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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에게 주신 꿈 그대로 이루신 하나님 (창세기 42:1~17)(20221101)

2022.11.01. | 생명의 삶 | 조호영 목사

 

요셉에게 주신 꿈 그대로 이루신 하나님

 

안녕하세요. 

온누리 교회 조호영 목사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오늘 말씀 속에서 요셉이 오래전 꾸었던 그 꿈이 20년이 지난 후에 이루어지는 그 현장을 보게 됩니다.

역전의 명수이신 하나님께서 상황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그 현장도 보게 됩니다. 

그 현장 속으로 함께 가보시죠.

오늘 말씀은 창세기 42장 1절부터 17절까지 말씀입니다. 

 

 

요셉에게 주신 꿈 그대로 이루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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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
2 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러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
3 요셉의 형 열 사람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려고 내려갔으나
4 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은 그의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생각에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5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 간 자 중에 있으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6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7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8 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
9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10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아니니이다 당신의 종들은 곡물을 사러 왔나이다

11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들로서 확실한 자들이니 당신의 종들은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12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아니라 너희가 이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느니라
13 그들이 이르되 당신의 종 우리들은 열두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막내 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14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한 말이 이것이니라
15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막내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16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꾼이니라 하고
17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바로가 꾼 꿈을 해몽했던 요셉의 말대로 온 땅에 7년의 풍년이 있은 후 심한 기근이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살고 있던 그 가나안 땅에도 기근이 찾아왔지요.

 

하나님의 사람 야곱의 가족도 기근의 어려움을 피할 수는 없었고,

야곱은 아들들에게 애굽으로 가서 곡식을 사 오라 지시합니다. 1절, 2절입니다.

1 그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
2 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러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

야곱은 식량이 없어서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도 머뭇거리는 아들들을 보면서 책망하고 재촉합니다.

그들은 왜 망설이며 서로 바라만 보고 있었을까?

아마 애굽으로 가는 길이 멀고 또 위험했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생각도 해봅니다.

그러나 가는 길이 설사 위험할지라도, 가지 않으면 온 가족이 죽게 된 매우 심각한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그들은 길을 떠나게 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야곱은 열 아들을 보냈지만, 요셉의 동생 라엘의 둘째 아들 베냐민은 함께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3절 4절입니다. 

3 요셉의 형 열 사람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려고 내려갔으나
4 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은 그의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생각에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 라엘의 아들 요셉을 아끼며 사랑했었죠.

그러나 형들로부터 그가 죽었다는 소식에 절망하면서 야곱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지금 그 요셉의 동생 베냐민을 빼놓고 나머지 그 형들을 보낸 걸 보면,

야곱의 마음에 어떤 위험이 닥쳐도 그 라엘과의 사이에 태어난 베냐민까지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죠. 

20년 전에 요셉을 특별히 사랑하면서 그에게 색동옷, 채색옷을 입히면서 편해했던 야곱은 이제 베냐민을 향해서 그런 편애적인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당시 베냐민의 나이는 거의 25, 30 그렇게 됐을 거라 신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렇게 어린아이가 아니건만은 야곱에게 베냐민은 늘 돌보아야 하는 품 안의 아기였던 것이죠. 

이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사랑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단어가 눈에 띕니다.

'그것은 그의 생각에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려워함이었더라'라는 단어입니다. 
그의 생각에, 나의 생각에 정말 우리는 이 함정에 많이 빠집니다.

'내 생각에'는 이것은 믿음은 아닙니다.

인간적인 생각과 연미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도록 만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 야곱 아니었습니까?

베델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던 야곱 아니었습니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기까지 하나님과 씨 이름에서 축복을 받아냈던 야곱 아니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안에는 요셉을 잃어버림으로 생긴 그 상처가 베냐민까지 이를 것 같은 걱정과 염려로 베냐민을 놓지 못하는 그런 모습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죠. 

나이가 이렇게 먹었건만은 아직도 그를 품 안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그것은 두려움, 두려움입니다. 

아이를 키운 엄마로서 야곱의 마음을 인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식 사랑이라 해도 편애하는 사랑은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베냐민을 편애했고 그를 자신 곁에 붙들어두고 싶었던 야곱의 품에서, 베냐민을 내려놓도록 훈련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종종 아픔을 동반합니다.

후에 이제 그 베냐민을 하나님께서 보내라고 하시는데요. 

결국 이 훈련은 나의 생각, 나의 뜻, 내가 놓지 못하는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는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훈련의 과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 가운데서도 종종 이런 관계를, 이런 애착을 내려놓도록 훈련하십니다.

예전에 순예배 순원들이 너무 가깝고 친밀해서 똘똘 뭉쳐 있었던 순들이 있었습니다.

그 순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서로 끈끈합니다.

