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9. | 생명의 삶 | 여성민 목사
주님의 평강이 여러분 가정에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온누리 교회 여성민 목사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길을 잘못 갈 수가 있습니다.
잘못된 것을 느끼고 있을 때 제일 반가운 사인이 유턴 사인입니다.
유턴을 하면 방향을 바꿀 수 있으며 또 시간도 줄여줄 수가 있는 것이죠.
우리 삶 속에 잘못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계속적으로 유턴 사인을 보여주십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삶 이것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고린도후서 1장 23절에서 2장 11절까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말씀을 통해 함께 듣겠습니다.
죄에 대한 징벌과 용서로 기쁨을 회복하는 공동체
1:23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1:24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2:1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 2:2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한다면 내가 근심하게 한 자밖에 나를 기쁘게 할 자가 누구냐 2:3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모두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2:4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2:5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모두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2:6 이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는 것이 마땅하도다 2: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2:8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2:9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2:10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2:11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
노래 가사 중에 이러한 가사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는 그런 가사가 있습니다.
저는 이 가사가 너무 좋은데요.
넘어졌던 아이가 좀 다시 일어나는 것,
또 아팠던 가족이 다시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
또 집 나갔던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는 모든 삶들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에게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시기 위해서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고린도 교회에 잘못하였던 모든 사람들이 다시 회개하고 회복되는 상황을 우리 한번 오늘 본문 속에서 같이 보면 좋겠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2차 전도여행 때 바울이 일 년 육 개월 동안 목회한 교회입니다.
3차 전도 여행을 하면서 예배소에서 고린도 교회의 각성과 회개를 촉구하면서 고린도 전서를 보내게 됩니다.
고린도 전서를 이제 디모드를 통해서 보낸 이후에 상황을 들어보니 참 어려운 상황들이 있습니다.
교회 상황이 더욱더 급히 악화되어서 고린도 교회의 방문을 유보한 계획과는 달리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친히 방문하게 됩니다.
수습을 해보려 했지만, 수습이 되지 못한 채 바울은 예배소로 다시 귀환하고 눈물의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교회에서 내부에 성도들이 뉘우치게 하는 그런 소식들이 있습니다.
그 편지를 보고 그런데 아직도 다른 복음을 퍼뜨리는 거짓 사도들이 있었고, 그런 회책에 어떤 성도는 바울의 사도권과 사도직을 계속적으로 부인하는 그런 위기 상황이 있게 됩니다.
그럴 때 사도권을 확립을 위해서 이제 사도 바울은 고린도 후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23절에
1:23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1:24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바울이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고린도 교회를 아끼려 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린도 교회 성도의 믿음을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당신들이 믿음에 서 있기에 스스로 서는 과정에 내가 기쁨을 대는 돕는 자가 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에 자신의 뜻대로 또 교회를 조정하거나 거기에 대해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기적인 선택이 아닌 이타적인 선택을 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바울이 만일 그때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게 됐다면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을 치료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다면 바울은 성도들 앞에 권증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것,
그것을 통해서 성도들에게 무리가 있고 또 마음에 안타까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얘기를 하는 것이죠.
그러나 바울은 항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움직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하였는데, 그것은 고린도 교인들을 아끼는 마음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방문이 미루어졌을 때 문제를 일으켰던 자들이 먼저 회개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그들을 받아주었고 그것을 바울은 교회의 과정을 인정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24절에 우리가 너희에게 믿음을 주가라는 것이 아니고 기쁨을 돕기 위함이고 이미 믿음으로 그 문제를 잘 해결하였다는 그런 내용인 것입니다.
3절에
2:3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모두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2:4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바울의 권위에 도전했으며 고린도 교회에 불신앙을 넣어주어 구원에 대한 메시지를 흐리게 한 성도를 회개케 하고 서로 용서하고 받아주고 온전히 하나 됨이 나의 기쁨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모습입니다.
4절 말씀 보면은 바울의 개인 심정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보면, 목회를 열심히 했는데 여러 상황으로 여러 교회가 그냥 분파가 되어지고,
세속적으로 흘러가고, 또 본질을 잊어버리고, 자신을 매도하는 일 때문에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 글들을 써서 보냈고 두 번씩이나 교회 고린도 교회에 방문하였는데도 변화가 없는 그런 상황에 마음에 큰 눌림이 되었다고 하며 걱정을 많이 하는 그런 모습이 있습니다.
눈물로 너에게 썼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 눈물의 편지가 고린도 후서 직전에 기도를 통해서 보낸 그 편지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우리에게 남아있지 않지만 우리는 그것은 눈물의 편지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그 편지를 보내고 문제를 일으킨 교인이 회개하고 돌이켰다는 그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기적이었습니다.
