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09. | 생명의 삶 | 윤길중 목사
사랑하는 큐티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부천 온누리교회 윤길중 목사입니다.
오늘은 복된 주일입니다.
은혜와 축복이 넘치는 주일 예배 기쁨과 감사가 가득 한 주일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창세기 32장 13절에서 20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묵상하시겠습니다.
화해와 속죄를 위해 준비한 예물들
13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14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15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 16 그것을 각각 떼로 나누어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의 종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 거리를 두게 하라 하고 17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누구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의 것은 누구의 것이냐 하거든 18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19 그 둘째와 셋째와 각 떼를 따라가는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곧 이같이 그에게 말하고 20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
야곱은 20년간 원수지간으로 지낸 형과의 화해를 도모합니다.
인간적으로는 어려운 화해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야곱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보낸 밤을 지낸 후에 형 에서를 위해서 정성껏 예물을 택합니다.
14절 15절 말씀 읽겠습니다.
14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15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
야곱이 준비한 예물은 다섯 종류의 가축들입니다.
암염소, 숫염소, 암양, 숫양, 낙타와 새끼, 암소와 황소, 암나귀와 새끼입니다.
본문에 나온 총수를 합하면 550 마리입니다.
낙타의 새끼는 몇 마리인지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아마도 550 마리 이상이 될 것입니다.
야곱이 형과의 화해를 위해 준비한 가축들의 양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로 보건대 하나님께서 그간 야곱에게 베푸신 축복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지팡이 하나 들고 왔던 야곱이 이렇게 거부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또한 야곱이 형과의 화해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를 예물의 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형과의 화해를 위해 그는 20년간 모은 아까운 재산을 기꺼이 내놓고 있는 것을 봅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위해 준비한 예물은 선물이라기보다는 에도왕 에서에게 보내는 조공에 가까워 보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양의 예물을 준비한 이유는 형과의 만남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지난밤 하나님께 기도는 드렸지만, 많은 양의 예물을 통해 20년간 쌓인 분노를 녹이고자 하는 것이죠.
20절에 보면 야곱이 형 에서의 감정을 풀기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예물을 준비했던 것을 언급합니다.
이 감정을 푼다라는 말은 속량(贖良)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형에게 빼앗았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배상을 형을 위해 속죄의 의미로 내어 놓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한 번 마음을 상하게 하면 한 번 용서를 구해서는 그 감정을 풀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사과라는 것은 상대가 받아줘야 진짜 사과가 됩니다.
그러면 5번 10번 그 이상으로 상대방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진정성 있게 사과를 해야 합니다.
선물이나 봉사 등의 노력도 좋을 것입니다.
많은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전 일이 떠올랐는데요.
제가 중국에서 단기 선교사로 있었을 때 그곳의 책임자였던 어르신 선교사님의 마음을 상하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버님 연세 정도로 많으신 분이어서 상한 감정이 쉽게 풀리지는 않았습니다.
몇 날 며칠이 갔는데 눈길을 안 주셨습니다.
타국에서 가뜩이나 의지할 곳 없어 외로웠는데 참 힘들었습니다.
그때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저희의 숙소 옆에 과일 도매시장이 있었는데 이른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 가서 거의 매일 각종 과일을 골라 사서 조용히 선교사님 가정에 놓고 왔습니다.
선교사님 마음이 점차로 녹아지시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화해가 되었고 이후로는 늘 지지하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야곱과 에서의 화해를 위한 여정을 보면서 우리 안에도 엄청난 화해의 역사들이 일어나기를 기도드립니다.
16절에 보면 야곱은 가축을 각각 떼로 나눕니다.
아마도 동종 가축 다섯 떼로 나눴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각 떼로 거리를 충분히 두게 했습니다.
17절에서 19절에 보면 각 떼를 따라가는 자들, 그러니까 다섯 대의 종들에게 명하여서 이것은 야곱이 에서에게 주는 예물이며 야곱이 뒤에 있다고 말하라고 일러둡니다.
각각의 종들에게 수행할 미션을 자세히 일러두는 야곱의 준비성 계획성이 철저함을 봅니다.
이렇게 다섯 떼를 이루고 각 떼마다 거리를 두고 가는 것은
첫째로 불시에 일어날지도 모를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에서 측에서 공격해오면 가축떼와 멀리 떨어진 거리가 달아날 틈을 벌어줄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둘째로는 가축 예물이 한 떼 한 떼씩 순차적으로 도착하게 되면, 도착할 때마다 이것을 예물로 받는 에서의 마음이 순차적으로 감화(感化)될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한꺼번에 도착하는 것보다 순차적으로 도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야곱이 이러한 준비성과 철저한 계획을 세운 이유는 형 에서의 마음을 녹이고 진정으로 화해하고자 함임을 20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20절 읽겠습니다.
20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히브리어에는 얼굴과 앞에라는 이 단어가 동일한 어근입니다.
20절에 보면은 내가 내 앞에, 그리고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33장 10절에 보면 '내가 형님의 얼굴을 배운 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여기에 모두 '얼굴'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뒤에 이어지는 본문에서 보면 야곱은 약봉 나루에서 천사와 씨름을 하죠.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왜 '얼굴'이라는 단어가 강조가 될까요?
야곱은 에서 앞에서 얼굴을 들지 못할 만큼 크나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20년간 후회하고 자책하며 살았습니다.
중국말에 뚜에이부치(对不起)라는 말은 '미안합니다'라는 뜻인데 '너무 미안해서 얼굴을 들 수 없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형과 화해를 하면서 이제는 그 얼굴을 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얼굴을 든다는 것은 화해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화해를 뜻합니다.
민수기 6장에 보면 아론 대제사장의 축복 기도가 나오는데,
하나님은 그분의 얼굴이 늘 우리를 향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민수기 6장 25절, 26절
민수기 6장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렇습니다.
삶이 괴롭고, 외롭고, 고단하고, 힘들고, 의지할 곳이 없고 무너진다고 느낄 때
눈을 들어 하나님의 얼굴을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은혜와 평강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생전에 고(故) 하용조 목사님께서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이런 노래의 가사를 말씀하시면서 아내의 얼굴이 떠오른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 행복한 사람이죠.
오늘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따뜻한 미소를 전해주시고 밝게 웃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직장에서 격려가 필요한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격려해 주십시오.
그러면 아무리 힘든 일도 잘 극복해 낼 것이고 잘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마음도 다 풀리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매일 말씀 묵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늘 사랑으로 돌보시는 하나님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야곱의 화해 여정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교회 안에 삶의 모든 관계 안에 아름다운 너무나 놀라운 화해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 화해의 은총이 임하도록 축복해 주옵소서
불화를 겪는 가정이나 교회나 공동체의 화해의 기적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우리의 얼굴이 환한 얼굴, 슬픈 얼굴, 고통의 얼굴이 아니라
사랑의 얼굴, 빛나는 얼굴이 되게 하시고, 은총의 얼굴이 되게 하옵소서
화해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얼굴이 고통의 얼굴로 보이지 않고
은총과 사랑을 베푸시는 얼굴로 보이는 역사가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존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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