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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를 풀기 위한 사역자의 설득과 호소 (고린도후서 12:11~21)(20220730)

2022.07.30. | 생명의 삶 | 백상욱 목사

 

 

오해를 풀기 위한 사역자의 설득과 호소

 

안녕하세요. 

저는 광진구 자양동에 있는 요한 서울교회를 섬기는 목사 백상욱입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루를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에게 크신 하나님의 놀라운 종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공동체 성도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예수님께서 주인 되신 공동체인 것이죠. 

 

그런데 주님이 머리가 되시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이루어진 공동체 속에도 종종 갈등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그 갈등 중에 특별히 담임 목사님과 당회원들 사이의 갈등은 교회 공동체를 휘청거리게 만듭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담임 목사에 대한 불신, 혹은 정책에 대한 갈등,

이런 것들은 교회 공동체가 하나 되게 되어 나가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루는 데 있어서 큰 걸림돌이 되고 공동체 전체의 아픔이 될 때가 있죠.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사도권에 대해서 도전을 받고 불신과 의혹을 받으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 12장 11절부터 21절 말씀을 통해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해를 풀기 위한 사역자의 설득과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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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12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13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
14 보라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15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16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를 속임수로 취하였다 하니
17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18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
19 너희는 이 때까지 우리가 자기 변명을 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20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21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은 편지의 많은 내용을 자기 자신에 대한 변호, 변명으로 편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부분에 있어서 고린도 교인들로부터 바울의 사도권에 관해서 의문을 제기받고 의혹을 제기받았기 때문에 이 불신을 해소해야 바울이 전한 복음이 더 선명하고 거리낌 없이 전달된다는 거를 알았기 때문에 

많은 분량을 자신의 사도권을 방어하고 변화하는 데 사용하고 있는 것이죠. 

 

그럼 바울은 어떻게 자신의 사도권을 주장하고 있습니까?

당시의 사람들은 사도권의 근거를 예수님과 함께 살았고,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배우고,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파송받은 것이 사도의 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 곁에 있었던 12명의 제자들만 유일한 사도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반면에 바울은 예수님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배우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도임에 대하여 계속 의문을 제기받고 불신을 받게 되었고, 그의 사도권을 인정해주지 않았던 사람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바울은 자신을 어떻게 변명합니까?

본문 12절이 그러한 내용입니다. 11절과 12절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11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12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바울은 자기 자신이 사도 된 것이 예수님과 함께 공생애 기간에 같이 있었던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리고 자기가 고린도 교인들과 함께 보내면서,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으로 본을 보여준 것이 자신의 사도 됨의 증거라고 말을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보여줬던 많은 시간을 통해서 복음적 삶을 살아왔고 성도들을 용납하고 참아주며 복음의 말씀에 기초한 삶을 살아간 그 삶의 자취가 자신의 사도 된 증거라는 것이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렇게 주님이 세운 기준이지만 그 기준은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초기에는 주님과 함께 머무르고 주님으로부터 직접 파송받은 사람이 사도였지만,

주님께서 또 특별한 목적과 뜻을 따라 바울에게 부활하신 몸으로 나타나셔서 바울에게 사도의 자격을 부여해주며 환상과 계시로 바울을 양육하셔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보내지 않으셨습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바울은 이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 공동체 생활을 할 때, 타인에 관한 판단을 유보하고 하나님께서 내가 가지고 있는 기준과 다른 기준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이전에 배운 것이 틀린 것이 아니지만, 언제든 주님께서는 새로운 역사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신뢰하고 믿어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면 한 없는 갈등이 유발되는 거예요.

'장로님은 이렇게 해야 됩니다.'

'집사님은 이렇게 해야 됩니다.'

'목사님은 이렇게 이렇게 해야 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준과 가치 판단을 따라 다른 사람을 재단하고 정죄하고 요구한다면, 누구 말이 맞는 말입니까?

끝없는 갈등이 유발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주님의 기준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교회 공동체는 훨씬 더 폭넓은 공동체 포용과 화합의 공동체 갈등을 극복하고 그리스도 몸 안에서 하나 되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아울러 목회자가 목회자는 표집 중에 하나는 성도와 함께 살아갔던 삶의 자취요.

또 한 가지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이 물질에서 투명하고 물질에서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며, 높은 도덕성을 유지하고 살아갔던 것을 바울 자신의 사적 사도 됨의 증거로 제시합니다.

