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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와 차자의 축복을 엇바꾸는 야곱 (창세기 48:12~22)(20221118)

2022.11.18. | 생명의 삶 | 윤광서 목사

 

장자와 차자의 축복을 엇바꾸는 야곱

 

샬롬 

영화 교회를 섬기고 있는 윤광서 목사입니다. 

손경민 목사님께서 지으신 '은혜'라는 찬양의 가사에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은혜> 손경민 작사/작곡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우리의 삶을 돌이켜보면 당시 그 순간에는 이해할 수 없었고 답답했던 많은 일들이 

돌아보니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하는 깨달음으로 바뀌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고 고초를 겪는 순간,

그때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순간에도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된다는 약속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창세기 48장 12절로 22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 곳곳에 쌓여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장자와 차자의 축복을 엇바꾸는 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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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요셉이 아버지의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러나게 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13 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14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15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17 요셉이 그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18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
19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20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21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22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앞선 창세기 48장 1절에서 11절 말씀에 이어서 에브라임과 므나세를 향한 야곱의 축복이 오늘 본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요셉은 자신의 두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 야곱에게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그들을 조금 물러나게 하고

자신의 오른손으로 에브라임을 야곱의 왼편에 두고 또한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야곱의 오른편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이 장면이 너무나 당연한 것은 고대로부터 오른쪽은 왼쪽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은 장자인 므낫세를 야곱의 오른편에 있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신의 오른손을 펴서 오히려 작은 아들인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습니다. 

그리고 남은 왼손을 므낫세의 머리 위에 얹습니다.

즉 야곱은 지금 자신의 팔을 교차하여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로 야곱의 축복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분명히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에게 손을 얹고 있지만, 본문 15절 말씀처럼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고 있습니다.

즉, 오늘 야곱이 행하는 축복은 단순히 에브라임이라는 그리고 므낫세라는 개인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요셉의 후손들에게, 앞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모든 후손을 향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야곱의 축복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은 그의 회환과도 같은 고백입니다. 본문 15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15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내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셨다는 나를 기르셨다는 야곱의 고백을 듣게 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야곱은 그의 출생 때문에 많이도 억울했을 겁니다. 

장자의 축복을 받고 싶었지만 아마도 몇 분 사이로 쌍둥이 동생으로 태어났다는 자신의 한계가 화도 나고, 이해도 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 누구보다 거친 인생을 살아온 야곱은 아마 그의 인생 가운데에 이러한 순간이 참 많이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야곱 그의 말년에 그는 하나님께서는 내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오늘까지 나를 지속적으로 돌보아 주셨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죠. 

자신의 거친 인생에 대한 한탄도 아닌, 슬픔도 아닌, 아쉬움도 아닌, 하나님의 은혜만 그의 인생 가운데 남아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계신 성도 여러분들께서는 그 삶 가운데에 무엇을 남겨두고 계십니까?

인생에 대한 아쉬움입니까? 슬픔입니까? 아니면 한숨입니까?

아니면 그 모든 것을 덮고도 남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깨달음입니까?

 

야곱의 인생보다 더 극적인 인생은 드물 것입니다.

설령 어떤 이가 야곱보다 더 힘든 인생을 살아왔다 할지라도 

우리 인생 가운데에 우리는 무엇을 남겨야 하겠습니까?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 인생에 대하여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나를 모든 환란에서 건지신 그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야곱은 그의 조상 대대로 내려온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축복을 그의 자손들에게 그대로 전합니다. 

본문 16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자손에 대한 축복이 그의 자녀 이삭을 통해 

그리고 이제는 야곱을 통해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늘 기억하며 또 전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하는 말이죠. 

우리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잊고 산다면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아 다음 세대에 전하지 못한다면
우리 교회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늘 기억하며, 잘 증거하며, 가르치며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나는 자녀 혹은 동료 앞에서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고백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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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7절 이하에 나오는 야곱의 축복의 장면은 분명히 이례적인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축복 기도를 하면서 일부러 양팔을 어긋나게 기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그의 앞에 있는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머리에 자신의 팔을 어긋나게 얹었습니다.

요셉에게 이 장면은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큰 아들인 므낫세가 아버지의 오른손으로 축복을 받아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아버지 야곱은 굳이 손을 교차시켜서 오른손으로 작은 아들인 에브라임을 축복했고,

왼손으로는 장남인 므낫세를 축복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요셉은 이 모습이 불편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무슨 착각을 하셨을까? 이제 정말 병이 깊어지셔서 제대로 된 판단을 못하시나 보다 하고 걱정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요셉의 모습은 본문 17절 말씀에서 잘 드러납니다.

17 요셉이 그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여기서 '기뻐하지 아니하였다' 하는 표현은 실제로는 불쾌하게 여기다. 악하게 여기다.라는 뜻을 가진 '에라'라는 단어를 조금 순화해서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즉 요셉은 생각보다 이 상황이 너무나 이해되지 않고 불쾌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의 손을 옮기고자 장자인 므낫세에게 당신의 오른손을 얹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하지만 야곱의 뜻은 확고했습니다. 

야곱이 자신의 아들 요셉에게 이렇게 말하죠.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요셉은 자신의 아버지가 실수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했던 것이라는 겁니다.

야곱은 두 차례나 '나도 안다'라고 말하면서 요셉을 안심시킵니다.

눈은 어두웠을지 모르지만 정신은 아주 또렷합니다. 

즉 야곱은 에브라임을 더 크게 축복할 뜻을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야곱은 이렇게 말합니다. 

19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야곱은 므낫세가 크게 되어 백성으로 성장하겠지만, 에브라임이 므낫세보다 더 큰 자가 될 것이라고 말할 뿐 아니라

그의 후손들을 민족들이라는 복수 형태로 표현을 합니다.

애굽에 살고 있던 이들은 어느새 그들의 삶에 익숙해졌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그저 노예로 사는 것에서 아무런 소망을 품지 못하는 것이 익숙해져 있는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뜻하시는 바를 분명히 일러주셨습니다. 

야곱의 후손들이 단지 족속을 이루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이라는 그 귀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바를 받아서 마음속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한 말은 문법적으로는 미완료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결론이 지어진 것이 아닌, 예언적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죠.

연로하게 된 야곱의 병은 깊어졌으나, 그의 영은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더욱 확실히 구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축복은 

21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잠시 동안은 애굽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겠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결국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십니다. 

 

우리 인생들 또한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이 약속을 붙들고, 그 약속에 합당하게, 신실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사람이 바꾼 것 같지만, 결국 하나님 섭리였음을 고백할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도 저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저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끝이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저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하시고,
이 은혜를 저희 자녀들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저희의 삶이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있음을 날마다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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