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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의 간구와 소망, 주님의 영원한 인자하심(시편 25:1~22)(20220629)

2022.06.29. | 생명의 삶 | 노치형 목사

 

죄인의 간구와 소망, 주님의 영원한 인자하심

 

샬롬

또 하나님께 주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됩니다.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충만히 누리시는 시간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는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노치형 목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눈을 가지고 우리는 주로 무엇을 보게 되나요?

이 땅의 것들만 바라보고 사시는지,

아니면 하늘을 바라보면서 사시는지,

또 내가 바라볼 수 있는 것들만 바라보면서 살고 계시는지,

아니면 보이지는 않지만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그것을 한번 다시 한번 생각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25편 1절에서 22절의 말씀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함께 듣겠습니다. 

 

죄인의 간구와 소망, 주님의 영원한 인자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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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3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4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5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6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들을 기억하옵소서
7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8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의 도로 죄인들을 교훈하시리로다
9 온유한 자를 정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의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10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11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크오니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하소서
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13 그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15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16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돌이키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17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고난에서 끌어내소서
18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19 내 원수를 보소서 그들의 수가 많고 나를 심히 미워하나이다
20 내 영혼을 지켜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21 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
22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을 그 모든 환난에서 속량하소서

 

다윗은 시편 25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태도가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는 우리들에게는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태도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다윗은 먼저 이렇게 고백합니다. 1절입니다. 

1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그 영혼이 하나님을 우러러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시죠.

하지만 다윗은 그 하나님을 우러러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주인님으로 우러러 보고우러러보고 있다는 것이고 나의 창조주로 우러러보고 있다는 그런 고백이 되겠습니다. 

 

다윗의 이런 고백은 너무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가 바라보는 것은 보이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라는 것이죠.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그 눈을 그 내면에서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세상에서 말하는 뉴에이지의 그 신비의 눈을 말하는, 지혜의 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얘기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믿음의 눈을 떠서 하나님을 우러러보게 됩니다. 

 

2절에선 이렇게 얘기합니다. 

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3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베푸시는 하나님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공의가 이루어지는 것도 우리는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악행은 쉽게 발견하지만 공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것을 하나님을 우러러보며 체험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그 공의가 이루어지는 것의 대상에서 자신을 제외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자의 첫 번째 태도는 바로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의심 없는 믿음은 내가 죄인임을 스스로 고백하게 만든다는 것이고,

그 죄인이 간구해야 할 바를 고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4절부터의 말씀을 계속 읽겠습니다.

4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5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6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들을 기억하옵소서
7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아멘 

 

바로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고백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고백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의심 없이 믿고 있다면 우리는 내가 죄인임을 나의 젊은 날 정욕이 가득했던 그날의 죄악들을 인정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후일에 왕이 되어서 그 바세바를 범하는 죄를 범했을 때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그 고백한 그 죄의 고백을 찬양 시로 남겨서 오늘날 21세기를 사는 우리도 그 다윗의 찬송을 함께 나누며 다윗이 행했던 범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수치가 있었으나 그 수치를 잘 이겨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고 또한 드러냈다는 사실이죠. 

 

우리는 의심 없는 믿음을 바로 내가 죄인 됨을 고백하며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끄러운 순간이지만 그것을 고백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믿음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나의 젊은 날의 죄악들을 다시 고백해보는 그런 은혜의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시편 기자가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간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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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에 자신이 죄인이었음을 고백한 다윗은 계속해서 자기의 죄악을 고백하며 그 말씀을 이어갑니다. 

11절부터의 말씀입니다.

11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크오니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하소서
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13 그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15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아멘 

 

자기의 죄악이 크나 자기는 지금 하나님을 향해 서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의심 없는 믿음의 소유자는 3위 일체 하나님을 믿는 바른 태도로 자기의 죄악을 고백할 뿐 아니라 그 죄악을 용서해 주실 수 있는 그 죄악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두려운 분에게는 우리가 가까이 가지 못하죠. 

하지만 두려워함에도 불구하고 친밀함을 체험하는 것이 다윗의 신앙의 비결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두려움과 동시에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이죠.

 

우리는 그러한 믿음의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과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믿음의 삶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해 우리의 눈이 항상 고정돼 있을 때 가능하다고 다윗은 말하고 있습니다.

시선을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죠. 

이 말씀을 묵상하며 또 하나의 찬양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시선이라는 찬양입니다. 

그 가사를 읽어드리면 이렇습니다. 

 

내게로부터 눈을 들어 주를 보기 시작할 때 주의 일을 보겠네 

내 작은 마음 돌이키사 하늘에 꿈꾸게 하네 주님을 볼 때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낄 때 

내 삶은 주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주님의 영광 임하네 주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우리의 시선을 집중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게 되고 

내 삶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동역자의 삶으로 세워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을 내가 살아가려고 할 때 우리는 실패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죄인임을 자꾸 감추게 됩니다. 

그리고 나는 점점 더 의롭다는 삶을 우리는 생각하게 되고 그것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게 될 때 우리는 죄인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심 없는 믿는 자의 그 태도의 두 번째인 자기의 기도가 더욱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인의 기도는 그 죄 사함의 기도뿐만 아니라 자기의 삶에 대한 허심탄회한 고백이 있어야 됩니다.

죄인으로 살아가기에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지 않은 삶들이 또한 추하고 더러운 삶들이 또한 혼돈된 삶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에 대해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16절부터의 말씀입니다.

16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돌이키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17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고난에서 끌어내소서
18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19 내 원수를 보소서 그들의 수가 많고 나를 심히 미워하나이다
20 내 영혼을 지켜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21 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
22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을 그 모든 환난에서 속량하소서

하나님께서 나를 살피시며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아주 진솔하게 고백하는 다윗의 고백을 만나게 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나며 대할 때 진솔한 고백으로 기도하는 그 믿음의 삶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그 삶을 회복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외롭고 괴로운 상황에서 시편 기자는 어떻게 기도했나요?

 

날마다 우리가 우러러 바라보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대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연약한 우리들에게 
주의 도를 보여주시고 
주의 길을 가르쳐주시며 
주의 진리로 지도하시고 
주의 선하심과 정직하심으로 죄인인 우리를 교훈해 주시옵소서
성실과 정직으로 우리의 영혼을 지켜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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