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28. | 생명의 삶 | 백상욱 목사
안녕하세요.
저는 광진구 자양동에 있는 요한 서울교회를 섬기는 목사 백상욱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크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자랑을 무엇으로 여기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사회적 신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자기의 신분을 자랑할 것이고, 돈을 중요하게 여긴 사람은 아파트 평수와 가진 돈의 양을 자랑하겠죠.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여러분을 소개할 때 무엇을 가지고 소개합니까?
학벌입니까? 제물의 양입니까? 사회적 신분입니까?
오늘 바울은 자기 자신을 고린도 교회를 향해 소개하면서 몇 가지 자신의 자랑과 관련되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고린도후서 11장 16절부터 33절의 말씀입니다.
한번 말씀을 먼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도를 향한 깊은 사랑, 약함을 자랑하는 사역자
16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내가 조금 자랑할 수 있도록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17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18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19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20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21 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22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31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 32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33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기 자신에 관하여 자랑하는 말들을 합니다.
앞에 본문에서는 자기 자랑을 하지 말라고 말하였고, 자랑하려면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말하더니,
오늘 본문에서는 한없이 자신의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그런데 그 잘하는 내용이 그렇게 듣기 좋은 말이 아닙니다.
오늘 그런데 왜 이렇게 바울은 이렇게 듣기 싫은 그런 인간적인 자랑을 계속 늘어놓고 있을까요?
그러면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용납하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16절 17절을 제가 다시 한번 읽어보죠
16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내가 조금 자랑할 수 있도록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17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하면서 자기 자랑을 이야기하는데
'주님께서 주신 마음이 아니다.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내가 어리석은 자처럼 기탄 없이 내 자랑을 늘어놓겠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다음부터 실려 있는 것은 어리석은 자기 자랑이고 결코 우리가 쫓아서는 안 될 내용이라는 것이죠.
그것이 무엇입니까?
육신을 따라 세속적 가치관의 기준을 따라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
바울은 왜 이렇게 스스로 어리석은 자처럼 세속적이고 육신적인 자랑을 하고 있는 건가요?
그 이유는 바울이 개척하여 세운 고린도 교회가 바울 말고 다른 거짓 선지자들 다른 선생들을 받아들여서 그들의 가르침과 복음 하는 그들의 교훈을 따라 치우쳐가고 있었기 때문에, 왜 너희들이 그렇게 하는가?
내가 사도고 내가 받은 하나님의 교원의 말씀을 너희들에게 가르쳤는데,
왜 이 가르침을 떠나서 어리석은 길로 가는지에 대해 답답한 마음으로 탄식하며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바울은 다른 사람을 통하여 바울 자신의 사도 됨과 사도권에 도전을 받고 의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부득불 내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손색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본문에 있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오늘날 우리 교회도 그래서는 안 되는데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의 기준이 교회 안에도 들어와서 교인들 사이에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성도를 평가할 때 혹은 목회자를 평가할 때 이 세상의 세속적 기준 육신의 기준을 따라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어떤 것입니까?
학벌이 그렇습니다.
목회자를 청빙 할 때도 그렇고 다른 어떤 사람을 세우려 할 때도 이력서를 보고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무슨 학위를 가지고 있는지 그 가족의 직업은 무엇인지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와 신분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가 그것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며, 육신을 따라 하는 자랑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회 사이에 사회가 그렇게 하니까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18절과 19절에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18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19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이 모든 것은 육신을 따라하는 자랑이고,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이 어리석음을 용납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22절부터 23절에까지의 바울 자신의 육신의 내용을 쭉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리석다는 거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다른 그런 가치관을 가져야 하는데,
우리도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대로 이력서의 학력과 이력서에 그가 한 일들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고 바라보지는 않는지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기준대로 사람을 보는지 세속적 기준으로 사람을 보고 있는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를 돌아봐야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20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세속적 가치관이 교회 공동체 안에 들어와서 그 가치관으로 휘두르고 빼앗고 삼키고 잡아먹고 고통을 주어도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용납하고 있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바울이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어떻습니까?
