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호의를 베푸는 바로, 복의 전달자 야곱 (창세기 47:1~12)(20221114)

2022.11.14. | 생명의 삶 | 윤광서 목사

 

호의를 베푸는 바로, 복의 전달자 야곱

 

 

 

샬롬

영화 교회를 섬기는 윤광서 목사입니다.

 

여러분은 건강을 위해 또 멋지고 아름다운 몸을 만들어보시려고 운동을 해보신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마음먹고 운동을 시작하지만 처음 운동을 시작할 무렵 만나게 되는 갖가지 근육통 때문에 운동을 포기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우리 몸에 근육이 생성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근육이 먼저 손상을 경험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충분한 영양과 휴식을 통하여 손상된 근육이 재생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재생이 될 때, 이전보다 더 튼튼하게 넘치도록 재생이 됨으로써

기존의 충격보다 더 견딜 수 있는 튼튼해진 근육을 갖게 된다는 원리입니다.

때로는 이렇듯 고통이 우리를 더 성장시키는 줄 믿습니다. 

오늘은 창세기 47장 1절로 12절 말씀을 살펴봄으로써 고통 중에도 우리를 은혜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보시기를 바랍니다. 

 

호의를 베푸는 바로, 복의 전달자 야곱

 

더보기
1 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2 그의 형들 중 다섯 명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3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4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양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 곳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
5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6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거주하게 하되 그들이 고센 땅에 거주하고 그들 중에 능력 있는 자가 있거든 그들로 내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
7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8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11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12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요셉은 바로 왕 앞에 나아가 자신의 아버지와 형들이 그들의 소유를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부터 와서 고센 땅에 이르렀다고 보고를 합니다.

요셉이 언급한 고센 땅은 임시 거처일 뿐이며 바로의 결정에 따라서 정착지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바로는 야곱은 그의 가족들이 애굽으로 오게 하는 동안에 수레를 내어주는 등 여러모로 배려를 했기 때문에,

요셉의 가족들을 앞으로도 우호적으로 대할 것이라고 하는 짐작을 하게 했습니다.

요셉은 이러한 분위기를 감안하면서 동시에 야곱과 그의 가족들에게 가장 적합한 정착지가 어디일까를 심사숙고한 끝에 가나안에서 온 형제들이 정착할 만한 곳을 간접적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참 지혜롭게 판단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주군인 바로 왕의 기분이나 체면이 상하지 않으면서 그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현명하게 처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형제 중에 5명 만을 데리고 왕 앞에 나아갑니다. 

왜 5명이었는지, 또 5명은 누구 누구인지는 자세히 소개되지는 않습니다.

바로는 요셉의 형제들을 만났을 때 요셉이 예상했던 것처럼 직업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요셉이 일러준 대로 대답을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당신의 종'이라 이렇게 칭하면서 겸손히 자기들을 낮춥니다. 

형제들은 발언을 이어가기를 자신들뿐만 아니라 선조들도 대대로 목축일에 종사했다고 밝혔고,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해서 양을 더 이상 칠 곳이 없으므로 애급에 거류하기 위해 오게 되었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사실 이전에도 가나안 땅의 기근으로 인해서 애굽으로 피난을 간 이야기가 나오죠.

아브라함 때에 그러한 기사가 있고 또 이삭의 때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는 기근 때문에 이방 땅인 애굽 땅으로 피해왔지만,

기근이 끝난 후에는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들 갔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야곱은 기근이 끝난 후에도 계속 머물렀고, 17년을 더 산 후에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은 4백여 년을 애굽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들이 애굽에서 거류했다. 이렇게 묘사를 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이라는 땅은 약속의 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큰 민족을 이루어 가시는 중에 민족을 번성케 하시는 모판으로 사용하셨다는 사실을 일러주는 것입니다.

 

바로 앞에 선 요셉의 형제들은 자신들이 고센 땅에 머물 수 있도록 청합니다. 

사실 요셉은 이렇게까지 일러주지는 않았습니다마는 그들은 용기를 내서 바로에게 부탁을 한 거죠. 

바로는 그들에게 직접 대답하지 않고 요셉에게 말합니다. 

