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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들의 특성에 따른 야곱의 예언 (창세기 49:8~21)(20221120)

2022.11.20. | 생명의 삶  | 안광복 목사

 

아들들의 특성에 따른 야곱의 예언

 

 

할렐루야

청주 상당교회를 섬기는 안광복 목사입니다.

오늘은 거룩한 주일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예배드리시는 모든 시간과 현장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성령님의 기름 부심의 역사가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성경의 많은 인물 중 야곱은 태어나기 전부터 죽는 순간까지의 모든 생애가 다 소개되는 아주 특별한 인물입니다.

철저하게 목적 지향적인 참으로 험악한 세월을 살았지만 마지막에는 자녀 손자들에게까지 아낌없는 축복의 예언을 하지요.

움켜쥐는 모습으로 인생을 시작했던 그가 어떻게 축복하는 인생이 되었는지,

그리고 자녀들마다 주신 축복의 아름다운 내용들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창세기 49장 8절에서 21절의 말씀입니다. 

 

 

아들들의 특성에 따른 야곱의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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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11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12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13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14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15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16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17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18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19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20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21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어제 본문에 이어서 야곱은 그의 자녀들을 축복을 합니다. 

축복을 할 때 그의 손에 대한 부분들을 한번 잠깐 생각해보면

그는 태어날 때 형, 쌍둥이 형에서의 발뒤꿈치를 붙잡고 태어났죠.

그렇게 움켜주면서 인생을 시작했던 그의 인생,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지 그 목적을 반드시 이루고만 말았던 그의 인생을

그 움켜줬던 손을 하나님은 하나씩 하나씩 펴게 만드시죠.

그리고 다 모든 손을 펴게 하신 후에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그런 삶으로 변화시켜 나아가십니다.

그렇게 펼쳐진 그의 손이 이제는 인생 마지막 그 순간에 자녀들을 손주들을 축복하는 그런 손으로 바뀌고 있어요. 

 

오늘 본문 네 번째 아들 유다를 축복 합니다. 

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사자 새끼에 비유를 합니다. 

용감하고 담대함을 의미하고 있죠.

유다는요. 어느덧 그 형제들 가운데 대표 역할을 합니다.

르우벤은 서모 빌하를 통간했고, 또 시므온과 레위는 디나의 겁탈 사건 때 아주 잔혹한 그런 행동을 함으로 말미암아.

유다는 그의 형제들 가운데 이제 어느덧 리더 역할을 하는 거예요.

아버지 사이에 또 형제들 사이에 그가 대신 나가서 '반드시 제가 베냐민을 데리고 오겠습니다'라고 중재를 했죠.

그리고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이 그 베냐민을 붙잡으려고 하자 

유다는 정말 장문의 아름다운 그런 감동적인 연설을 합니다.

리더는 누구인가 문제가 생겼을 때 침묵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뭔가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에요. 

'베냐민을 돌려보내 주십시오. 제가 대신 이곳에 머물겠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서 유다는 정말 그 가정 안에 그 가게 안에 놀라운 리더 역할을 계속 계속 감당했고 요셉의 그 마음을 결정적으로 움직일 수가 있었던 것이죠.

 

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규'라는 것은 막대입니다. 홀이지요. 왕이 쥐고 있는 그런 권력의 상징입니다.

이건 파워를 의미하죠. 통치자의 지팡이 

마찬가지예요. 

실로가 오시기까지 그의 지도자가 오기까지 모든 백성이 복종할 것이다.

리더십의 놀라운 은총과 그런 능력들을 상징하고 있어요.

 

이 유다의 그 가게를 통해서 그 가문을 통해서 메시아가 오시죠.

11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나귀는요. 평화의 상징입니다.

포도나무는 풍요의 상징이죠. 

평화와 풍요의 그런 아름다운 그런 상징 

그 속에서 메시아 유다의 그런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의 예언에 대한 그런 부분들도 여기서 본문에서 언급을 하고 있어요. 

 

이 놀라운 축복

유다가 결정적인 위기 상황 어려움 가운데 형제들을 대신해서 그 가게의 그 곤란함과 그 갈등 속에서 유다가 대신 나서서 그런 책임진 역할들을 감당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유다를 축복을 하시고, 그 유다의 가게를 통해서 그 가문을 통해서 결국에는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주시는 그런 놀라운 장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되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분깃들이 있어요. 

각자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달란트가 있습니다.