세속적 기준과 가치관이 교회 공동체에 들어와서 휘두르고 빼앗고 고통을 주고 마음대로 세속적 기준이 작용되고 있음에도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인 양, 그것을 용납하고 마땅하게 여기고 있다면,
오늘날 바울의 책망을 우리가 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깨끗한 마음과 진실한 마음으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이 세상의 기준이 우리를 함부로 가늠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기준을 나 자신과 교회에 세워하게 되는,
그런 일이 온 교회와 여러분의 삶에도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정말로 자랑스럽게 여겨야 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학벌도 아니고 내 가문이 몇 대째 신앙의 집안이라고 하는 가문의 문벌도 아니고,
내가 얼마나 많이 무엇을 했는지 나의 성공과 성취의 이력서도 아니고,
바울이 참으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28절부터 30절에 실려 있는데요. 제가 읽어보죠.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바울은 자기 자신이
고린도 교인들을 양육하고 섬겼던 목자고 지도자며 그들의 영적인 아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자세에 있지 않고 권력을 휘두르지 않고 힘을 과시하지 않고
오히려 약한 사람이 되어서
성도들이 힘들어할 때 자신도 쩔쩔 매고
성도들이 혹시라도 죄를 지을까 봐 마치 자신이 죄를 짓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여기고 회개하면서
성도들이 아파할 때 같이 아파하면서 약한 곳에 함께 머물렀던 자신의 삶이 자랑거리라고 말합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를 향해서 무엇을 자랑하겠습니까?
부모가 자녀를 향해 자신의 학벌과 문벌 그리고 성공의 이력을 자랑스럽게 나열하겠습니까?
참된 부모의 자랑은 아이가 아파할 때 그 옆에서 밤새 병시중을 들어줬던 것이 자랑이고,
아이가 괴로워할 때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아이의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들어주는 것이 그 부모의 자랑이 아니겠습니까?
아이의 아픔에 공감해주고 외로움에 외로울 때 그 옆에 있어주는 부모 됨이야말로, 부모의 진정한 자랑이듯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의 참다운 자랑은
성도의 아픔에 함께 있어주고 괴로움에 동참하고 마음을 나누었던 것
스스로는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으나 약한 사람을 위해 자신도 약한 자리에 처하는 것
스스로는 부유하고 넉넉해도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자신이 가난하게 낮추는 것
이것이야말로 교회 공동체의 참다운 자랑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태백에 있는 예수원을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예수원을 설립하신 고 대천덕 신부님은 선교사의 자녀로 태어나서 많이 공부하고 부족할 것이 없었는데,
1965년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한국에 있는 가난한 사람 어려운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다 던져서 태백 황지 산골짜기에 들어가서 가난한 사람처럼 가난하게 살아가고 우리 어려운 우리의 우리 민족과 함께 삶을 다 보냈습니다.
그가 자신을 낮추어서 그 산골짜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몸으로 순종하였기 때문에
지난 긴 세월 동안 태천덕 신부님은 한국 기독교계의 큰 어른으로, 영성가로 많은 사람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던 영적 지도자로 존재하지 않으셨겠습니까?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자랑이 내가 배운 것도 아니고 가진 것도 아니고 한 일도 아니고
가난한 자와 함께 하고 약한 자와 함께 하는 그런 것이
그리스도가 걸어간 길을 걸어가는 그것이
교회 공동체의 자랑이 되고, 성도의 자랑이 되고, 우리의 자랑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하늘 높은 모자를 버리시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낮고 낮은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와 함께 되셨던 것처럼
우리의 자랑이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낮은 곳을 향하고
우리도 어려운 곳을 향하고
우리가 나눌 곳을 향해 흘러가는 것이
우리의 자랑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늘 보좌 버리신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 사는 삶이 우리의 기쁨이 되고 온 교회의 자랑이 되도록
우리 한국 교회와 우리 온 성도들이 그런 주님의 길을 쫓아가는 삶을 살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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