애굽 땅 중에서 좋은 곳을 그들에게 주라고 그렇게 명령을 하면서 고센 땅을 지목을 합니다.

피차간의 마음을 살피는 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그들 중에서 유능한 자에게 왕의 소유를 돌보도록 명합니다. 

야곱의 가족들이 단지 타향에 기거하도록 배려하는 정도가 아니라, 곡물을 맡겼다는 점에서 왕의 호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요셉을 통하여 모든 상황을 새롭게 하시고 바로 왕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야곱의 가문이 애굽 땅에서 번성케 하실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볼 수가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일하시는 역사는 놀랍습니다. 

비록 고향 땅을 떠나 유리 방황할 형편에 불과했지만, 예비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이스라엘의 가족이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룰 수 있도록 요셉을 통하여 철저하게 예비해 주셨습니다.

 

생업을 목자라고 하는 야곱 가족에게 바로는 어떤 일을 맡겼나요?

 

 

반응형

 

요셉이 이번에는 자신의 아버지인 야곱을 바로 왕 앞으로 인도합니다. 

왕 앞에 선 야곱은 바로를 축복했다. 하였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축복이 지상에 어떠한 군주가 제공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귀한 것이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바로를 축복한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야곱은 한낮 피난민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제국의 군주를 축복해 줄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왕에 비해 가진 것도 없고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신분의 차이를 드러냅니다. 

한마디로 바로는 복받은 사람이요. 야곱은 박복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일 것입니다. 

야곱이라고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겠습니까?

그럼에도 야곱이 바로를 축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지고 있었던 복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전의 야곱이었더라면 바로를 감히 축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로를 자신보다 더 높은 자, 성공한 자, 복 받은 자로 여겼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를 축복할 수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야곱은 복이 무엇인가를 새롭게 깨달았기 때문에 

세상의 소유와 권력을 초월하여 바로를 복받아야 할 인생 하나님의 복을 얻어야 할 그저 한 사람의 인생으로 본 것입니다.

즉 자랑이 되고 힘이 되는 세상의 것에는 더 이상 가치를 두지 않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렇다고 야곱이 살았던 이전의 세계가 지금 바로 왕 앞에 놓인 세계와 다른 것은 아닙니다. 

그 세계는 자기들의 욕망이 성취되는 것이 자랑이 되고, 만족이 되고, 힘이 되는 가치관에 붙들려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바로를 축복함으로써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인간의 욕망이 성취되는 것이 더 이상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다스리심을 받는 것이 새로운 가치로 드러나는 영적 질서 야곱은 지금 이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만약 바로의 세상에, 그 힘의 논리에 굴복했다면 그저 바로의 힘 앞에 의지하였을 것이고 혹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까 하여 고심하며 고개를 조아렸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바로를 축복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겠죠. 

하지만 야곱은 바로를 축복함으로써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하늘의 복을 누리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복된 인생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성도의 역할이요. 사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교회와 성도들은 과연 그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에 어그러진 질서에 억눌린 채 세상처럼 재물과 성공을 복으로 간주할 뿐입니다. 

어쩌면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그 세상적인 기준으로 성공을 판단하고 성공했다고 여김을 받는 이들이 자기들의 세속적 성공을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과시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날마다 깊이 묵상해봐야 할 것이겠습니다. 

 

이제 바로는 야곱에게 나이를 묻습니다. 

야곱은 9절에서 대답을 하기를

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라고 대답을 합니다.

야곱의 대답 속에는 야곱의 가치관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야곱이 

세상의 모든 풍파를 경험한 후에 말년에 와서 인생이란 이 땅에서 그저 잠깐 머무는 것이라는 나그네로서의 삶의 인식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제 야곱이 모든 말을 마친 후에 요셉은 바로의 명령대로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식구를 따라먹을 것을 주어 봉양을 합니다. 

야곱 일가가 거하기 최적의 장소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이렇게 좋은 땅,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를 허락하시는 참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 은혜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경험한 하나님 은혜는 무엇인가요?

 

선한 목자 되시는 하나님 
저희 삶을 인도하시는 주님의 인도하심만을 겸손히 따를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우리를 안위하심을 믿고
저희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신실한 분이심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