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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섭리를 모르는 야곱의 두려움 (창세기 42:26~38)(20221103)

2022.11.03. | 생명의 삶 | 조호영 목사

 

하나님 섭리를 모르는 야곱의 두려움

 

 

 

안녕하세요.

온누리교회 조호영 목사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예전에는 참 믿음이 좋았는데 지금은 좀 아니야'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만나는 야곱은 예전에 야곱과 참 달라져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그 야곱이 또다시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은 그를 새롭게 하시고 또다시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는 능력이 하나님이심을 압니다. 

우리도 오늘날 삶이 힘들어 주저앉아 있을 때에도, 그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주님의 손을 잡으면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시고 함께 가자 말씀하시는 우리 하나님이 계셔서 참 좋습니다.

 

오늘 말씀은 창세기 42장 26절에서 3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섭리를 모르는 야곱의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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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그들이 곡식을 나귀에 싣고 그 곳을 떠났더니
27 한 사람이 여관에서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자루를 풀고 본즉 그 돈이 자루 아귀에 있는지라
28 그가 그 형제에게 말하되 내 돈을 도로 넣었도다 보라 자루 속에 있도다 이에 그들이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하고
29 그들이 가나안 땅에 돌아와 그들의 아버지 야곱에게 이르러 그들이 당한 일을 자세히 알리어 아뢰되
30 그 땅의 주인인 그 사람이 엄하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우리를 그 땅에 대한 정탐꾼으로 여기기로

31 우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확실한 자들이요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32 우리는 한 아버지의 아들 열두 형제로서 하나는 없어지고 막내는 오늘 우리 아버지와 함께 가나안 땅에 있나이다 하였더니
33 그 땅의 주인인 그 사람이 우리에게 이르되 내가 이같이 하여 너희가 확실한 자들임을 알리니 너희 형제 중의 하나를 내게 두고 양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34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려 오라 그러면 너희가 정탐꾼이 아니요 확실한 자들임을 내가 알고 너희 형제를 너희에게 돌리리니 너희가 이 나라에서 무역하리라 하더이다 하고
35 각기 자루를 쏟고 본즉 각 사람의 돈뭉치가 그 자루 속에 있는지라 그들과 그들의 아버지가 돈뭉치를 보고 다 두려워하더니

36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37 르우벤이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
38 야곱이 이르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가 가는 길에서 재난이 그에게 미치면 너희가 내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요셉의 형들은 3일 동안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자신들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어느 정도는 깨닫고 참회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동생 요셉이 살려달라고 그렇게 애걸할 때에 외면하고 상인에게 팔아넘긴 죄의 대가가 자신들에게 임했다면서 잘못을 뉘우칩니다. 

이 모든 장면을 옆에서 지켜본 요셉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결국 요셉은 시므온 한 사람만 옥에 가두고 다 곡식을 챙겨 고향 아버지께로 돌아가 음식을 공급하라고 형들을 다 돌려보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형들이 돌아가는 길에 돈을 주고 산 곡식 자루마다 자신들이 낸 돈이 그대로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26절에서 28절입니다. 

26 그들이 곡식을 나귀에 싣고 그 곳을 떠났더니
27 한 사람이 여관에서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자루를 풀고 본즉 그 돈이 자루 아귀에 있는지라
28 그가 그 형제에게 말하되 내 돈을 도로 넣었도다 보라 자루 속에 있도다 이에 그들이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하고

갖이나 정탐꾼이라는 누명을 쓰고서 형제 시므온을 애급 땅 그 감옥 안에 두고 왔는데,

이제 돈도 내지 않고 곡식을 훔쳐간 도둑이라는 누명까지 쓰게 된 것이 아닌가?

전전긍긍하면서 어떡하면 좋은가?

여기에 지금 '혼이 나서 떨며', 여기서 혼이 나서 떨다 그 말은 문자 그대로 표현하자면은 

너무 놀라고 두려워서 혼이 다 빠져버린 그런 상태인 거예요. 

마음이 나가서 두려워한 상태죠.

요즘 말로는 '멘붕이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28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이것을 메시지 성경에서 보면요.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하시려는 거지? 이렇게 묻는 것이죠.

여태껏 자신들이 한 죄악을 회개하거나 참여하지 않았던 그런 긴 세월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잊으려고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면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잠재의식 깊은 곳에 자신들이 동생을 죽이려 했던 그 죄악, 결국 팔아버린 그 죄의식의 흔적을 절대로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어려움이 닥칠 때 그것부터 기억나는 것이죠.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야곱의 아들들은 이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자신들이 컨트롤할 수 있는 상황도 하나도 없습니다.

억울한 상황 가운데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하는 사면이 꽉꽉 막힌 것 같고 도움을 어디로 요청해야 될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죄악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생겼나요? 어찌하려고 그러시나요?'

하나님을 바라보며 탄식처럼 질문하는 요셉의 형들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살아가면서 이런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건 안 믿거니 어려운 세상에 살아갈 때 수많은 아픔과 또 고난과 또 사고와 이런 것들을 겪게 되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돌아가는 일들로 인해서 멘붕이 오기도 합니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실직이라든가, 건강의 악화, 또 생각지 않았던 교통사고, 아이들과의 문제, 관계의 문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그럴 때마다 종종 우리는 잊어버리고 살았던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 내가 그런 거 하나님이 벌주시는 거 아닌가?'