본문 13절과 14절이 그러한 것입니다.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13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
14 보라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바울은 성도들에게 물질적으로 어떠한 피해를 주지 않고 물질 앞에서 깨끗하게 지내왔던 것입니다.

목회자는 그의 높은 도덕성으로 자신이 주의 종 되었음을 보여줘야 합니다. 

어떻게 서든지 목회자는 재정에 대해서 투명하고 물질에 욕심을 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목회자를 잘 섬기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성도들이 목회자를 섬기는 것을 당연시 여길 때, 그는 교만해지고 그리고 유혹을 받기 쉽고,

그리고 성도들에게 민폐를 주면서도 본인이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가능성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모든 섬김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성도들에게 폐를 주지 아니하고자 그들에게 어떠한 물질적 요구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또 모든 동역자 여러분 

성도들이 여러분을 섬길 때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그것을 귀하게 여기고 감사히 여기고 물리칠 줄 아는 겸손과 여유와 배려하는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교회 공동체는 더 따뜻해지고 더 신뢰와 존경이 깊어지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더 성장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바울이 구하는 것이 '재물'이 아닌 '성도들'이라는 말은 어떤 교훈을 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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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이제 교회 공동체는 분열과 다툼을 생각하면서, 교회 공동체가 하나 되고 그리스도의 몸에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는 것을 생각할 때 마음의 괴로움과 두려움을 표현합니다.

교회를 생각할 때 바울의 마음에 엄습한 두려움, 그것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20절에서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20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바울은 교회를 생각할 때 몇 가지 두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중에 하나는 내가 성도들이 나를 바라볼 때 성도들의 기댓값에 못 미칠 것에 대한 걱정과 근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여

목회자들은 성도들의 기대와 존경심을 받고 살아가야 합니다.

목회자 영적 권위의 기초는 성도들의 존경심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성도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도록 자신을 절제하고 근신하며 깨끗하게 살도록 최선을 다해 다해야 교회 공동체가 건강하게 보존되는 것입니다.

아울러 성도들도 목회자가 성도들을 대할 때 실망하지 아니하도록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목회자를 향하여 온전한 태도를 갖고 무례하지 않고 정중하게 대해주어서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이러해야 되겠구나' 하는 바를 자신의 삶으로 실천해 나갈 때

목회자는 존경받고, 성도는 신뢰받는

그런 그리스도의 건강한 몸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깨어지면 교회 공동체는 한없는 고통에 빠지는 거예요.

 

바울은 첫 번째로 사람들의 기댓값과 서로 멀리 있는 모습을 보일까 봐 두려워하고 있고,

이어서 계속해서 다툼과 시기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그 공동체에 있을까 봐 두렵다. 하였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다툼과 분냄 당 짓는 것은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 서로 다른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생각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고, 또 용납하고 받아들여주고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주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편을 만들고, 바를 조성하고 나인을 세우고 계파를 만들면

갈등은 점점점 깊어지고 이 깊어진 갈등은 교회 공동체를 분열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나의 계파에 나의 그룹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하여 비난과 정죄를 하지 않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스도의 몸이 어떻게 이렇게 갈라지겠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주님의 핏값으로 사신 주님의 몸입니다. 

우리는 세속적인 조직이 아닙니다.

종교 동아리도 아닙니다. 

정치적인 어떤 이의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진 집단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 되는 것보다 더 큰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 형제자매 여러분

바울이 고린도 교회 하나 됨을 위하여 피눈물을 쏟으며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처럼

오늘 동일한 마음으로 온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몸이 하나 되도록 자신의 고집과 집을 내려놓고, 서로를 존중히 여기며, 귀히 여기고, 목회자를 존경하고, 성도를 신뢰하는

그리스의 아름다운 몸이 여러분의 모든 교회 공동체 안에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모두에게 오해 없이 당당하도록 공적 재정을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해야 할까요?

 

하나님 아버지 
바울이 피눈물을 쏟으며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애타는 마음으로 고백하고 설득하고 이야기하였습니다. 
하나님 이 땅의 모든 주님의 몸 된 교회 공동체가 
목회자를 존중하고 성도를 사랑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긴 거룩한 사명을 잘 이루어가는 주님의 몸 된 교회 공동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교회를 이간질하고 분열하고 다투게 만드는 모든 악한 세력을 소멸시키시고 
오직 교회 공동체 안에서 주님만 드러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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