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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삶으로 드리는 정당하고 당당한 간구 (시편 26:1~12)(20220630)

2022.06.30. | 생명의 삶 | 노치형 목사

 

온전한 삶으로 드리는 정당하고 당당한 간구

 

샬롬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으로 기쁨을 누리며 또 사랑을 나누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는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노치형 목사입니다. 

 

영어 완전정복 동아출판사

 

 

'완전하다'라는 말은 어떤 때 주로 사용하시나요?

 

 

 

어렸을 때 '완전정복'이라는 전과가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이 말의 앞발을 높이 들고 서서 있는 그러한 장면, 어떤 승리를 상징하는 그러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완전정복'을 사본다고 해서 제가 완전 정복하지는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완전하다는 말은 언제 쓰게 될까요?

시편 기자는 바로 다윗은 하나님만이 완전하시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믿는 삼 일체 하나님만이 완전하신 분임을 기억하며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26편 1절에서 12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함께 듣겠습니다. 

 

온전한 삶으로 드리는 정당하고 당당한 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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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2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3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4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아니하리이다
5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

6 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주의 제단에 두루 다니며
7 감사의 소리를 들려 주고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말하리이다
8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오니
9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10 그들의 손에 사악함이 있고 그들의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

11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속량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12 내 발이 평탄한 데에 섰사오니 무리 가운데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

 

오늘 묵상하는 다윗의 시, 시편 26편에서 다윗은 자신의 완전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시작을 합니다.

사실 다윗은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완전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죠.

물론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적이 없고 그리고, 성령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명확히 없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다윗의 시편을 보면 바로 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온전히 의식하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 자신의 완전함을 얘기할 수 있을까요? 1절에 보면

1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또 오늘 본문의 11절에 보면

11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속량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완전함에 근거가 있다고 다윗은 말하고 있고 그것이 오늘 우리가 묵상해야 할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됩니다. 

바로 그것은 바로 그 뒤에 부분인데요. 1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1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하나님이 기준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완전함은 우리의 노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완전하게 만들어줘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바로 우리의 기준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해 주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실 때 우리는 그 완전함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삼일 일체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우리는 완전함이라는 것을 만나게 되고, 그것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죠.

사실은 나는 우리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완전하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은 죄인이라는 고백을 통해서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만드신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불순종으로 우리는 죄인의 자리에 이르렀고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는 죗값을 치러야 하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함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사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지만 믿음으로 주라 고백하며 선포한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바로 그분이 바로 자기를 살피시며 시험해 주시고 뜻과 양심을 달련하시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삶의 모습이 나옵니다. 4절에 보면 허망한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또한 간사한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5절에는 행학자와 악한 자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삶과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4절부터의 말씀을 읽습니다. 

4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아니하리이다
5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

진실로 하나님을 바라며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자와 동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 살면서 그러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을 인정하며 살아야 할 때가 있죠.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완전한 삶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게 되죠. 6절의 말씀처럼 

6 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주의 제단에 두루 다니며
7 감사의 소리를 들려 주고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말하리이다

우리가 무죄하다는 것을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어떻게 무죄합니까?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완전하게 해 주셨기 때문에 또한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죄가 정결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 고백을 우리는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 믿음의 고백이 우리 안에 넘치는 오늘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바르게 살기 위해서 시편 기자가 기울인 노력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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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완전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다윗은 우리가 완전함을 하나님께로 받아서 이러한 삶을 보여줘야 한다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두 번째 8절부터 12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8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오니
9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10 그들의 손에 사악함이 있고 그들의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
11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속량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12 내 발이 평탄한 데에 섰사오니 무리 가운데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

아멘

 

우리가 오늘 만나는 사람들과 상황 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로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완전함을 누리게 되었음을 우리가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죠.

그 첫 번째는 8절의 말씀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계신 집과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것은 하나님이 계시는 집 바로 성전을 사랑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성전이 어디입니까?

우리가 다니는 또 우리가 소속돼 있는 지역 교회를 의미합니까? 예 그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건물에 하나님은 메어 계시지 않죠.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내며 '너희가 바로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모르느냐? 성령의 전인 것을 모르느냐?'라고 얘기합니다.

바로 우리 자신도 성전이죠. 

그것을 우리가 기억한다면 하나님이 계시는 집과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곳은 바로 우리 자신이 될 것이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인류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면 하나님의 찬양을 하게 합당하게 만드신 것이니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며 사랑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 안에 가득할 때 우리는 정말 하나님이 나를 완전하게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셨음을 드러내며 살 수 있는 삶을 보여주게 된다는 것이죠. 

 

두 번째는 바로 9절에서 11절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영혼과 생명을 속량해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이죠.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계속해서 용서해 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해야 하고,

하나님이 나를 용서해 주시는 것이 바로 은혜라는 사실을 우리는 믿음으로 고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우리가 잊어버리고 그 은혜를 망각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감사하지 않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완전하게 하셨음을 밖에 보여줄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나를 용서하시고 우리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가 이렇게 악한 것을 내버려 두고 있는 이 현실을 방관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내버려 두시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해주시는 것에 그 은혜를 느끼며 감사해야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계속해서 우리의 기도가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세 번째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12절의 말씀입니다. 

12 내 발이 평탄한 데에 섰사오니 무리 가운데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

무리 가운데서 하나님을 송축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다윗은 계속해서 나 스스로의 삶 속에서만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 아니라 회중 가운데서 무리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함을 계속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서 상황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어야 됩니다. 

어떤 믿는 사람은 가장 찬송하기 어려운 곳이 자기의 가정이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가장 찬양하기 어려운 곳이 자기 친구들과의 만남 속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장 찬양하기 어려운 곳이 자기의 친한 동료들과의 사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완전하게 만드신 것을 우리는 고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우리 학교에서 우리의 일터에서 우리의 친구들 가운데서 우리는 찬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찬양의 고백이 우리의 삶에 드러날 수 있기를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시편 기자가 사랑한 것은 무엇인가요?

 

날마다 우리를 살펴보시고 판단하심으로 
완전하게 살아가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소망을 들으시어 우리를 살피시고 시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단련해 주시니 더욱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주변의 모든 상황과 환경이 악함과 부정이 난무한다 할지라도 
나를 구속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완전함으로 행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온전한 삶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통해
온 세상과 이웃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감사드리며
하루도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살피시고 도우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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