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0. | 생명의 삶 | 윤길중 목사
사랑하는 큐티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부천 온누리교회 윤길중 목사입니다.
창조의 새날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묵상한 가운데 우리의 영이 치유되고, 회복되고, 새 영과 새 마음으로 충만해지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창세기 32장 21절에서 32절 말씀입니다.
야곱의 새 이름, 이스라엘
21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32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
21절에 보면 야곱이 약복강을 건널 때 일입니다.
예물은 먼저 보내고 밤에 두 아내 두 여종 열한 아들을 보냅니다.
그리고 야곱은 웬일인지 홀로 남습니다.
24절에 보면 이 갑작스러운 한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맹수처럼 야곱을 습격합니다.
이내 싸움이 시작됩니다.
야곱은 이 사람이 형이 보낸 자객이 아닐까 생각했을 것입니다.
혹은 도적이나 강도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필사적으로 이 사람과 싸웁니다.
싸움은 박빙이었습니다.
승부가 나질 않았습니다.
또한 얼마나 치열했는지 밤이 지나고 날이 새도록 싸움이 끝나질 않았습니다.
밤새 싸우고 있는 야곱의 체력과 전투력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아... 둘은 이 씨름했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여기서 씨름하다는 말은 먼지를 일으킨다는 뜻도 있고 레슬링처럼 단단히 껴안는다는 뜻도 있습니다.
이것을 합치면 밤새 먼지가 날리도록 레슬링을 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씨름 선수들이 씨름판에서 거친 호흡을 몰아쉬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잠시 이렇게 씨름을 해도 얼마나 힘이 든데, 밤새도록 싸웠으니 야곱의 힘과 근성이 얼마나 대단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갑자기 싸움을 걸어온 사람은 야곱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자 초월적인 힘으로 야곱의 환도뼈 엉덩이 골반 뼈를 일격에 골절시켜버립니다.
이루 보건대 야곱이 싸움을 이긴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저 봐준 것임을 알게 됩니다.
뭔가 초월적인 존재임을 야곱은 직감하게 되는데요.
28절에 보면 야곱은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게 됩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천사를 동일하게 봅니다.
어떤 학자는 성육신 이전에 예수님으로 보기도 합니다.
아무튼 야곱을 먼저 찾아오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이 홀로 남아 형이 자신을 받아들일지 그 모를 두려움과 불안 속에 있었을 때, 하나님은 먼저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거칠게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도 인생의 거친 파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같으면 하나님이 먼저 오셔서 위로도 해주시고 격려도 해주시고 따뜻하게 대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거친 싸움으로 야곱을 다루고 계십니다.
이 싸움을 통하여 하나님은 야곱의 자만심과 이기심을 꺾어 버리십니다.
여태껏 그의 잔꾀로 그의 근성으로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삶이었지만,
골반 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바닥에 나뒹굴면서 그는 자신이 의지했던 모든 것이 무너져버리는 체험을 합니다.
진짜 은혜를 받으려면 나 중심성의 견고한 여리고성이 무너져 버려야 합니다.
세속화된 고정관념이 무너져 버려야 합니다.
왜곡된 가치관 내 안의 거짓 감정들이 무너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것으로 새롭게 채울 수가 있습니다.
거짓되고 왜곡된 채로 살아가면서 은혜를 추구한다 해도 은혜를 받는다 해도 그 은혜가 다 새어나가 버립니다.
변화하려면 먼저 나의 것을 내려놔야 합니다.
나를 의지하고 나의 생각과 나의 뜻대로 살아온 삶으로부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동의하며 주님의 마음에 합한 인생을 걸어가고자 할 때
우리는 자신을 직면하는 고통과 아픔을 겪겠지만 온전한 치유와 회복의 여정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인생 여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씨름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점점 더 의지하는 삶으로 이끄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야곱은 절뚝거리면서, 기어가면서,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고 새롭게 변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럴 것입니다.
26절에 보면 날이 세려고 할 때 하나님이 떠나시려고 하자 아 야곱은 하나님을 꼭 붙듭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에서의 발목을 꼭 붙들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면 못 가십니다.
이렇게 떼쓰며 붙듭니다.
힘을 쓰면 고통이 얼마나 극심해지겠습니까?
그런데도 기어코 축복을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집념을 가지고 붙들고 있습니다.
너무 놀랍습니다.
29절에 보면 결국에는 축복을 받아내고야 맙니다.
27절에는 하나님은 야곱에게 '니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십니다.
몰라서 물으신 것은 아닙니다.
어 히브리인에게 이름은 존재의 속성과 인격을 대표합니다.
야곱은 속이는 자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형을 속이고 라반을 속이고 남을 속이면서 살아왔습니다.
자신의 꾀와 지혜로 뭐든 다 이루며 살아왔습니다.
외적으로는 성공적인 삶입니다.
하지만 이제 약복 강나루의 치열한 싸움 속에서 그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의 옛 자아는 무너지고 새로운 자아로 환골탈태를 했습니다.
28절은 야곱의 생의 대전환이 일어나는 절정의 장면입니다. 28절 읽겠습니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이스라엘은 야곱의 새 이름입니다.
어떤 학자는 이스라엘은 싸우다는 뜻의 '이스라'와 하나님을 지칭하는 '엘'의 합성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시는 분입니다.
여기서는 전환적인 의미로 '하나님과 싸워 이긴 자'로 풀이가 됩니다.
이제 야곱의 인생에는 엘이 들어가 있습니다.
엘리라는 하나님이 그 중심에 들어가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의지하며 살던 인생에서 하나님이 주어진 세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야곱이 새 사람이 되도록 다루십니다.
야곱의 이러한 새로운 정체성은 영광 중에서 얻는 게 아니라 절뚝거림의 상처를 통해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나라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다루실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씨름하는 것들, 고통당하는 것들이 마음에 상처를 주고 삶을 절뚝거리게도 할 때가 있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고통스러운 것이고 그렇지만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면 우리를 새롭게 바꾸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고난을 통하여 전화위복의 삶으로 바꾸어 주심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31절에 보면 해가 돋았다고 합니다.
이제 동이 뜨고 아침이 왔습니다.
그는 지난밤에 치열한 싸움으로 인해서 골반 뼈가 부서졌고 다리를 절 정도가 아니라 거의 기어가다시피 했을 텐데요.
그러나 영적으로 야곱의 영혼의 밤은 지나가고 새벽이 왔음을 이 동터오는 그 태양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고 새 사람이 된 야곱은 이제 두려움이 아닌 담대한 용기를 갖게 됩니다.
형의 얼굴을 볼 용기를 얻게 된 것이죠.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을 늘 구하는 사람은 사람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큐티 가족 여러분 하나님의 얼굴을 아침마다 구하십시오.
날마다 브니엘의 아침을 맞이하십시오.
그러면 우리 인생의 밤은 어느덧 지나가고 새벽을 맞이하는 은총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
우리 삶에는 버거운 많은 씨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로 하여금 일부러 광야에 머물게도 하시고 내면의 생체기를 내시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절망하고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고난의 체험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고 새로워지는 일생일대의 전환점이 되는 줄도 믿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모든 큐티 가족들에게
특별히 해외에 있는 교민 성도님들에게
열방의 생명 전하는 선교사님들에게
주님의 은혜를 가득 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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