그러면서

'하나님 나에게 왜 이러세요? 어떻게 하시라는 거예요?'

이렇게 질문하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환경에 처해질 때에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똑같은 질문을 해도 정말 그 느낌에 따라 두 가지로 달라질 수 있는 질문이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인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정말 원망하면서 

왜 수많은 사람 중에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됐냐고 

그러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입이 나오는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가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 종류의 사람들은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할 때

왜 내게 이런 일이 하나님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나에게 지금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신 것입니까?

그리고 나를 향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두 번째가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은 어떤 고백을 더 많이 하고 계십니까?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 두 번째 반응이 바로 믿음의 반응이라는 것이죠. 

우리는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 지금 나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반응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원합니다.

 

자루 속에 들어 있는 곡식 값을 보고 형들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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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형들은 마침내 집에 도착하여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아버지 야곱에게 소상하게 설명합니다. 
애급 총리가 자신들을 정탐꾼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이야기,

삼일을 감옥에 갇혀 있었던 이야기,

자신들을 형제라고 설명하면서 온 가족을 소개했더니 애굽 총리는 우리말이 사실이면은 아버지와 고향집에 함께 있는 그 막내 아우를 데고 오라고 그렇게 너의 말을 증명하라고 요구한다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보내주고 대신 시므온만 지금 옥에 갇혔다.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시므온은 풀려날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합니다.

거기에다가 오는 길에 자신들이 가져온 곡식을 열어보니 그 자루 속에 돈이 그대로 들어있어서 이제 또 도둑으로 오해를 받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쉬지 않고 아버지에게 이야기합니다. 

거의 멘붕 상태죠.

 

이 상황을 바라보는 아버지 야곱의 반응은 좀 다를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야기를 다 들은 야곱도 아들들과 마찬가지로 두려움에 떨면서 멘붕 상태에 빠집니다. 

 

사실 야곱 자신의 일생도 얼마나 파란만장했습니까?

어린 시절 형 에서를 속여서 장자권을 빼앗았던 야곱이 아닙니까?

라반의 집에서 수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아내와 자식들 재산을 결국 챙겨 나왔던 야곱 아닙니까?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축복권을 따냈던 야곱 아니까?

그런데 지금 노인이 된 야곱은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슬픔으로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렇게 상황을 만든 것이 아들들이라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아들들을 나무하고 있는 야곱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36절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36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정말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자식 농사라 하는 이야기들 하는데요.

야곱은 지금 그 말을 실감하는 것 같습니다. 

기억하세요?

오래전 세겜 땅에서 그 딸 디나가 세 아들 추장 아들에게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들이 할례를 받으면 결혼시키겠다는 거짓 그런 약속을 해서 그 세겜 땅 남성들이 다 한해 받고 누워 있는 것을 이 아들들이 가서 몰살시키지 않습니까?

그래서 공경에 빠지게 되는 그때 야곱이 이렇게 말을 했어요.

창세기 34장 30절에 보면

창세기 34:30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지금 완전 그 아들을 향해 부정적인 마음입니다.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지 않은 아들들 앞에서 좌절하고 두려워하는 그 야곱에게 하나님이 그때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베델로 올라오라 너희 자신을 정결케 하고 그 베델에 올라와 단을 쌓고 예배하며 그곳에 머물러라 부르셨습니다. 

 

오늘 인생의 말년에 또 다른 위기가 닥친 것이죠. 

이번에도 자식들로 인한 절망적인 사건입니다.

자신이 그렇게 아끼는 아들 베냐민까지 이제 보내어 죽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야곱입니다. 

이때 큰 아들 루우벤이 이렇게 말하지요. 37절에 보니까

37 르우벤이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

그러니 야곱이 뭐라고 반응합니까? 그다음 절입니다. 

38 야곱이 이르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가 가는 길에서 재난이 그에게 미치면 너희가 내 흰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지금 루벤이 큰아들 루벤이 책임지고 베냐민 데리고 오겠다고 이렇게 약속하지만 야곱은 들리지 않습니다.

슬픔 가운데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애굽에 도착도 하기 전에 가는 길이 얼마나 위험한데, 이 베냐민, 어린 베냐민을 보내겠느냐?

마치 이제 가면 그 중간에서 죽을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좌절하고 있는 야곱입니다.

 

오늘 QT 제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는 야곱의 두려움'입니다.

이제 야곱도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이 머무시는 베델로 올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묻는 믿음의 결단이 필요할 때입니다.

야곱의 연약한 모습 속에서, 사랑하는 자의 죽음을 두려워하는 나의 모습을 또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또다시 깨닫습니다.

정말 어제의 믿음이 꼭 오늘의 믿음이 아니고,

오늘의 믿음이 반드시 내일의 믿음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더욱 실감합니다.

매일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 때에 

나의 삶의 하나님의 섭리가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믿는 그 믿음을 매일매일 달라고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구합니다.

 

내가 내려놓지 못한 애착 대상을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요?

 

하나님 
어제의 믿음이 오늘의 믿음이 아니고 또 오늘의 믿음이 내일의 믿음이 아닌 것을 봅니다. 
매일매일 주님과 동행하며 
나의 뜻을 주님의 그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의 나라를 구하며 살아가는 우리들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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