그때 담임 목사님께서 그 순을 가장 먼저 자르시고, 분 순시 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내 사람, 내 가족, 내 순, 나의 내 것, 이것을 넘어서

그 마음의 직영 사랑의 직경 섬김의 직경을 넓혀 많은 사람들과 교제하고 품고 섬기면서 살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는 사람만 사랑하지 아니하시고, 온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여기에 온 세상은 안 믿는 불신자들 우리 주변에 정말 우리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요셉은 자기 앞에 엎드린 형들을 보며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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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합니다. 

정말 그와 같이 요셉이 20년 전 꾸었던 꿈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6절입니다. 

6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7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8 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

요셉과 형들이 20년이 지난 후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입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형들은 곡식을 살아간 수많은 그 군중들 중에 일부에 불과합니다. 

과거에는 형들이 요셉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양식을 구걸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어린 요셉이 이젠 어른이 되었고, 죽었을 거라 생각했던 요셉을 형들은 전혀 알아보지 못했지만

요셉은 단번에 형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요셉 앞에서 절을하는 형들, 어린 시절 요셉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역전의 명수이신 하나님이 지금 요셉과 형들의 상황을 역전시키고 있는 그런 장면이죠.

이 시간 요셉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온갖 생각이 스쳐갔을 것 같습니다.

 

나 같으면, 저 같으면 형들을 원망하면서 내 말이 맞았지 샘통이다. 할 것 같은데,

그러나 요셉은 감정을 다스리고 모르는 척하면서 엄한 소리로 너희가 정탐꾼이 아닌가? 이 나라를 엿보러 왔는가?라고 묻습니다.

이 반응에 놀란 형들은 얼굴도 못 들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10절입니다. 

10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아니니이다 당신의 종들은 곡물을 사러 왔나이다
11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들로서 확실한 자들이니 당신의 종들은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이다 하면서 지금 자신이 정탐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형들은 자신들이 당신의 종들이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지금 곡식사로 이곳에 온 것이라고 열심히 설명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말을 믿지 않고 그들을 정탐꾼이라 누명을 씌웁니다. 

 

형들은 더 당황하여서 자신의 가족 상황을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13절 볼까요?

13 그들이 이르되 당신의 종 우리들은 열두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막내 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형들의 입으로 가족 상황이 풀어지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요셉 자신의 이야기도 하고 있어요.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저는 또 요셉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또 궁금했던 아버지 소식, 사랑하는 동생 베냐민 소식도 듣게 됩니다.

얼마나 듣고 싶던 소식이고, 보고 싶은 사람들입니까?

 

이제 요셉은 또다시 형들에게 정탐꾼 누명을 씌우고 그의 말이, 정말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막내 아웃 베냐민을 나에게 데려와 봐라 그럼 너희들 말이 다 사실인지 증명되겠다고 다그치면서 몰아붙입니다. 16절 17절 읽어볼까요?

16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꾼이니라 하고
17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왜 이렇게 가혹하게 형들을 감옥에 가두고 동생을 데리고 오라 했을까?

요셉의 입장에서 좀 묵상해 보았습니다.

요셉은 궁금했을 것 같습니다. 

형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했을까?

형제 하나는 사라졌다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형들이 오래전 자신을 애굽 상인에게 노예로 판 것을 다시 기억하고 뉘우쳤을까? 그런 마음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지 않았을까요?

 

자신이 오랜 세월 갇혀 있던 그 감옥에 단 3일이라도 형들을 가둬놓고서 내 마음을 이해해봐라는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

노예로 팔려온 내가 어떻게 정말 억울한 일을 당했고, 감옥까지 가야 했는지, 그 억울함을 형들도 경험해봐, 누명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지, 뭐 이런 생각이 있지 않았을까? 성경에 나와 있지는 않아요. 하지만 지금 모든 상황이 자기가 경험했던 그런 것들을 형들도 조금씩 조금씩 경험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복잡한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보고 싶었던 형들 그러나 미워했던 형들, 원망도 했던 형들, 그러다가 또 용서했던 형들

그리고 그리운 아버지 사랑하는 동생 베냐민

성경은 일일이 요셉의 마음 상태를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잠시라도 형들은 요셉이 겪었던 그 쓰디쓴 과거의 아픔들을 조금씩 경험하고 있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또 허락하십니다. 

정말 그들은 그 감옥 속에서 이 여러 가지 상황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옛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하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내일 QT를 통해 그들을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과거에 내게 해를 가한 사람을 만난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하나님, 
주님 안에 있는 사람들은 늘 주님께서 선하게 모든 것을 인도하시고 또 변화시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도 그 요셉을 통해서 역전을 이루시는 주님을 만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요셉의 믿음처럼 우리도 그 신실함으로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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