잘 된 일이었습니다.
아마 눈물의 편지에 엄청난 책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편지에 대한 마음을 적어놓는데 그 편지가 고린도 교회에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근심케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희를 향하는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하기를 원한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글의 내용이 책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쓴 것이라고 표현을 하는 것이죠.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 항상 사랑의 마음, 주의 마음으로 대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는 사랑장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목회를 할 때 그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교회를 대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모습에 사랑이 능력이고 사랑이 해결책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거룩한 은혜가 여러분 삶 가운데 계속해서 사랑이 넘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절 말씀에
2: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고린도 교회에 남아 있는 바울 자신에 대한 오해를 이제 시정하고 고린도 교회에 침투하여 교회를 어지럽히는 그 교인을 어 정말 지적함으로 인해서 바른 자리로 오게 했습니다.
그때 그는 더욱더 용서하고 또 위로하고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쌓이지 않을까 하는 그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의 마음은 이렇다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잘못했을 때 우리가 그것을 회개했을 때 다시 그것을 질책하지 않고 우리를 안아주시고 우리를 일깨워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인 것을 믿습니다.
7절에 용서하고 이 단어는 헬라어로' 카리사스다이'라고 하는 것인데, '선물을 주다', '은혜를 베풀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은총으로 우리가 죄가 완전히 씻긴 받은 것처럼 범죄자의 죄에 대해서도 완전히 덮어주고 죄짓기 이전의 상태로 다시 교제로 나누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 1828-1917) 책에 보면은 하나님의 용서와 치유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거룩하고 주인이 쓰기에 합당하게 위해서 정말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될 것을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얘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서로의 용서와 치료가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것이죠.
제가 오래전에 예술 전단에서 디티에스를 받을 때 한 지체가 아 리더십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으로 하게 됐습니다.
전도 가서 대판 싸운 경험이 생각이 납니다.
근데 화해하지 못하고 그다음 날 사역하러 갔는데, 자그마한 탐광촌에 예수님의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사모님께서 이미 탄가루를 많이 마셔서 진폐증이 되었는데, 그분이 우리에게 정성적으로 끓여준 만둣국을 우리가 먹지를 못했습니다.
밤새도록 싸웠기 때문에 너무 창피해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교회 안에 본당에 들어가는 순간 아주 작은 교회였는데 입구에 예수님의 성화가 하나 걸리는 것이 생각이 됩니다.
거기에는 가시면류관을 쓰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이었는데 머리에는 피를 흘리고 계셨는데, 보통 그림에 없는 눈에서 눈물 흘리시는 그 장면이 있었어요.
그 성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찬양 사역을 하려고 하는데 마음에 그런 찬양할 수 없는 그런 마음이 생겼습니다.
아직 우리에게 용서하지 못한 것 때문에 서로가 다 불편한 가운데에서 제가 찬양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을 때 그 지체가 와서 서로 잘못했다고 하는 그 서로의 용서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서로 회개하는 마음이 있고 전부 다 우리 팀들이 열 명이 다 울게 되는 그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사역에 하나님이 기름 부으셨다는 것을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다시 우리 숙소에 돌아와서 그 지체의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지체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는데 항상 야단만 맞고 학대를 받아서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었어요.
그니까 늘 리더십만 보면은 늘 반항적이고 또 말투가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 것 때문에 우리가 다시 한번 그 얘기를 들을 때 그 지체를 더욱더 보호하고 또 사랑하고 축복하는 경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이러해야 된다고 생각이 됩니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우리에게 축복입니다.
작은 공동체는 부부로부터 시작되고 조금 더 큰 공동체는 가족입니다.
그리고 교회 식구들 그리고 회사의 동료들 그리고 우리가 같이 함께하는 모든 그룹들이 작은 공동체라고 생각됩니다.
이 가운데서 서로 용서하고 화목케 하고 또 축복할 때 우리에게 공동체의 기쁨을 하나님께서 주실 줄 믿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공동체가 축복의 공동체가 되길 원합니다.
부부끼리 서로 사랑하고 또 자녀들을 용서하고 부모님을 용서하고 서로 용납하는 그런 공동체가 될 때 그 안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시간이 될 줄 믿습니다.
그럴 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는 그런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공동체가 될 줄 믿습니다.
그러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가정에 용서가 있게 하여 주시고,
우리 가정에 용납이 있게 하여 주시고,
사랑이 넘치고 이해가 넘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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