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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신 하나님 뜻에 '예'로 응답하는 성도 (고린도후서 1:12~22)(20220708)

2022.07.08. | 생명의 삶 | 여성민 목사

 

선하신 하나님 뜻에 '예'로 응답하는 성도

 

오늘 주님의 축복이 여러분의 가정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온누리 교회 여성민 목사입니다.

 

퍼즐 백 조각 자리가 있습니다.

포졸이 서로 다른 모양들이 있지만 그것이 그림으로 하나하나 맞춰서 완성된 그림이 될 때 참 즐거움이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하나 맞추어져서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어질 때 하나님의 기쁨이 클 것입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신실하게 퍼즐을 맞춰가는 고린도 교회 모습을 보면서 오늘의 말씀을 같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12절에서 22절까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함께 듣겠습니다. 

선하신 하나님 뜻에 '예'로 응답하는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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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13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완전히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14 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
15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16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으니
17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
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12절에 

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우리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대하고 또 행동했고요.

또 하나님의 은혜로 해왔다는 것이 우리의 양심이 증언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항상 자신이 사역할 때 항상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사역하였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성도 중에 바울을 대적하고 비난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모든 일을 행할 때 육체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행한 것이고, 또 그렇게 자기의 심정으로 진솔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설립자입니다. 

2차 전도 여행 중에서 1년 6개월 동안 전심으로 목회했던 곳이죠. 

대략 바울은 6개월 동안 AD 55년 경에 고령교회의 잘못된 오류에 대한 것을 고치고 또 그것을 하나님의 교회로 만들기 위해서 계속 서신으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들이 신앙상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가지고 쓴 것이 고린도 전서이고요.

이것은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때 예배소에 3년 가까이 목회를 하면서 고린도에서 발생한 문제들에 대해서 이제 답변을 쓰는 모습인 것이 고린도 전서입니다. 

디모데를 통해서 서신을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교회 상황이 점점 악해지는 것을 다시 듣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3차 전도행을 멈추고 다시 바울이 고린도에 방문하게 됩니다. 

그리고 해결하려고 했을 때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참으로 가슴이 아픈 그런 방문이었습니다.

다시 예배소에 와서 바울이 고쳐지지 않는 그런 고린도 교회에 지금은 남겨지지 않는 그런 눈물의 편지를 이제 다시 발송하게 됩니다. 

그 후 바울이 고린도의 자신의 편지를 전해준 디도를 마케도니아에서 만나게 되고 그 편지를 통해서 고린도 교회에 모든 잘못된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바울의 사도권에 의해서 비앙 거리고 아 교회 안에 성도들을 불안하게 하는 그런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때 그 불평을 대해서 이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고린도후서를 쓰게 됩니다.

그들이 또한 이슈와 했던 것은 뭐냐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다시 방문한다고 하면서 그의 여정을 바꾼 것이 성도들에게 계속 불만을 품게 하는 것이죠.

'신실성이 없다', '진실함이 없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하면서 바울이 전했던 복음을 계속 깨어 나가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목적을 가지고 고린도후서를 쓰게 됩니다.

그래서 1장 12절 본문에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나의 행한 모든 것이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고 하나님의 은혜였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예수님의 날에 너희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을 그런 날이 있을 터이니 우리가 믿고 기다리자고 하는 그런 말씀도 있습니다.

일부 사도바울에 대한 사도권에 대한 것을 사람들은 계속적으로 불신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있을 때 사도권의 정통성과 사도로서의 자신의 사역을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강조하는 것이 고린도서의 첫 장의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직에 대한 그러한 자신에 대한 변호를 하게 되는 것이죠. 

 

지금도 세상에 사람들이 크리스찬에 대해서 또한 교회에 대해서 비난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비난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12절에 고백대로 정말 바울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그리고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바울은 이것이 우리 양심에 증언하는 바라고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랑 또 여러 사람들에게 자랑이 되는 것이 우리의 하나님이 주신 그런 마음들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가 여기서 꼭 기억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로마서 10장 9절, 10절에 있는 말씀대로

로마서 10 : 9 ~ 10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그 믿음의 고백에 의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그것은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장성한 분량까지 우리는 자라나야 할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자녀가 된 우리가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다시 한 번 주님 앞에 거룩함과 진실함과 또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매일매일 닮아가기 위해서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고 육체의 지혜로 행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는 일들이 매일매일 있어야 할 줄 압니다.