때로는 핸디캡을 갖고 살아가고 부모님이 갖고 있는 가족력과 여러 가지 불리한 그런 조건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떻게 성실하게 날마다 하루하루를 채워가느냐?

거기에 따라서 우리의 운명은 우리 인생은 바뀔 수가 있다는 사실이에요.

자녀들을 축복하는 이 장면을 통해서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됩니다.

 

오늘도 그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통치와 그 하나님의 능력이 저와 여러분의 삶을 온전히 주장하시고,

그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서 여러분 오늘 하루도 신뢰하며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의 평강과 주님의 은혜가 충만한 그런 복된 한 날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가족과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할 때 나는 어떤 축복을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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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후반부에는 6명의 다른 자녀들을 축복하는 그런 내용이 나와요. 먼저 레아의 두 아들입니다.

스불론과 잇사갈에 대한 그런 축복이죠. 

13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14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유다에 비하면 너무나도 짧은 그런 축복의 내용이에요.

더군다나 잇사갈의 경우는 아까 유다는 나귀가 평화의 상징이지만, 여기서의 나귀는 노동과 섬김의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분명히 좋은 좀 아름다운 그런 축복의 내용이기도 하지만 좀 불확실해요. 피상적입니다.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 가나안 땅을 정복했을 때, 이 잇사갈 지파의 경우는 확실하게 그 가나안 땅을 정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강성해진 가나안 그 백성들에 의해서 다시 종살이를 하는 노예가 되는 바로 그런 내용들을 상징하고 의미하고 있는 바로 그런 부분이에요.

16절 이하는 여종 빌하와 실바의 그 자녀들을 축복합니다.

16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17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단 지파의 아마 삼손을 의미하는 그런 내용 같죠?

굉장히 뭔가 벅차고 힘들고 거친 그런 인생을 살게 될 것임을 그렇게 암시하고 있어요. 

19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긍정적인 의미지만 역시 짧습니다.

20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그나마 비교적 굉장히 좀 뭔가 기대할 만한 어떤 그런 내용의 그런 예언이죠.

마지막 21절 

21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말씀드렸듯이 유다 지파에 비하면 정말 턱없이 짧은 너무나도 아쉬운 정말 그 축복의 내용을 직접 현장에서 들었을 그 자녀들이 어떻게 보면 정말 서운할 수도 있는 바로 그런 내용이 아닐까 싶어요.

이 내용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가 있나요?

이것은 예언적인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운명이 그렇게 결정돼 버린 건가?

하나의 예정론과 같은 그냥 한때 그런 모습으로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가?라는 것이죠.

그런 측면에서 볼 때는 이건 굉장히 불합리하고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부분을 한번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세요.

인생의 모든 생사복은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있어요. 

여러분 달란트 비유아시죠?

누구에게는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주인이 맡겨주셨죠.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유다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맡긴 것과 같고 다른 지파의 형제들에게는 한 달란트 또는 두 달란트를 맡긴 것과 같아요.

주신 분깃에 근거해서 그저 열심히 살아가면 됩니다. 

어쨌든 불평하지 않고 거기에 감당할 수 있는 역량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되 

그 모든 인생의 주인 되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거예요. 

 

우리의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하루하루의 삶의 모습들, 남들과 비교하면서 낙담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주신 여러 가지 삶의 분기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고

한 달란트든 두 달란트든 거기에 대한 충분한 그런 결과들을

그 주신 하나님 앞에 우리가 내어드리고 그렇게 성실하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이것을 통한 놀라운 영적인 의미와 보람을 느끼게 하시지 않을까요?

 

오늘 하루의 모든 삶 속에서 나는 몇 달란트 받은 자인가?  나는 어느 지파에 속해 있나?

그런 부분들 때문에 혹시 낙심하거나 비교하거나 과시하거나 우쭐될 것이 아니라.

그저 성실하고 겸손한 태도와 자세로 하나님께서 주신 오늘 하루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는 우리 가족의 특징과 성향을 얼마나 잘 알고 그에 맞게 대하나요?

 

우리 인생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
우리 삶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의 달란트를 온전히 깨닫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하루 되게 하여 주옵소서 
헛된 일에 시간 낭비하지 않게 하시고,
주어진 모든 삶의 기회를 선용하게 하시되,
나의 시간과 건강, 물질과 관계의 모든 영역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영광의 도구로 복음의 통로로 살아가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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