이나 벌어놓은 돈이나 또는 자기의 명성과 명예가 무너진 건강 앞에서 또 무너진 사업 앞에서 내게 닥친 재난 앞에서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 다윗은 오늘 본문 6절에서 이렇게 고백하는데요.
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살아온 나의 삶이 보니까 허망한 그림자 같은 삶이고,
내가 분주하게 무언가 하겠다고 바쁘게 쫓아왔던 나의 삶이 다 헛된 일로 그저 소란만 피웠구나.
내가 벌어놓은 돈이라는 것이 앞으로 누가 쓸지 알지도 못할 것을 위해서
내가 수고하고 애썼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즉시 다윗은 이제 내가 참으로 의지할 만한 분이 하나님밖에 없다는 고백을 7절에서 합니다.
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오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재난을 당할 때만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언제나 자기를 성찰하고 자기를 돌아보는 사람은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오.
사실은 하나님께서 잠깐 맡겨주신 것이고,
내가 이룩한 모든 것도 내가 특별히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런 환경과 여권을 주셨기 때문에 이런 기회를 주셨기 때문에 된 줄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잘 될 때도 하나님의 은혜요.
안 될 때도 이것이 무언가 하나님의 섭리가 있으려니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놀라운 고백을 하는데요. 그것은 바로 10절에서의 고백입니다.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10 주의 징벌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이 본문에 있는 이 말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오늘 내가 겪고 있는 이 징벌을 또 이 아픔을 이 괴로움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라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왜 중요합니까?
사람은 생각하기를 자기는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은총과 축복 혜택을 누려야 마땅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혜택과 축복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는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셔서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인간은 마치 우주의 중심인 양. 자기가 주인인 양.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이며, 축복과 혜택을 누려 마땅한 사람인데 하나님 나의 것을 안 주셨다.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생각하니까,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가 받아 누리는 모든 혜택은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은 창조 주시고 나는 피조물이며 하나님은 주인이시고 나는 종이니
하나님이 나에게 선물을 주실 때도 있고, 때로 하나님이 나를 힘들게 하시고 징벌을 주실 수도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에 그것은 내 몫이 아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손이 나를 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쇠망합니다. 망해가고 있습니다. 죽어갑니다.
여러분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아닙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관한 고백이고, 그 절대적 주권을 받아들이는 믿음의 고백인 것입니다.
이것은 그 옛날 '욥'이 했던 고백과 같은 것입니다.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니 가져가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내게 주시고 거두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나는 그 하나님 앞에 원망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뜻입니다라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까?
오늘 다윗은 내게 자신에게 닥친 질병과 이 권한에 관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더 나아가서 자신의 삶이라는 것은 그저 잠시 지나가는 나은의 삶이니
나는 그저 나의 삶에 어떤 일이 이루어지듯 좋은 일이 생기던 재난이 생기던 나는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으로 족하겠습니다. 하는 고백을 오늘 본문 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통스러운 속에서 눈물로 호소하면서 이렇게 말하는데요. 들어보시죠.
12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을 흘릴 때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다윗은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인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가련하고 불쌍하게 잠시 잠깐 아침 안개처럼 살다 사라지는 나그네 같은 존재니,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삶이 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영원히 살 그런 정착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잠시 잠깐 있다가 사라질 나그네일 뿐입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잠시 지나는 가난한 이 땅에서의 큰 집이 아니고,
잠시 지나는 이 땅에서의 평화롭고 번영한 삶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는 그 하나님
그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고 살아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영광이며 최고의 기쁨이고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될 축복이며 선물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분의 삶에 주어진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주권이며, 은혜인 줄 알고,
당연히 여기지 않고 감사히 생각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게 주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잘 될 때뿐 아니라 어렵고 힘들 때도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그런 저희가 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GNTV > 2022 생명의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죄책감으로 낙심될 때 은총을 간구하는 기도 (시편 40:11~17)(20221207) (0) | 2022.12.07 |
---|---|
구원받은 자의 찬송과 헌신 (시편 40:1~10)(20221206) (0) | 2022.12.06 |
죄악과 질병의 탄식, 구원을 바라는 호소 (시편 38:1~22)(20221204) (1) | 2022.12.04 |
모두가 목도하게 될 의인과 악인의 미래 (시편 37:27~40)(20221203) (1) | 2022.12.03 |
하나님이 붙드시고 복 주시는 사람 (시편 37:12~26)(20221202) (0) | 2022.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