 

관계에서 오해가 생길 때, 나는 진실함을 어떻게 증명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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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겠다는 계획은 경솔한 것이 아니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17절에 계획할 때 육체를 따라 계획하면서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나에게 그렇게 있겠느냐 반문하면서
바울 자신은 신중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일들을 행하였다고 주장을 합니다. 

항상 하나님은 믿으셔서 우리가 고린도 교회에 이야기한 것을 진실하게 대답하였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바울이 계획을 변경한 것은 선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랐다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본래 계획이 고린도 그리고 마게도니아 그리고 고린도 그리고 유대로 가는 것인데, 고린도 방문을 연기한 것이 인간적인 게으름이나 사람의 눈치를 살핀 것이 아니라고 진술을 합니다.

바울은 그가 주님을 믿은 후로는 모든 말이나 행동에서 거짓으로 살아가지 않고 오직 십자가를 전하는 그런 사람이 진실하게 또 답하며 진실하게 행동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바울 자신은 사람에게 비유를 마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에만 순종하면서 절대 허언을 하지 않는다고 고백을 하는 것이죠.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이 3차 전도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서 잡혀 벨리스 총독과 또 베스터 총독 앞에 서게 됩니다. 

바울은 그 총독들 앞에서도 당당합니다. 

그리고 아그리파 왕 앞에서도 당당합니다.

바울이 아그리파 왕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26장 29절에 이렇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6: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바울은 목숨이 위태롭다고 해서 이런 말 저런 말을 바꾸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분심을 담은 말을 또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바울은 항상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런 모습대로 진실하게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호소를 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고 또 바울이 여러 차례 서신을 전달하였지만 바울의 말꼬리를 잡기도 하고 교회 안에 계속 불신을 넣어서 공동체를 흔들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공동체에 사단의 공격이 계속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21절 22절 제가 읽겠습니다. 

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굳건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잘 지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주시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로 인쳐주시고 보증을 해주신다는 그 말씀이 오늘 본문 가운데 있습니다. 

 

21절에 '기름 부으심'이라는 이 단어는 헬라어로 크리스사스라고 하는 것인데 거룩하게 구별하다는 의미입니다.

이 어원을 살펴보면은 그리스도와 어원이 같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기름 부음받은 자라는 것은 제사장 선지자 그리고 왕에게 부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말 세 직분을 수행하는 자로서 기름을 부음을 받으셨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기름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 거룩하며 구별된 자로서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그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줄 믿습니다. 

 

22절에 '인치셨다'는 단어가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물품에 그것의 진정성을 표시하고 소유권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것을 찍는 것을 얘기를 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으셔서 우리 자체가 하나님의 자녀로 인쳐주시고 또 하나님의 소유인 것을 확진케 하는 그런 단어인 것이죠. 

우리는 그러한 존재들이라고 믿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19절에 보면은

디모데후서 2: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아보네포 책에 '성도의 공동생활'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공동체는 서로 기도함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고린도 교회가 하나가 되고 성령으로 하나가 되는 그런 말씀을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보니까 저희 누님이 이렇게 자수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무엇을 만드나 참 궁금합니다. 

바늘로 이렇게 찌르고 실을 빼는데 실이 엉켜져 있어서 무엇을 만드는지 도저히 우리가 가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위로 툭툭 툭툭 자르고 매듭을 끊어내고 그것을 한번 뒤집을 때 참 멋진 꽃과 자연의 그림을 보게 되는 것이죠. 

완성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의 상황이 그런 것 같습니다. 

마치 우리가 뭘 하는 건지 잘 모르는 것 같지만 하나하나 성실히 행할 때 하나님의 그런 날이 됐을 때 우리에게 한 공동체로서 아름다운 일들을 하나님의 작품을 만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행할 때 우리는 멋진 퍼즐을 이으시고, 작품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줄 믿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오해 받는다고 너무 속상해하지 마십시오.

또 사람들의 눈치를 너무 보지 않기를 원합니다. 

내 계획대로 결과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늘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지혜롭게 행하시고 또 하나님 작품 안에서 우리가 교회 안에 더 든든하게 서가는 모습을 서로 확인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모퉁이 둘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하나를 연결시켜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이라고 한 가족이라고 한 교회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바울처럼 우리 하나님 앞에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또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시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음을 어떻게 설명했나요?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에 거룩함을 주십시오.
진실함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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